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하지만 중요한.

나는, 이동희

by 에이포

9월 21일은 제가 전역하는 날입니다. 원래 하루에 의미가 생긴다는 건 사건으로 말미암은 것이지만, 몇 날 며칠을 d-365, d-200, d-100 따위의 숫자에 옭아매 살다 보니 9월 21일 자체에 의미가 생겼습니다. 그날이면, 남아있을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아침 일찍 부대에서 나와 터미널로 갑니다. 8시 버스에 몸을 싣고, 버스는 달려 서울에 도착합니다. 이렇게 저의 군 생활은 끝이 납니다.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마지막이 가까워졌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유독 훈련소 기억이 자주 납니다. 다들 전역할 텐데, 전역하고 나면 뭘 하며 지낼지. 군 생활 간 운동으로 몸을 키울 거라 했던 사람, 공부를 해 수능을 보겠다고 한 사람. 저마다의 목표는 이루었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훈련소의 첫날밤이 생생하다고 말합니다. 나 또한 그렇습니다. 흘러나오는 노래에 겨우 눈을 붙이던 내가 또렷합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입소 전날의 밤도 그에 못지않게 남아있습니다. 단순히 '입대하기에'로 치부하기에 어려운 현기증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전화번호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노트에 옮기며 어지러움을 애써 달래보려 했던 밤을 기억합니다. 그 후로 군 생활 중 같은 밤을 두 번 더 경험합니다. 아마 모두가 한 번쯤은 겪었을 밤. 입학하기 전날, 어느 모임에 가기 전에 들었던 감정들을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설명해 보려 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홍은영 작가님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참 좋아했습니다. 중간에 끊겨서 아쉬웠지만, 책을 읽고 또 읽곤 했습니다. 몇 개의 에피소드는 아직도 머리에 남아 가끔 떠오릅니다. 오늘은 그중 오디세우스가 주인공입니다. 영웅 오디세우스는 못 들어 보셨다 하더라도 아마 트로이 목마는 아실 겁니다. 트로이목마 또한, 오디세우스가 만들었으니 그가 어느 정도 대단한 사람인지 짐작하실 수 있으실 테지요. 그런 오디세우스의 이야기 중 시칠리아 섬의 이야기입니다.


트로이 전쟁을 마친 후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복귀하려 했습니다. 기약 없는 항해를 하다 보니 음식 등 물자는 다 떨어지고, 보급을 위해 시칠리아라는 사이클롭스들의 섬에 잠시 닻을 내렸습니다. 보충이 끝난 후 바로 떠났을 법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주인을 보고자 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영웅' 오디세우스인데, 누구든 상관없겠다는 의미였겠죠. 현실은 달랐습니다. 주인이었던 폴리페모스에게 당당히 대접을 바랐지만, 사이클롭스인 폴리페모스는 오디세우스 일행을 잡아먹어 버립니다. 하루하루 생명이 위험해지자 당당했던 오디세우스는 그제야 자신을 낮춥니다.


폴리페모스를 잔뜩 취하게 한 후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우티스(영어로 nobody, 한국어로는 아무도 아니야)라고 밝힙니다. '영웅' 오디세우스가, 자신을 과시하고자 위험을 감수한 오디세우스가 이름을 감춘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가명도 아닌,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는 건 더욱이 그렇죠. 술에 취한 폴리페모스가 잠에 들었을 때, 오디세우스와 일행은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릅니다. 폴리페모스는 울부짖었고, 누가 그랬냐고 묻는 다른 사이클롭스에게 "아무도 아니야가 그랬어!"라고 답하죠. 동료 사이클롭스들은 떠나고, 틈을 타 오디세우스도 탈출합니다. 여기서 끝나면 좋았으련만 도망치는 배에서 오디세우스는 다시 한번 과시욕에 빠집니다. 자신의 이름이 '오디세우스'라고 당당히 폴리페모스에게 밝히죠. 폴리페모스는 자신의 아버지 포세이돈께 오디세우스를 벌해달라고 빌고, 오디세우스는 이 때문에 다시 또 긴 여행을 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 저는 오디세우스가 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훔칠 거 훔치고 가면 될 텐데 굳이 대접을 원했고, 기껏 도망쳤으면 그대로 떠나면 될 텐데 굳이 자신의 이름을 말해 화를 초래했으니까요. 한 번쯤은 지나갈법한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심이 너무 괘씸했습니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자기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그러냐고요. 이제 와 그 밤들을 돌아 보니 나도 오디세우스였나 봅니다. 비판조차 할 자격이 없는, 그와 하등 다를 바 없는 한 명의 오디세우스 말입니다.


내가 느꼈던 현기증의 원인은 '불안'이었습니다. 사회에서는 나의 배경을 아는 이들이 있습니다. 대학, 생각, 가치관, 행동거지를 이해하는 이들과 주로 대화를 나눕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어느 정도 '보장된' 존중을 받기도, 주기도 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동희'라는 이름의 자리가 명확히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삶에서 벗어나 이름도 없이 단순히 xx 번 훈련생이라는 위태로운 공간밖에 소유하지 못한다는 게 참으로 두려웠습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남들보다 특별한 게 없고, 오히려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저를 옥죄어왔습니다. 이에 비롯된 현기증과 함께 입소하였습니다.


자대로 오기 전날 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훈련소 시절을 겨우 벗어났지만, 다시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들이 저를 받아들여 줄지 또 그들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한 번뇌와 앞서 말한 불안까지 모든 게 일치하였습니다. 시간이 지나 전역을 바라보는 밤이지만,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사회는 새로운 곳이 아닌 제가 1년 6개월간 등져야 했던 곳이어도 만남이 연속된다는 점은 비슷하니까요. 또 군에 너무 오래 있었습니다. 잠깐 맛보고 온 사회의 느낌은 아직 이질적이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가끔은 의구심도 듭니다. 만약 내가 자만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남들이 나보다 혹은 나와 비슷할 정도로 훌륭하다고 진실로 품고 살았다면, 그런 두려움도 없었을 거라 되뇝니다. 인정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올곧게 살았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자만심에 가득 찼나 봅니다. 아직 무섭습니다. 저에 관한 뒷소문이 돌지 않을까, 저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경멸이라는 유리를 통과했지 않을까 의구심도 듭니다. 많이 멀었나 봅니다. 그렇기에 오디세우스로 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한 치 앞도 보지 못한 채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받기만을 원하는 오디세우스입니다.


다만, 발전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1년 6개월을 보내며 만난 타인들은 다양했습니다. 이해가 안 가는 이들도 있었지만, 현기증이 무색해질 정도로 존경스러운 이도 있었습니다. 그들 덕분에 다음날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지금은 두려워도 언젠가 그런 의구심마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요. 더 이상 타인이 아닌 우리가 되는 날을 기다리며 두근 거림을 유지할 뿐입니다. 아직은 나임을 버리지 못하지만, 그렇게 나는 타인을 만납니다. 첫 만남에 “우티스”라고 소개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요.


매거진의 이전글서운해하지마 다시 영화는 시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