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먹여행자의 무계획 신혼여행 [하와이 오하우섬]

결혼식 1년 반 만에 가는 신혼여행, 여행 계획은 도착해서 짜면 되겠지?

by 방랑 소피아

우리의 한국에서의 결혼식은 24년 2월18일이었다. 그러나 미국으로의 이민과 이사 결혼식 등의 이벤트들로 인해, 첫 결혼식이 1년 반이 지난 이제서야,드디어 신혼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신혼 여행지는 다른 선택지 없이 하와이로 정해졌다. 비자 상태로 인해 미국령에서 나갈 수 없는 내 신분의 이유로 하와이 말고는 사실 상 우리가 갈 수 있는 신혼 여행지의 옵션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개인적으로 하와이에 대한 이미지는 따지자면 무관심 혹은 불호에 가까운 편이었다.


예전부터 나는, 인기 드라마가 한창 흥행 할 때에는 절대 보지 않다가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몰아보고 뒷북친다거나, 남들이 다들 메인 주인공에 푹 빠져 앓이 할 때 나는 언제나 서브 남주를 덕질한다거나 하는 반골기질이 아주 다분한 성향이었다. 그렇다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찬양하고 예찬하는 하와이가 나로서는 딱히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 여행지였다.


그렇게 하와이에 대한 기대감이 하나도 없는 채로, 우리는 하와이 오하우 섬에 도착했다.

여행 계획이 하나도 없음은 물론이고 다들 한다는 렌트카도 예약 하지 않은 채 호텔만 덜렁 정해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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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큰둥하던 내 마음에 요동이 치기 시작한 것은 꽃 목걸이(레이)를 잔뜩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에도, 거의 헐벗은 채로 서핑보드를 들고다니는 사람을 보았을 때도 아니었다.


심통난 영감마냥 뚱하던 내 마음이 설렘으로 뒤바뀐 것은, 적당히 건조한 바람과 적당히 습하고 더운 공기가 내 폐 속으로 잔뜩 들어왔던 순간이었다. 날씨 좋고 공기 좋기로 유명한 LA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하와이의 날씨는 이보다 더 로맨틱하고 완벽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한 번 들뜬 마음은, 이제 오만가지를 보고도 감탄이 나오기 시작했다. 호텔 체크인을 하며 바라 본 와이키키 해변의 청량한 바다 색을 보았을 때도 물론이고, 친절하고 느긋한 하와이 사람들을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대면 했을 때에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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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일정 없이 도착한 상태였기에, 하릴없이 와이키키 해변 근처를 떠돌며 식사를 하고 칵테일을 마셨다. 그제서야 남들은 하와이에 오면 뭘 할까? 뭘 하고 가면 좋을까? 하는 계획에 대한 열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포케를 먹으면서 남편과 남은 여행 기간을 어떻게 보낼 지 토론했다. 한참을 검색 해 보고 나서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길고 빼곡한 일정으로 하와이 여행을 오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시간은 고작 5박6일, 그마저도 도착한 오늘 하루는 통으로 사라져 버렸다.


허나 원래도 대충 대충 여행하는 성향의 내가, 신난다고 잔뜩 일정을 만들었다간 탈나기 십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느긋하고 여유로워야 할 하와이, 로맨틱하고 한가로워야 할 신혼여행에 빼곡한 관광 일정이란 영 어울리지 않는 옷 같았다. 우리는 짧은 의논 끝에 하루에 딱 하나의 일정만 넣고 나머지 시간은 내키는 대로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렌트카를 포기하고 시내 한 가운데, 와이키키 해변 바로 앞 호텔을 예약한 것은 우리같은 무계획에 게으른 여행자에는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객실 베란다 문 만 열면 한가득 밀려 들어오는 청아한 파도소리와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바닷빛은 하와이에 있음을 온 몸으로 만끽하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베란다에 앉아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구경하고 있다보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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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대 자연과 웅장한 뷰를 느끼고 싶어서 선택한 쿠알로아랜치 무비투어

