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레드와 감정 노동

by 김효주

스레드, 좀 피곤하다.




스레드에 들어가 봤다. 스레드 초기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대학원 과제나 지방 서울 통학으로 인해 짬을 내기 힘들었다. 이번 학기는 논문 쓰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드디어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첫날.

너무 좋았다. 친절하고 다정한 이웃들이 안녕, 스하리, 반하리 하면서 반겨주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내 스레드 팔로워 수를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둘째 날, 셋째 날.

너무 즐거워서 논문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미라클 모닝이 절로 되었다. 하루 종일 무슨 글을 쓸지 고민하며 아침 시간에 예약발행도 하고 소통을 위해 댓글도 달고 최선을 다했다. 근데 왠지 모를 피곤함이 마음속에 서서히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넷째 날.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었고 스레드에 글 쓰는 것에 관심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덜 다정한 스친'들이 좋지 않은 댓글에 맘 상하거나 '스하리로만 팔로워 늘 늘리는 사람'들이 뒷삭 당했다고 슬퍼하는 게 많이 보였다. 이른바 다정한 알고리즘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다정한 글'을 쓰고 '다정한 피드백'을 하는 사람들이 대세를 이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섯째 날.

스레드를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3일 만에 치솟았다 훅 식어버리는 나의 감정에 스스로 놀랐다.



사실 이 글을 처음 쓰려고 했을 땐 스레드 시작 3일 차였고, 그때는 이제와 시작했으나 스레드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뭔가 모르게 굉장히 스레드에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퐁퐁 솟아나는 것을 느끼며 글 쓰는 걸 잠시 보류했다.


일주일 정도 지나자 확실해졌다. 내가 느낀 피곤함의 정체는 '다정한 알고리즘'을 유지하기 위해 '어찌 됐든 다정해야 함'을 강요받고 있다는 것에 있었다.


솔직히 말해 따뜻하고 정감 있는 언어를 주고받는 건 이상적이다. 서로를 위해 좋은 말을 건네고 또한 귀한 마음을 받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천국이다. 하지만 강요된 미소는 가면일 수 있다.


최선을 다해 읽는 사람과 또한 나의 피드를 위해 엄선된 표현을 고르는 건 너무나 환영이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다정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하지 않다. 고민과 걱정, 염려와 불안을 생성하는 환경 가운데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은 가끔 부정적인 말을 내뱉게 한다. 징징거리고 싶은 마음과 불평하는 모습을 감춰야 하는 환경 속에서 진짜 소통이 과연 가능할까?


앨리 러셀 혹실드(Arlie Russell Hochschild)는 1983년 저서 『관리된 심장(The Managed Heart)』에서 감정 노동(Emotional Labor)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감정 노동이란, 임금을 받고 자신의 감정 상태를 공적으로 관찰 가능한 표정이나 몸짓으로 관리하는 일이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행위"라고 보았다. 이 노동은 주로 서비스직처럼 조직이 요구하는 '감정 규칙(Feeling Rules)'을 준수해야 할 때 발생한다.


내가 경험한 스레드, 바로 이 '감정 노동'의 현대적인 형태로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다정해야 함'을 강요받는 경험은 플랫폼 알고리즘과 커뮤니티가 만들어낸 '감정 규칙'으로 볼 수 있다. '다정한 알고리즘'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나에게도 '다정한 감정'만을 공적으로 표현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느껴졌다. 이 과정에서 나는 실제 느끼는 피로감, 불평, 비판 같은 '진짜 감정'을 억누르고, '친절함', '긍정', '공감'이라는 '요구된 감정'을 연기하고 있었다.


혹실드는 이러한 겉으로만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를 표면 행위(Surface Acting)라 하였고, 이는 필연적으로 감정적 부조화(Emotional Dissonance)와 소진(Burnout)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결국 스레드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피곤함"과 "3일 만에 치솟았다 훅 식어버리는 감정"의 정체는, '다정한 알고리즘'을 유지하기 위해 투입한 소모적인 감정 노동이었다.


진정한 내 감정과 모습을 숨기고 연기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진짜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느꼈던 나의 통찰은, 혹실드의 이론으로 뒷받침되는 학술적인 진실이다.


스레드에서 가장 자주 보게 되는 고민,

'지금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라는 생각은 '다정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건 아닐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