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는

구멍 난 사람

나는, 오규헌

by 에이포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성인이었다.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카페에서 공부를 하려고 집을 나섰던 어느 날, 나오긴 나왔는데 문득 어디 카페를 가야할지 고민이 됐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로 가자니, 테이블비를 받는 곳이라 무언가 탐탁치 않았고 학교 근처의 카페로 가자니 더 멀기도 하고 커피값을 비싸게 받는 곳이라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자주 가던 곳은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으니 집 근처 카페로 발걸음을 돌려 걷다가 갑자기 자리도 넓고 편한 학교 도서관이 생각나 가고 싶어졌다. 햇빛을 뚫고 학교까지 걸어가서 정문을 지날 때까지는 그냥 그랬는데, 막상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 앞에 서자 눈을 찌르는 햇살에 잊었던 더위가 밀려왔다. 그런 날씨에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한다는 계산에 이르자 평소에 잘 가지도 않던 도서관에 공부하러 간다는 발상을 왜 갑자기 떠올렸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왕 학교까지 온 김에 학교 근처의 카페로 가려는데 지난 번에 갔을 때 테이블과 의자가 불편했었던 게 생각나 가기가 싫어졌다. 아.

그러다보니 집을 나온 지 어느덧 한시간이 다 됐을 때쯤에, 신촌 사거리 한복판에 서서 처음에 가기로 했던 집 근처의 카페 쪽으로 건너가는 신호등을 기다리고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 날, 나에 대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원래 좀 덜렁거리고 멍한 구석이 있는 놈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아니잖아. 이딴 게 성인이라고? 뭐라고 변명이라도 생각해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걷고 있는 더위 먹은 머리 안에서는 나를 붙잡고 흔들면서 혼내는 내가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별일 아니라는 듯, 이런 게 처음은 아니잖아. 밥 뭐먹을지 정할 때도 한참 고민하면서 새삼스럽게 뭘 그래. 혼나건 말건 멍청한 표정으로 이 상황이 그저 웃긴 내가 있었다.


들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며 살지만, 나는 이상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냥 이상하다는 표현은 모호하고, 가만히 있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운 구멍이 몸에 여러 개 나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겉보기에는 별 문제 없어보여도 종종 삐걱거리거나 물이 새는 등 고장난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생기곤 하는 것이다.

생각이 많은 것도 그 중 하나다. 간단하고 명료한 일을 하다가도 생각이 많아져 딴 길로 새거나 우왕좌왕하는 일이 잦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생각이 나서 글을 쓰다가도 다른 좋은 생각이 나면 이전에 했던 생각에는 흥미가 떨어져 다른 글을 쓰곤 한다. 그러다 주위를 둘러보면 중간에 파다만 구덩이만 수십개다. <메기>라는 영화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생각을 곧 구덩이라고 한다면 나는 너무 자주, 많이 파고 급하게 빠져나오는 것 같다. 때로는 하나의 구덩이 속에 질기게 앉아있다가도 꾸준히 파면서, 우물이 될 때까지 빠져 나오지 않는 것도 필요한데 말이다.


생각이 많아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내게 나 있는 다른 구멍들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해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공감능력이라고 하는, 꽤 크게 난 구멍이 있다. 딴에는 나름대로 잘 가리고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이 다 티가 났나보다.

누구랑 대화를 하다가도 영혼 좀 담아서 말하라는 농담식의 핀잔을 듣거나 제대로 듣고 있냐고 확인받는 정도는 뭐, 또 실수했구나. 싶었는데 언젠가 친구가 털어 놓는 얘기를 듣고 나름대로 공감한다고 노력해서 반응을 보였더니 지금 혹시 비꼬는 거냐는 물음으로 돌아왔을 때는 나도 꽤 상처를 받았다. 공감하지 못하는 나에게도 누군가 공감해주면 좋으련만.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상황에 이입하는 게 공감의 첫 단계라면 그게 어려운 것 같진 않다. 상황에 이입하고 나서 습관적으로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나의 문제이다. 타인의 희로애락을 끌어안고 같은 표정으로 마주보는 대신에, 수수께끼나 추리문제를 풀 때처럼 생각해보고 고민한 다음 끝내 결론을 내린다. 결론, 공감은 결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번번이 타인에게 공감하는 데에 실패하고 만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내 생각에도 구멍이 난 이 남자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지만, 한 번 생긴 구멍을 언젠가는 다시 메운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못 미덥지만 내버려 두기로 결심했다. 대신에 예전보다 더 자주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그리고 결국엔 또, 생각한다.



내가 쓴 글에는 나의 구멍들과, 그에 대한 생각들이 있다. 덕분에 구멍을 숨기고 불편한 걸음으로 걷다가도 쉬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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