정보를 검색해 보기 전까지 하와이 하면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바다와 서핑 밖에 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웅장한 산의 절경과 광활한 대지를 가지고 있는 '쿠알로아 랜치'였다. 이 곳은 멋진 풍경을 가진 것 뿐만 아니라, 다양한 투어 상품이 있어 하이킹 같은 수고스러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휴양지에서 하이킹이라니, 게으르기로 작정한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편하게 버스를 타고 투어를 하고 나서야 하와이가 왜 그렇게 촬영지로서 사랑받는지 알 수 있었다. 비현실적인 절경에 판타지적인 아이디어가 잔뜩 떠오를 수 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주라기공원, 킹콩, 주만지를 촬영했다는 이 장소에 내가 발을 디뎠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와이키키 해변에 밀려 이 멋진 장소가 하와이의 대표 명소로 더욱 더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이 아까울 지경이었다(유명한 관광지이나 와이키키 해변보다 큰 유명세를 가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 날 저녁, 너무나 감격스러웠던 우리는 누구보다 경건한 마음으로 킹콩을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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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키키 해변으로 돌아왔다. LA물가도 살인적이기로 유명하지만, 하와이의 관광지 식당은 LA의 물가를 넘어서는 가격이었다. 이 예쁜 해변가를 두고 굳이 비싸게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만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푸드트럭에서 칼루아포크(화덕에서 오랜시간 훈제한 돼지고기 요리. 하와이 전통 음식을 지칭) 샌드위치를 포장해 해변에 앉아 배를 채웠다. 한국의 장조림이 생각나는 맛이었다.


고작 투어 하나하고 호텔에 돌아왔을 뿐인데, 피로감이 몰려왔다. 노곤한 몸을 침대에 뉘이니 몇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같은 층에 머무르던 한국 신혼부부로 추정되는 커플은, 아침 8시에 풀메이크업을 마치고 나가서 밤 늦게 돌아오는 것 같던데 우리는 어째서 투어 하나에 이렇게까지 지치는지 알 수 없는일이다. 우리는 휴양 여행에 적합한 체력이라는 것을 몸소 느낀 하루였다.


저녁거리로 먹을만한 것과 기념품 몇 가지를 구매하기 위해 호텔 앞 시내를 걸었다. 낮의 뜨거운 공기는 사라지고 선선하고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었다. 거리는 오히려 낮보다 더 활기를 띄는 분위기였다. 마트에서 간단히 먹을 요깃거리와 함께 요 전날 봐두었던 기념품 가게에서 싸구려 팔찌를 하나 사왔다. 금속 알러지가 있어 몇 번 착용도 제대로 못할 것이 뻔했지만, 불필요한 것 하나쯤은 사고 싶었다. 기념품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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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두 번 볼 수 있었던 귀한 바다 거북 / 마지막 10분까지 고민하다가 참여한 훌라 클래스

하와이 도착 첫 날 계획을 세울 때, 우리는 쿠알로아 랜치 무비투어와 바다거북 스노쿨링은 꼭 하기로 이야기 했다. 특히 바다거북 스노쿨링은 흔한 기회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물 공포증이 있는 나임에도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었다. 보트도 15분만 타면 됐기에 배멀미도 심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바다거북이 많이 보인다는 포인트에 도착하기 무섭게, 해수면 위로 나와있는 바다거북을 만날 수 있었다. 자연에서 마주하는 동물은, 뭐라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감격스러운 감정을 안겨준다. 아직 스노쿨링 장비도 채 착용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눈으로 바다거북을 쫓기 바빴다. 사람들과 그닥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큰 바다거북에게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들뜬 마음으로 장비를 입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었지만, 30분도 채 되지 않아 몰아치는 파도에 의해 멀미가 시작되었고 나의 첫 바다거북 스노쿨링은 그렇게 허무하게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러나 저러나 바다거북을 보았으니 되었다고 아쉬운 마음을 다독였다.


멀미까지 병행 된 물놀이었으니, 이 날의 남은 일정은 자연스레 휴식으로 이어졌다. 일정의 마지막 날이었던 그 다음 날에도 호텔 훌라 클래스에 참여하는 것을 끝으로 우리의 모든 일정을 종료했다. 먹고 마시고 휴식을 취하기만 해도 시간이 두 배는 빨리 지나갔다.


마지막 날의 와이키키 해변, 그리고 어린이 용 시럽 감기약 같은 색의 진한 주황색 일몰은 여행에 대한 우리의 아쉬운 마음을 증폭시켰다.


요 근래, 프리랜서 남편의 외벌이 생활이 영 녹록치 않아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다 한들, 이미 정해져 있던 미국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접을 수는 없으니 현실적인 고민은 돌아와서 걱정하자고 덮어두고 있었다. 올 해 말에 있을 나의 출산 그리고 그에 따른 부수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아직 해결책은 보이지 않지만,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조금 기다려보자고 이야기를 하고는 일몰을 뒤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지에 붙은 모래를 훌훌 털며, 우리의 근심 걱정도 곧 이렇게 털어낼 수 있기를 소망했다.


우리의 성향에 알맞게 관광과 휴양의 배합이 잘 버무려진 이 신혼여행처럼, 우리의 앞날도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우리에 성향에 맞게 이끌어 갈 수 있기를 바라며 LA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현실로 돌아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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