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긴 뭐, 내 인생이 언제부터 계획대로 흘러갔는 가
이민 가방 하나 덜렁 들고 미국에 온 지 4개월, 2025년 새로운 가족과 함께 새 해를 맞이했다.
만으로 해도 서른네 살,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서른 중반이다. 삼십 대 초반까지는 나이에 대한 압박감이 크지 않았는데, 이제 삼십 대 중반이라고 하니 얼른 무언가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삼십 대 중반이면 다들 자신의 커리어를 탄탄히 쌓으며 변두리에라도 아파트 한 채 마련해 차곡차곡 대출을 갚아 나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텐데 나는 덜렁 미국에 와서 맨 땅에 헤딩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언제 영주권을 받아서 취직을 해서 이 집 값 비싼 LA에서 집을 살 수 있을까..
집을 구매하고 나면 아이를 가지기로 남편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언제쯤이나 가능할까..
아마 빠르면 3년 더디면 5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떠오르는 새해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들던 찰 나, 만 35세면 노산이라는 뉴스 기사가 정말 뜬금없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잠깐.. 그럼 우리가 집을 사고 나서 아이를 가진다면, 내 나이가..... 빨라야 38살?'
계획 세우기 좋아하고, 계획대로 행동하기를 좋아하는 J인 나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주변에서 노산이 아님에도 난임으로 고생하는 지인들을 여럿 봐왔던 터라 우리의 삶이 안정될 때까지 가족계획을 미루겠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오만한 계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살면서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던 임신에 대한 각종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난자를 얼리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유효 기간은 어떻게 되는지, 미국에서의 과정은 어떤지도 알아보았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계획대로 몇 년 후에 임신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비용을 지출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38살에 자연임신이 떡하니 되겠지라고 마냥 긍정적이게 생각할 수도 없었다. 만약 우리의 생각대로 몇 년 후, '이쯤이면 되었다! 이제 아이를 갖자!'라고 했다가 혹여라도 난임을 겪는다면 나는 두고두고 지금을 후회할 것 같았다. 일 생을 하지 않고 아쉬워하느니, 저지르고 후회하자는 마음으로 살아온 나에게 살면서 이토록 강력하고 확실한 시그널을 느낀 일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남편을 불러할 말이 있다고 운을 띄웠다.
"지금 당장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도 1년 정도는 걸릴 수 있는 일이고, 운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더 오래도록 힘들 수도 있는 일이야. 몇 년 후 내가 30대 후반이 되어 시도한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낮아질 텐데, 그때가 되어 우리가 난임으로 고통받는 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을 크게 후회할 것 같아. 그래서 난, 우리가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
단호하게 이야기를 했기는 하지만, 혹시 모를 남편의 반대를 대비해 한국에서 혼자 난자를 얼릴 수 있는 지의 여부까지도 고려해 두고 있었던 참이었다. 당황해서 몇 초 동안 침묵했던 남편은 나의 말에 동의한다며 노력해 보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새해를 맞이함과 동시에 임신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곧 35세, 노산을 바라보는 나이여서 그런가.. 역시 쉽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한국이었다면, 병원에 방문해 배란일을 받아오거나 배란일 테스트기를 사용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의료보험 비싼 미국에서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래, 1년 정도는 걸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잖아. 1년 딱 노력해 보고 안되면 마음 비우자.'
나는 처음 임신을 고려했을 때부터 자연 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그 이상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적인 우리의 상황으로나 나의 에너지와 체력을 생각해서도 의학의 도움을 받아 임신을 시도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기에, 자연 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혹여나 나중에라도 마음이 바뀐다면, 입양까지도 고려해 보자. 그렇게 우리 부부는 그것까지 이야기를 마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곧 생리하려나? 생각하던 어느 날. 잠결에 다 뜨지도 못한 부스스한 눈으로 아무런 기대감 없이 해 본 임신 테스트기에서, 1초 만에 또렷한 임신선을 볼 수 있었다. 현실감이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이 뚜렷한 선을 보고 가슴이 100미터 달리기 시작선 앞에 선 사람처럼 미친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소식에, 그날 오후 다섯 개의 임신테스트기를 더 시도해 보고 나서야 산부인과에 전화해 검진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 나이에 쫓겨 급작스럽게 바뀐 계획. 그리고 운이 좋다면 올해 말 즈음에는 소식이 있지 않을까 했던 일이, 기쁘고 운 좋게도 훨씬 빠르게 우리에게 찾아왔다.
부모라는 막중한 타이틀을 얻기엔 현실적으로 준비된 환경도, 내 내면도 부족한 면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감사한 마음과는 별개로,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변화가 전혀 당혹스럽지 않다고, 전혀 무섭지 않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하지만 내 계획과는 무관하게 흘러 흘러 머나먼 이곳까지 온 것처럼, 내 인생은 대부분 내가 계획하는 것과는 다르게 흘러 왔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너무 겁먹지 않고, '오히려 좋지'라는 마인드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오늘도 바짝 긴장한 마음을 풀어보려 한마디 새겨 본다.
'아! 뭐!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