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한 도시를 꼽으라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몇 도시들이 있다. 나에게는 이 여행을 계기로 싱가포르가 그 어떤 도시들보다 로맨틱하고 사랑 넘치는 도시로 남게 되었다.
나에게는 미국 교환학생 시절에 만난 미국인 친구가 한 명 있다. 그 친구는 몇 년 후, 내가 러시아에서 살며 종종 유럽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유럽으로 건너와 나의 여행에 동참했다. 그리고 또 몇 년 후, 내가 호주에 살며 뉴질랜드로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친구는 호주로 와 나의 여행 동행이 되었다. 내가 일이 바빠 한동안 한국 밖을 나가지 못할 때 이 친구는 나를 만나러 한국에 방문해 주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찾아왔다. 1~2년에 한 번씩 세계 어딘가에서 만났던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3년을 만나지 못했다. 여행을 가지 못하니 미쳐버릴 것 같았던 어느 날, 이제 코로나도 끝이 오려나보다 싶던 시기의 어느 날,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행 가자! 네가 못 간다면 내가 한국으로 갈게!"
"무슨 소리야. 나 갈 거야 여행 무조건 갈 거야. 근데 내가 연차가 별로 없으니까... 한국 가까운 나라 중에..... 싱가포르 어때?"
그렇게 나와 14년 지기 친구의 3년 만의 상봉이 싱가포르에서 이루어졌다.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 3년 만의 해외여행이 마치 난생처음 하는 해외여행인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공항에 도착해 맡는 낯선 공기, 온난한 기온의 날씨, 생경한 풍경.. 매 순간이 설레는 시간이었다.
정말 먼지 한 톨없이 깨끗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도시였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에 나오는 세트장 마을처럼 모든 곳이 단정하고 깔끔하며 잘 정돈되어 있었다.
단정한 거리와 완벽한 기온의 날씨에 발 닫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마리나베이 호텔과 머라이언 동상까지 걸어 걸어 도착했다.
날이 정말 좋다고 생각하던 순간,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미처 피할 시간도 주지 않고 비가 어마무시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외투로 머리를 감싸고 함께 뛰기 시작했다. 내가 마치 영화 '클래식'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고작 소나기를 피해 뛰었던 순간이 그렇게 멋지게 느껴졌다니, 오랜만의 여행에 내가 얼마나 들떠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대차게 쏟아지는 소나기가 멈추기를 기다리며, 바로 앞에 있던 바에 들어가 맥주를 마셨다. 대낮에 시원한 빗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맥주라니, 그 순간만큼은 억만장자가 부럽지 않았다.
비가 자주 내린다는 싱가포르. 한 번씩 대찬 소나기가 쏟아질 때마다 도시가 깨끗하게 씻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이 비가 너무 금방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이 모든 것이 짜인 각본인 것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게 느껴졌다.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동남아 여행지에서 비가 오는 것은 흔하디 흔한 일인데, 무엇이 그렇게 내 감정을 말캉하게 만들었는지 참 의아할 일이었다. 그 순간이 내 마음의 시작이었다. 한 순간도 이성으로 느낀 적 없었던 이 14년 지기 친구가, 별안간 로맨틱하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생얼로도 잘만 만나고, 전 남자친구들도 다 소개해줬던 이 친구 앞에서, 별안간 내가 화장을 신경 쓰고 입을 가리고 "호호" 하며 느끼하게 웃고 있었다. 무엇인지 모를 변화가 생긴 나 자신이 너무나 낯설었다.
그를 유심히 보게 된 이후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내가 이곳저곳 사진을 찍을 때마다, 그는 사진을 찍고 있는 내 모습을 옆에서 뒤에서 연신 사진 찍고 있었다. 내가 예쁜 풍경과 귀여운 강아지, 푸른 하늘을 찍고 있을 때 그의 카메라가 향하는 곳은 언제나 나였다. "내 사진첩엔 사진을 찍고 있는 너의 모습만 수십 장 인 것 같아"라고 말하며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내 마음에 무언가가 자꾸 일렁였다. 나중에서 남편에게 왜 그렇게 나의 사진을 찍었냐고 물어보았을 때, 그는 "그냥 그날의 네가 너무 예뻤어"라고 대답했다. 싱가포르 여행이 그에게도 나에게도 어떤 콩깍지를 씌운 모양이었다.
