찍먹여행자의 미지근한 여행기3 [엄마와, 튀르키예]

내가 엄마와의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엄마와 튀르키예 편]

by 방랑 소피아


솔직하게,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퇴사했다.

나는 늘 이모양이다. 한 회사에 2년 가까이 버티고 있다 보면 점점 숨이 막혀온다.

역마살이라고 포장할 생각은 없다. 어쩌면 나는 그저 무책임한, 사회부적응자 일 지도.


사표를 내고, 바로 결정한 것은 엄마와의 튀르키예 여행이었다.


늘 튀르키예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엄마,

엄마도 나도 체력이 뒷받침될 때 그리고 장거리 비행기를 타는 것이 어렵지 않을 때

함께 시간을 낼 수 있을 때 같이 가야 한다고 늘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튀르키예를 엄마와 자유여행으로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패키지를 찾았다. 퇴사하기 전이라 인수인계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핑계로 대충 이름 있는 여행사 패키지를 찾아 예약했다. 옵션이 무엇이 있는지 쇼핑이 몇 번인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았다. 10여 년 만의 패키지여행이기에 무엇이 중요한지 고려하지 못했다.


그것이 이번 여행에 있어서 유일한 오점이었다.

믿을 수 없이 광활한 규모를 자랑하던, 카파도키아의 풍경

우리의 일정은,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해? 싶을 만큼 타이트하고 빡빡한 일정이었다.


6박 8일의 기간 동안 7개가 넘는 도시를 버스로 투어 하는 것으로, 거의 나라의 절반을 도는 코스였다고 볼 수 있다. 버스투어 대신 국내선 비행기로 이동하는 패키지도 있었는데 비행기 연착도 잦고 공항이동 및 체크인에 걸리는 시간과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리뷰를 보고 버스투어를 선택했다. 금액은 1~20만 원 차이였기에 이왕이면 이동하는 길에 잘 수 있으니까 버스투어가 좋을 줄 알았다. 그 버스투어라는 것이 하루에 6시간 이동해서 2~3시간 투어 하게 되는 것인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이렇게나 체력적으로 정말 피로한 일정이었음에도 튀르키예를 오기로 결정한 것은 너무나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장관을 이 나라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종교의 핍박을 피해 땅굴에 지어진 마을, 바위와 모래를 깎고 파서 마을을 만든 기이하고 광활한 광경을 볼 수 있었던 카파도키아의 장관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카파도키아에서는 특히나, 일정 종료 후 엄마와 택시를 타고 시내로 나와 기념품 구경을 하고 맥주를 한잔씩 하고 돌아온 곳이었기에 유달리 더 기억에 남아있다. 패키지란 자고로, 아무 생각 없이 가이드만 졸졸 따라다니면 된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그게 또 단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일정 종료 후 우리끼리 밖으로 나와 시간을 보내니 난생처음 자유를 얻은 죄인처럼 그 시간이 아주 달게 느껴졌다. 택시에서 내리자 내가 그간 느꼈던 공기와 분위기가 전혀 다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유의 맛이었다. 나와 늘 자유여행만 다녔던 엄마도, 말은 안 했지만 답답하셨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나오니까 이제 좀 여행하는 느낌 난다. 좋네."


피곤하다는 엄마를 무리해서 끌고 나온 것이 잘 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깊이 뿌듯했다. 그와 동시에,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나 편하자고 대충 패키지를 선택했던 과거의 내가 떠올라 엄마에게 미안했다. 나도 이렇게 피곤한데, 엄마는 얼마나 체력적으로 힘들었을까. 힘들지만, 나한테 투덜거리지도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안 엄마.

안탈리아의 아침, 큰 개들과 함께한 우리끼리의 커피 타임

'부모님과의 여행'하면 여러 갈등이 연상되기 마련이지만, 운 좋게도 우리 집은 가족여행을 꽤 자주 가는 편이었고 특히나 나와 엄마는 둘이서 자유여행으로 서너 번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 크게 걱정할 것이 없었다.


크게 걱정할 것이 없었다는 것은, 갈등 없는 온화한 가족이다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많은 다툼과 갈등을 겪어봤기 때문에 서로서로 조심하고 양보하는 수준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특히나 우리 집에서 가장 성격 더럽기로 자자한 나와의 여행에서 엄마는 "나를 두고 갈까 봐 찍소리 할 수 없었다", "내가 다시는 너랑 또 여행을 가나 봐라"라고 나와의 동행 후기를 남기고는 했다.


어쨌거나 이런 배경 덕분에 엄마와 나는 함께 여행하면서 큰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새벽 4시에 시작해서 밤늦게 끝나던 일정에 피곤해서 불평할 기력조차 없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잘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참아주었기 때문이라는 걸(혹은 기력이 없어서였다는 걸) 이제사 깨닫는다.


우리의 세 번째 도시였던, 튀르키예의 휴양도시로 불린다는 안탈리아.


