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계속 듣고 싶은 말

치즈 '퇴근시간' / 이한철 '흘러간다' / 이상은 '둥글게'

by soft breezes

가끔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듣다가 그야말로 귀에 가사가 꽂히는 순간이 있다. 다른 가사들은 유유히 흘러가는데 그 부분만 강렬한.

'madeleine love'가 수록되어 있는 치즈 앨범의 한 부분이었다.

어라, 근데 이 곡 6분이 넘네. 보통 4분여의 노래들과는 달랐다.

제목은 '퇴근 시간'. 모든 의외성이 마음에 콕 박혀 나는 이 노래를 한동안 무한 반복했다.


그대가 아는 것만큼 난 좋은 애가 아니에요
나쁜 생각도 잘하고 속으로 욕도 가끔 해요
우린 완벽하지 않고 가끔 억지도 부리는 걸
때론 마음이 너무 아파 푹 주저앉고서 울곤 해


밝은 노래만 부를 것 같은 사람이 부르는 쓸쓸한 노래를 좋아한다.

'madeleine love'에서 통통 튀는 사랑 노래를 발랄하게 부르던 사람이 '퇴근시간'에서는 '난 좋은 애도 아니고 밝은 애도 아니'라고 한다.


나는 이런 노래를 몇 개 알고 있다.

'괜찮아, 잘 될 거야~'라고 아무리 지쳤을 때에도 함께 부르다 보면 힘이 나는 목소리.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다고, 몇 번이고 반복해 주던 노래. 몇 년이 지난 후 이한철의 '흘러간다'를 들었을 때, 나는 만나보지도 못한 한 사람의 뒷모습을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난날 나에게 거친 풍랑 같던 낯선 풍경들이 저만치 스치네
바람이 부는 대로 난 떠나가네 나의 꿈이 항해하는 곳
흘러간다 바람을 타고 물길을 따라 흘러간다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는 척 눈물을 닦네


씩씩하게 괜찮다고 잘 될 거라고 말해 주었던 사람이 머리를 쓸어 넘기는 척 눈물을 닦을 때, 나도 멀리서 같이 눈물을 훔치게 될 것만 같달까. 씩씩한 사람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되는 노래들. 내가 봐도 될까, 들어도 될까 조심스러워지는 노래. 멀리서 말없이 응원하고 싶어 진다.


조금 지쳤을 때, 뾰족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 처방전을 내리듯 찾아 듣는 노래가 있다.

이상은의 '둥글게'

그녀의 목소리만으로도 힐링되지만, 음악 하나를 오래도록 지속하는 그녀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누구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작은 빗방울이 세상을 푸르게 하듯이 부드러운 것이 세상을 강하게 하듯이 작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사람이 필요해'라고 말한다.


꽃을 밟지 않으려 뒷걸음을 치던 너와 부딪혔어
함께 웃음이 나왔어 하늘이 투명해서 너도 빛났지
혹시 내가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그 사람이 너였으면 좋겠어
작은 빗방울이 세상을 푸르게 하듯이 부드러운 것이 세상을 강하게 하듯이


이십 대에 '둥글게'와 '삶은 여행'을 번갈아 들으면서 되뇌었다. 누구보다 모난 사람 같아서, 조금만 더 이 목소리처럼 둥글게 살고 둥글게 생각하자고. 왜냐하면,

우린 완벽하지 않으니까, 바람이 부르는 대로 흘러가도 되니까, 때로는 작은 빗방울이 세상을 푸르게 하니까.


노래가 끝나자마자 다시 같은 노래를 듣고 또 듣는다.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말이어서 그렇겠지. 옆에서 계속 괜찮다고, 너만 그런 거 아니라고, 다 그렇다고 해 주는 노래들. 나만의 힐링송 덕분에 오늘도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