머라이언 동상을 보며 연신 셀카를 찍고 있을 때, 옆에서 한국어가 들렸다. 해외에 나가서 사진을 부탁할 때는 반드시 한국인에게 부탁해야 예쁜 사진을 건질 수 있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그분에게 얼른 다가가 부탁을 드렸다. 덕분에 건진 우리가 함께 찍힌 사진을 보며, 스무 살에 보았던 그 얼굴이 이제는 차곡차곡 삼십 대의 얼굴이 되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져 약간은 서글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서로의 스무 살 스물다섯 살 서른 살을 다 기억하는 사람과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의 서른다섯마흔 살의 모습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비가 그칠 즈음, 택시를 잡아 센토사섬으로 향했다. 세 군데의 유명한 해변이 있는 센토사 섬에서 우리가 향한 곳은 팔라완 비치. 둘 다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인공해변의 모래 위를 천천히 걸었다. 비가 온 직후라 날이 쨍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약간 흐린 하늘아래에서 맡는 바다내음도 나쁘지 않았다. 해변가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행 직 전, 마음이 크게 힘든 일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 모든 번뇌가 모두 사라진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차분했으며 그 어떤 번잡스러운 것도 내 마음에 남아있지 않았다. 너덜너덜하던 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 준 것은 온난한 날씨였을까, 코로나 이후 처음 하는 3년 만의 해외여행이었을까, 아니면 오랜만에 만난 오래된 친구와의 조우였을까.
조금씩 쌀쌀해지는 날씨에 우리는 다시 택시를 잡아 호텔로 돌아와 바깥 풍경을 보며 맥주를 홀짝였다. 그곳이 천국이었다.
여행 전, 싱가포르 여행 후기를 보았을 때 아랍스트릿과 리틀인디아는 필수적으로 갈 만한 곳은 아니라는 내용을 많이 봤었다. 하지만 두 군데를 모두 가 본 나의 경험으로는 꼭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특히나 아랍스트릿은 저녁에 갔을 때 그 진가가 확연히 느껴졌다. 중동을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나로서는,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이국적이고 낯선 향과 언어, 사람들이 몹시 흥미롭게 느껴졌다. 마치 알라딘이 튀어나올 것 만 같은 황금빛 모스크 앞에서는 내가 싱가포르에 온 것인가 중동에 온 것인가 하는 느낌이 들기에 충분했다.
친구가 찍은 내 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생동감 넘치고 행복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매 순간이 진귀하고 소중한 순간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나에게서 아주 중요한 것을 앗아갔었고, 그 경험은 내가 얼마나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이 순간이 얼마나 값진 순간인지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나 나는 자유와 여행 없이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명확히 알게 되었다.
싱가포르를 여행하는 3박 4일 내내 하루에 한 번은 꼭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면 우리는 꼭 비를 구경할 수 있는 바에 들어가 맥주를 마셨다. 리틀인디아에서도, 아랍스트릿에서도 비가 내리는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맥주를 홀짝이며 하릴없이 비 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비가 멎으면 다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귀여웠다. 갑작스러운 소나기는 예측할 수가 없어 유람선 투어를 통째로 날려 돈이 너무나도 아까웠지만, 그 핑계로 또 맥주를 마시며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릴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원래라면 호텔의 수영장에 가서 놀고 있었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아무래도 오늘의 이 묵직한 비는 쉽사리 끝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대로 계속 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어지간해서는 우산을 쓰지 않는 나지만, 이번만큼은 우산을 쓰고서라도 어딘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귀한 연차를 두 개나 쓰고 출입국시 신속항원검사까지 해가며 무리해서 온 여행이었다. 땅바닥에 떨어진 꽃을 귀에 꽂고 텐션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빗속을 뚫고 나갔다.
싱가포르 하면 야경, 야경 하면 싱가포르. 그 유명한 가든스바이더베이로 향했다. 이 것을 보기 위해 밤이 되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알아주는 길치인 내가 호기롭게 길 찾기를 자처하고 나섰다가 길을 잃는 바람에 우리는 이 날 무려 삼만보를 걸었다. 짜증이 날 만도 한데 단 한 번도 인상 쓰지 않는 친구를 보며, 성인군자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저 정도의 인내심이라면 성격 더러운 나를 다 이해하고 보듬어주고도 남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귀는 것도 아닌데도, 나중에 결혼을 한다면 이런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 같다.