끝내주는 날씨와 반짝이는 불빛도 잊을 수 없이 아름다웠지만, 아침 일찍 지중해 유람선을 타는 옵션투어 대신 엄마와 단둘이 허름하고 작은 카페에 가 튀르키예 커피를 마셨던 그 순간이 가장 여행다운 반짝이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일정은 늘 이르면 새벽 4시 여유 있으면 6~7시에 시작이었다. 이 날도 아침 6시에 시작해 지중해 유람선 옵션을 선택한 사람들은 배를 타고 투어를 나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항구 근처에서 자유시간을 보내면 되었다. 아무리 사람이 북적거리는 관광도시라 할지라도 이른 아침은 고요하기 마련. 그 고요하고 차분한 아침의 공기는 아직까지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강렬했다.


엄마와 나는 오랜만에 겪는 달콤한 여유를 만끽하며 카페를 찾아 나섰다. 그때, 우리 곁으로 커다란 개 두 마리가 다가왔다. 강아지라고 부르기엔.. 매치가 되지 않는 정말 송아지만 한 큰 개였다. 살짝 긴장해 있는 나에게 그 큰 꼬리를 휙휙 흔들며 두 녀석이 아는 체하고 다가왔다. '너네 날 언제 봤다고 이렇게 좋아해 주니?' 싶을 만큼 우리를 반기던 그 개들은 우리가 카페를 발견할 때까지 우리와 동행했다. 튀르키예는 동물친화적인 나라라고 한다. 그만큼 수많은 길고양잇과 강아지들을 볼 수 있었는데, 인상 깊었던 것은 아침마다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칩을 심어주고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길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이 이렇게나 사람에게 경계심 없고 행복해 보였구나 싶었다.


그 고요한 새벽 골목에서 짙게 풍기는 커피 향을 졸졸 따라 걷다가 발견한 카페는, 현지인들이 토스트와 커피를 간단하게 먹고 가는 작은 가게였다. 우리도 야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와 차를 주문했다. 한국돈 600원 수준의 아주 저렴한 커피였다. 비로소 접해본 진짜 터키 커피. 늘 아아만 입에 달고 사는 나의 입에도 뜨겁고 진한 그 터키커피는 몹시 신선했다. 약간의 흙향과 초콜릿향이 느껴지던 그 터키 커피의 맛만큼이나 우리의 여유로운 순간도 짧고 진한 여운을 남긴 추억이 되었다.

이 날은 정말 많은 일정이 포함된 날이었다. 안탈리아를 떠나 올림푸스산을 거쳐 파묵칼레로 향하는 날.


케이블카를 타고 구름을 통과해 해발 2365미터에 달하는 산의 정상에 올라 마주한 올림푸스산의 모습은, 이곳에 신이 있다고 한다면 단박에 수긍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장관이었다. 이것은 후회 없는 선택옵션이었다.

그리고 느지막이 도착한 파묵칼레. 마치 눈이 온 듯한 모습을 만들어 낸 석회온천 그리고 그곳에서 15분 정도 걸어 도착할 수 있었던 로마시대 히에라폴리스 원형 극장.


헉헉거리며 올라간 원형 극장의 꼭대기에서 은은하게 보이는 빛나는 지중해와 웅장한 온천 도시를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힘드니 너 혼자 가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나에게 끌려서 올라온 엄마도, 이 광경을 보고는 따라오기 잘했다며 연신 감탄했다.


"아..."


정말 멋진 것을 보면 아무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때 알게 되었다. 로마시대에 건설되어 현재까지 이렇게 굳건하게 남아있는 이 극장과, 그 너머 보이는 일몰과 지중해 바다가 반짝이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카파도키아만큼 강렬했던 파묵칼레였다.

파묵칼레 하면 온천도시, 온천도시 하면 파묵칼레. 우리가 이 날 묵은 호텔은 온천 수영장이 있는 곳이었다.


머드가 잔뜩 깔린 온천에서 시간을 보내고 호텔에 들어와 노곤한 몸으로 침대에 누우니 며칠 동안 쌓인 피로감이 약간은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발이 아프니 발 좀 주물러 보라던 엄마는, 5분이 채 되지 않아 코를 골며 주무시기 시작했다. 튀르키예 어디에선가 구매했던 마사지 오일을 엄마와 나는 다리마사지 하는 것에 아주 알차게 사용했다.


나에게는 파묵칼레의 일정이 가장 인상 깊고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카파도키아에서 실패한 열기구 투어를 이곳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열기구 투어는 관광객의 선택이 아니라, 날씨가 우리를 선택해 주어야만 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운이 좋아야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새벽 4시에 모여 열기구에 탑승하는 그 순간까지도 가능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던 가슴 쫄깃해지는 이 투어는 누군가 내 뇌에 무슨 짓을 하지 않는 이상 절대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열기구를 타기 전, 수십 개의 열기구가 바람을 넣고 열을 넣어 띄워지는 광경도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현실감 없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태우고 불 하나에 의지해 이렇게까지 높게 뜰 수 있다는 것이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아 무섭고 경이로웠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우리 엄마도, 회전목마를 처음 탄 아이처럼 환호하며 좋아할 만큼 꿈을 꾸는 듯한 시간이었다. 전 날, 두 발로 걸어 다닌 파묵칼레 도시 전체가 우리의 열기구 아래 한 폭의 큰 수채화처럼 펼쳐져 있었다.


