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민석
내가 한 일에 대해 끊임없이 반추한다. ‘혹시나 내가 한 말에 상처받지 않았을까?’, ‘나의 말로 인해 상황이 그르친 건 아닐까?’, ‘그 상황에서 더 나은 선택지가 있지 않았을까?’ 등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돌릴 수 없는 일에 대해 후회한다. 이번 A4를 구성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누군가의 면접을 보고, 당락을 결정한다는 것에 심히 마음이 쓰였다. 사실 나보다 더 훌륭한 글을 쓰는 사람도 있었을 텐데, 나의 능력이 조금 더 뛰어났다면 그들을 모두 수용하고 학회를 구성하였을 텐데 말이다.
한 친구는 나에게 ‘너의 말은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인데, 그 말이 너무 날카로워.’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 순간이 아직 잊히질 않는다. 누군가를 위하는 말을 끊임없이 고민했지만, 그 말들이 누군가에게 결국 날카로움으로 느껴졌다. 그 이후로 더 말을 아끼기 시작하였다. 필요한 말만 하였고, 말수는 점점 줄었다.
어느 순간 진짜 나의 이야기를 쓰는 방법도 잊어버린 느낌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던 나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부터 종이 위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혹시 나의 생각을 전달하여 누군가를 상처주는 일이 없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불과 어제만 해도 나의 생각을 말하였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 결국 나는 또 그 말을 그 순간 안 했다면 하는 고민을 반복하게 된다.
글을 적는 이 순간에도 ‘나’를 못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설명할 거창하고 화려한 말도 없을 뿐더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수록 나는 그저 방안에서 우울해 하는 멍청이 정도로 생각이 수렴한다. 그 어떠한 책도 나를 알려주지 않고, 어떠한 인간 관계에서도 나를 찾아낼 수 없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여 국문과에 왔고, 여전히 그 행위를 사랑하지만, 어느 순간 적는 글에는 ‘나’가 빠져 있다.
총기 있던 눈으로 누구보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21살 최민석은 없다. 그 조차도 모두 거짓된 나였음을 약 3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입학하며 확신했던 나의 장래는 어느새 모두 없어져 사라졌고, 곧 받을 졸업장을 내가 받아도 되는 지에 대한 의문과 의심은 내가 무엇을 한 것인지도 모르는 상황에 당황스러움으로 다가온다. 그저 이전에 쓴 글을 보며 ‘이런 일도 있었고,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은 다시 ‘지금은 왜 이렇게 못하지’라는 고민으로 귀결된다.
친구들과 즐겁게 술을 마셔도, 그 순간에는 그 집단의 소속감이 형성되어 내가 즐겁고, 유쾌한 사람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그 순간이 지나가면 그 소속감은 없고 공허함만이 남는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 그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이번 학기 A4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에 대한 고민이 깊은 사람들이 모여 글을 써가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조금이나마 찾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A4를 구상하게 되었다.
그 과정을 시작하기 전의 나는 아마 ‘찌질한 사람’일 것이다. 끊임 없이 자신의 고민 속에서만 살아가고,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에 후회하며, 자책을 지속하는 사람을 우리는 소위 ‘찌질한 사람’이라 부른다. 앞서 설명한 나를 보면 현재 나는 찌질한 사람이다. 지금은 나의 찌질함을 부정하고 싶다. 그렇지만 말미에 찾은 나의 실마리가 찌질함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하진 못하더라도, 그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지를 고민할 것이다.
나는 찌질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