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같은 만남이라 여겼던 나의 첫사랑 같은 도시
Chapter 1_ 잠시 스쳐 지나던 한 도시에서 눌러앉게 된 이유
나는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했다. 그리고 졸업 후 바로 러시아에 있는 한 한인 기업에 취직해 러시아 모스크바 근처 도시에서 약 2년간 근무했다. 안타깝게도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를 맡아 2년간 고통에 몸부림치며 버틸 때, 꿈꾸던 목표가 한 가지 있었다.
"퇴사하면 퇴직금 들고 워킹홀리데이 가서, 알바를 하며 여유롭게 지내고 말겠어"
지금 생각하면 워킹홀리데이가 얼마나 녹록지 않은지 꿈에도 모르던 오만방자한 생각이었지만, 어찌 되었거나 나는 퇴사 후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그 꿈을 실현했으며, 그 시작지인 호주 시드니 땅을 밟게 되었다. 러시아와 대조적인 따뜻한 날씨와 친절한 사람들, (러시아어에 비해) 익숙한 언어를 들으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사실 나의 최종 목적지는 시드니가 아닌 퍼스였다. 어딜 가든 한인이 가장 적은 지역을 가는 것을 선호했던 나는, 이미 많은 한인 워홀러가 있는 시드니나 멜버른에는 전혀 정착의 뜻이 없었다.
내가 퍼스에 향하기 전 시드니로 향한 이유는, 이제는 호주에 정착하여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식이 있어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친구의 결혼식과 며칠의 관광이 끝나면 나는 곧장 퍼스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참이었다.
어차피 온 김에 관광을 시켜주겠다며 친구는 내가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부터 시드니 구석구석을 구경시켜 주기 시작했다.
"시드니는 당연히 오페라 하우스랑 하버브릿지부터 봐야지!"
어슴푸레 일몰이 시작되어 마주한 나의 첫 오페라 하우스는, 하얗다 못해 눈부시게 빛이 나고 있었다. 일렁이는 바닷물과 함께 어우러져 반짝이는 오페라하우스의 광경은, 한 단어로는 도무지 다 담을 수 없는 장관이었다. 2년 간의 고된 러시아 생활과 10시간 넘는 장거리 비행의 고단함을 위로해 주는 듯한 따뜻한 순간이었다.
드레스코드를 듣고 부랴부랴 근처 몰에서 드레스를 구매해서 참석한 친구의 결혼식.
틀에 박힌 절차와 형식 없이, 그들만의 방식대로 진행된 깔끔하고 개성 넘쳤던 친구의 결혼식을 보며, 왜인지 모르게 나는 그녀의 시드니 일상이 너무나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호주로 이민을 와, 간호사로 취직하기까지 그녀가 어떤 일상을 어떻게 보냈는지 그 모든 시간이 알고 싶어졌다. 맑고 따뜻한 시드니의 공기와 날씨와 그녀의 밝고 호탕한 미소에는 반드시 어떠한 인과관계가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러시아의 색이 짙은 나의 마음에 나도 그녀처럼 이곳의 따뜻함을 덧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원래 향하려던 퍼스 행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시드니에 조금 더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아주 조금만 더 머무르다가 퍼스로 가자'라고 생각했던 나의 결심은 결국 끝끝내 실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시드니를 떠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나의 선택은 운명과 같은 것이었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Chapter 2 _ 본래 첫사랑이란 이루어지지 않는 것
시드니에서 워홀 생활을 하기로 결정한 이후, 본격적인 구직활동에 돌입했다. 시드니는 월세가 아닌 주세, 주별로 집값을 책정해서 2주에 한 번씩 요금을 지불해야 했기에 닥치는 대로 일을 시작했다.
나의 첫 알바는 친구의 남편이 일하는 양복점에서 급하게 구인하던 전단지 배포 알바. "사람 구한다는데 며칠 해볼래?" 하는 친구의 말에 냉큼 "당연하지!! 할래 할래!!"를 외쳤다. 시드니에 머무르기로 결정한 이상, 하루라도 빨리 일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했다. 작은 알바 하나하나가 현지에서의 경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머잖아 바로 시작한 나의 두 번째 근무지는, 월-금 9시부터 5시까지 근무하는 편의점 알바였다. 주 5일에 황금 시간대만 근무하는 꿀 알바로 유학생들과 워홀러들에게 꽤 인기가 많은 일자리였는지, 이력서를 들고 찾아간 가게에서 동시간대에 면접을 온 세 명의 다른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운 좋게 바로 구한 편의점 꿀 알바로 편하다면 편한 워홀러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알바를 구하고 얼마 되지 않아 다양한 나라에서 모인 룸메이트들이 있는, 조건과 환경이 나에게 딱 알맞은 아파트도 구했다. 이제야 일이 좀 술술 풀리려나보다 싶은 즐거운 나날이었다.
이 꿀 같은 시기를 맞기까지 집 렌트 사기꾼, 사적인 만남을 유도하던 변태 같은 면접관, 거절해도 계속 연락해 오던 알바 동료 등 웃지 못할 해프닝도 몇 있었다. 당시엔 '나와 호주는 맞지 않는 사이인가...'라는 생각을 정말 진지하게 할 만큼 충격적인 사건들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더 크게 곤란을 겪지 않고 지나간 것이 다행이었다는 생각이다.