여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매일같이 새벽에 시작되는 일정, 하루 반나절을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에 몸과 마음이 지쳐 피로감을 호소할 때도 많았지만 이 여행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자 아쉬운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 이런 일정이라면 최소 2주는 보내야지만 튀르키예 조금 구경하고 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 이스탄불로 다시 돌아가기 전 도시 전체가 유적지라고 하는, 얼마 전까지도 사람이 살았던 것처럼 로마, 그리스 당시의 건축물이 고이 잘 보존되어 있는 에페소라는 도시에 들렀다. 산에 있던 토사물이 도시를 덮어 현재까지도 보존이 잘 될 수 있었다는 이곳은 도서관과 목욕탕, 극장과 교회 그리고 당시로 치면 아파트까지 말 그래도 마을 하나 전체가 통으로 시간 여행을 해 이곳에 와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유지되어 남아 있었다. 누구 하나 당장 그리스 시대 옷을 걸쳐 입고 돌아다닌 다 해도 아무런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생생한 그 시대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도시였다.


그리고 약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난 이스탄불.


스카프로 머리를 꽁꽁 싸매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던 블루모스크와 성소피아 사원 그리고 오스만제국 술탄이 거주했던 톱카프 궁전을 차례로 방문했다. 그리고 그날의 옵션투어로 이스탄불 야간 투어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택하지 않고 호텔로 돌아왔다. 원래라면 근처에서 맥주를 마시고자 하던 목적이었는데, 튀르키예는 이슬람교 국가로 술 판매를 하는 곳이 지정되어 있어 우리가 뜻하던 펍이나 편의점 등 맥주를 판매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호텔 아래에 있던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한잔에 13000 원하는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간단한 안주와 함께 엄마와 맥주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들은, 내가 전에는 엄마와 한 번도 나누어 보지 못했던 대화였다. 이 날 나는 엄마에게 "나 그 친구랑 조금 진지한 관계가 되었어. 곧 미국 다녀오려고 해."라는 말로 시작해, 현재는 나의 남편인 그 사람과의 연애 이야기를 진솔하게 터 놓았다. 그날 밤, 엄마와 딸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마치 친구같이 터놓고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한국이 아닌 튀르키예에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일주일간 한시도 떨어지지 않아 생긴 동지애 같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유가 무엇이었을지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그날의 대화가 내가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불씨 같은 것이었다는 것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스탄불의 마지막 날이자 우리 여행의 마지막 아침. 전망대 옵션투어를 포기하고 우리가 선택한 것은 근처 골목 끝에 위치한 2층 카페에서의 커피 타임이었다. 우리끼리 자유 시간을 보낼 때마다 느꼈던 점은, 터키사람들이 참 순박하고 맑다는 점이었다. 이 가게도 현지인들이 아침에 부담 없이 커피 한잔 시켜 마시는 소박하고 정겨운 가게였는데, 커피를 홀짝이는 우리에게 입맛에는 맞는지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계속 웃으며 말을 걸어 주셨다. 너무나 저렴한 커피 값에 일부러 잔돈을 받지 않고 나왔더니, 카운터 너머로 나오셔서는 내 손에 돈을 꼬옥 쥐어주며 웃어 보이던 그분의 얼굴은 나에게 이스탄불의 따뜻한 얼굴로 기억하게 되었다.


이스탄불은 수많은 관광지가 밀접해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이 날도 우리는 정말 많은 곳을 도장 찍듯 구경하고 다녔다. 그러나 내 머리에 남아있는 이 날의 진한 추억은 그 어떤 화려한 관광지의 풍경도 아니다.


이스탄불을 말한다면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를 모습은, 길 가판대에서 홀린 듯 구매한 작고 화려한 향수를 뿌듯하게 손에 들고 걸어가던 들뜬 엄마의 뒷모습. 그리고 20여분을 걸어 도착한 허름한 카이막 가게에서 먹었던 첫 카이막의 맛, 카이막과 커피를 곁들이며 "오길 잘했다. 여길 안 왔다면 두고두고 후회했겠어. 이건 정말 한국에서 먹을 수 없는 맛이다. 이거 정말 맛있네!"를 외치던 아이처럼 신난 엄마의 홍조 띤 얼굴이다.


결국 마음에 가장 깊이 남는 것은 사람이다. 내가 여행을 함께 한 사람, 내가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혹은 다시 한번 튀르키예를 여행하게 된다면 아이같이 신난 엄마의 얼굴을 조금 더 볼 수 있고 순박한 카페 사장님들을 더 만나 볼 수 있는 자유로운 여행을 택하고 싶다.


하지만,

어쩌면 못내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었기에 더 깊은 여운이 남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찍먹여행자의 미지근한 여행기2 [전직장동료와,몽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