가까스로 늦지 않게 도착했던 가든스바이더 베이. 이것만큼은 그림으로 남길 수 없어 사진으로 대체한다. 사진임에도 그림처럼 예쁜 슈퍼트리. 사람들이 돗자리를 들고 와 누워서 볼 정도로 아름다운 라이트쇼는,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는 웅장하고 화려했다. 이것만 다시 보러도 꼭 올 거라는 여러 후기들을 보며, 속으로 왜 저렇게 오버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런 반응을 하기에 충분히 멋있었다. 멋있다 예쁘다는 말로는 충분히 형용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하나하나의 슈퍼트리가 이 정도의 아름다움을 뿜어낸다면 라이트쇼가 만들어 낼 아름다움은 어느 정도일 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이 한 푼도 아깝지 않은 멋진 곳이었다.
쇼가 끝난 후, 클라우드포레스트에 들어가 대형 인공폭포와 각종 열대 식물들을 관람했다. 서울식물원과 에버랜드의 테마파크가 떠오르는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마치 영화 아바타의 배경에 잠시 들어갔다가 나온 몽환적인 기분이 들었다. 놀이공원에 다녀오면 현실과의 괴리감이 살짝 느껴지는 것처럼, 이곳에 다녀오고 나니 '내가 지금 어디에 있다가 나온 거지?' 하는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온몸의 세포가 느끼고 거부하고 있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꽤 늦은 시간까지 파크와 근방 공원들이 개방되어 있어,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산책하고 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은 어디로 여행을 가 든 늘 떠오르는 생각. 모르긴 해도 이들의 삶은 꽤나 윤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자 나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친구는 비행시간이 내가 떠난 다음 날로 잡혀있어 하루를 더 머물다가 가야 한다. 떠나야 하는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하고 따뜻한 날씨가 내 마음을 더욱 아쉽게 했다. 전 날 주야장천 비가 오는 탓에 가지 못했던 호텔 수영장을 드디어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썬베드에 누워 솔솔 부는 따스한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를 바라보며 정말 가기 싫다는 말을 연거푸 내뱉었다. 한 시간가량 호텔 수영장에서 스티로폼처럼 둥둥 떠다니며 돈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돈이 많고 자유로운 삶. 누구나 원하는 삶. 매일 이렇게 여행만 다닌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완벽하게 쓸데없는 망상을 했다. 망상일 뿐인데도 너무나 달콤했다. 너무 달콤해서 상상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물에서 둥둥 떠다니기만 했을 뿐인데도 배는 어찌나 빨리 꺼지는지, 주린배를 붙잡고 마지막 만찬을 하기 위해 시내로 향했다. 로맨틱한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해 주는 라이브바에서 식사를 했다. 노래를 불러주시는 분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여러 번 뒤를 돌아봤던 기억이 난다. 비록 대낮이었지만, 로맨틱한 음악과 맥주, 여행 마지막날이라는 그 조건들이 나를 감성적으로 만들기에 너무나 충분했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매분매초가 꿈같고 영화 같았다. 헤어짐을 앞두고, 친구와 우리가 지금까지 벌써 열 개국이 넘는 나라를 함께 여행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스무 살에 처음 만나, 서른 중반에 가까운 지금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이야기를 했다. 너라는 사람이 있어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나는 공항에 갈 준비를 하기 위해 호텔로 돌아왔다.
내가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싱가포르도 함께 슬퍼해주었는지 또다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주섬주섬 싸고 공항으로 갈 택시를 불렀다. 친구는 본인도 내일 싱가포르를 떠나야 하면서, 굳이 굳이 나를 공항까지 같이 배웅해 주겠다고 따라왔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점점 가까워졌다. 이제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과 동시에 이 여행의 끝이 너무나 빨리 찾아온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술기운인지 무엇인지 이유가 명확지 않은 눈물이 났다. 내가 우는 것을 처음 본 친구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진한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한국에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 혼자 앉아,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내 마음이 딱 하나 있었다. 이 친구와 이렇게 여행하며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것.
그 마음이 또렷해지자, 머잖아 그 친구를 다시 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각자의 나라에 도착하고 몇 주 뒤, 우리는 14년간의 친구사이를 청산하고 연인으로의 관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싱가포르여행은 지금의 나와 내 남편의 시작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