편의점 알바를 하며 신간 편하게 지낸 지 4개월이 흘렀다. 이대로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대로만 지낸다면 따뜻한 물에 서서히 삶아져 죽는 개구리처럼 나도 그 자리 그대로 퍼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오기엔 너무 아까운 일자리와 아파트였지만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시드니 생활 2막이 시작되었다. 도심 한복판에 있던 아파트에서 외곽의 넓은 아파트로 집을 옮기고, 일자리도 보다 활동적이고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쇼핑몰에 입점해 있는 옷가게에서도 일을 해보고, 주말마다 열리는 플리마켓에서 주얼리 판매를 해보기도 했다. 편의점 알바보다 급여가 좋고 동적인 일이라는 것은 좋았지만, 이 일 또한 내가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뚜렷한 방향은 보이지 않았다.
쇼핑몰 옷가게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길, 복도 끝에 위치한 작은 여행사 간판을 바라보다 내가 어릴 적부터 여행업에 관심이 많았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여행업이다!'
나는 그날로, 시드니에 있는 모든 한인여행사의 정보를 검색해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없는 나의 경력과 영어 성적, 가이드가 되고 싶은 이유를 기재한 이력서와 자소서를 담아 메일을 뿌렸다.
여행업에 경력도 없는 사람이 대뜸 구인하지도 않는 가이드를 시켜달라고 메일을 보내다니, 다시 생각해도 맨 땅에 헤딩한 수준의 일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30여 개의 여행사 중 두 어 군데의 여행사에서 나의 이메일에 답장을 해왔다.
"이 정도 열정이면, 가이드해볼 수 있겠는데요?"
나의 근본 없는 의욕을 높게 사 준 한 여행사 덕분에, 그렇게 나는 시드니에서 가이드 일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배우고 싶고 시도하고 싶었던 직업을 마침내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다. 조건에 맞춰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꿈꾸던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이룬 기분이었다.
비록 일을 배우는 한 달 반의 기간은 무급으로 투어를 함께 돌아야 했지만, 덕분에 시드니 구석구석 예쁜 곳을 보고 함께 관광할 수 있어 좋았다. 무급이기에 배는 좀 곯아야 했지만 앞으로는 핑크빛 미래만 펼쳐질 것 만 같은 기분에 버틸 수 있었다.
처음 받았던 내 팀, 내 이름을 가이드로 달고 나간 나의 첫 팀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달달 외운 대본을 떠듬떠듬 읊으며 긴장감에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마무리했던 첫 팀, 약간의 여유가 생겨 손님들과 카톡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해져 큰 보람을 느꼈던 팀, 모든 팀이 오랜 기억으로 남았다. 그러나 노련함이 부족하다면 최대한 두 발로 뛰어 땀내며 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은, 어쩌다 마주하게 되는 한 두 명의 힘든 손님들로 인해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여러 연령대가 분포된 2~30여 명의 사람들을 20대의 내가 감당하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의 미숙함도 한몫했을 것이다. 가이드는 나이도 좀 있고 뻔뻔한 사람이 잘할 수 있다는 조언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내 마음이 조금씩 바닥을 향해 수직하강 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 일은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결과를 내린 것은, 간혹 마주하는 무례한 버스 기사님들과 부당하다고 느낀 업계 관례에 지쳐 무의식적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끊은 날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차마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가 더 애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조금 쉬고 돌아와서 다시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결정했던 한국 휴가, 그리고 2주 후 다시 돌아온 시드니. 그러나 그렇게 반짝반짝 금빛으로 빛나고 따뜻하게 느껴졌던 그 도시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분명 같은 도시임에도, 이제 시드니에 대한 내 마음은 마치 탈옥 후 다시 끌려온 감옥 속 죄수가 된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아, 나는 한국행 편도 비행기를 끊었다. 나에게 시드니란, 내 모든 마음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 같은 도시였다.
Chapter 3 _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 같은 여행
지치고 너덜너덜 한 마음으로 떠났던 시드니를 다시 찾게 된 것은, 그로부터 7년 후. 그전에도 시드니를 다시 찾고 싶었던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마지막 모습이 아름답지 않았기에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실패하고 도망갔던 내 모습을 다시 마주하기엔 아직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7년이 걸렸다.
지금은 남편이지만, 당시엔 남자친구였던 사람과 함께 여름휴가를 맞아 시드니를 찾았다. 내가 정 붙이고 살 던 도시에 7년 만에 방문하는 기분은 뭐랄까.. 힘든 수험 생활을 지낸 모교를 다시 찾는 기분이랄까. 그 어느 여행지보다 더 설레고 벅찬 마음으로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다.
실패자로서의 내 모습이 다시 비쳐 보이지는 않을까 약간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도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마냥 아름다웠다. 아등바등 고군분투하며 지내며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과, 관광객의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 새삼 와닿았다.
7년 전, 처음 시드니에 도착해 느꼈던 그 감정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끽할 수 있었다. 그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가 있는 곳을 천국과 지옥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내가 있는 곳의 환경이 아니라 내 마음과 상태에 달린 것이라는 것을.
'모든 것은 다 내 마음에 달렸다'는 뻔하디 뻔한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드니가 처음인 남편에게, 전직 가이드의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이곳저곳을 앞장서 소개했다. '지금의 나라면, 조금 더 잘 살아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하는 알맹이 없는 아쉬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지만 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의 시간이 거름이 되어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책하던 시간을 뒤로하고, 무모하고 당돌하게 도전하고 보기 좋게 실패했던 20대의 나를 30대의 내가 다독였다.
첫사랑이란 자고로, 아름답지만 아픈 사랑이라고 한다. 눈부신 청춘을 담고 있지만 이루어지지 않아 슬프고 또 그렇기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한다. 첫사랑이 어떤 느낌인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그 느낌을 어렴풋이 묘사한다면, 나에게는 시드니가 첫사랑 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
무모하고 어리석었던 내 청춘이 담긴 곳. 온몸을 던졌고 처절하게 실패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의미 있는 곳. 나에게 시드니란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