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가 김민지에게
-27일의 이야기
자유에서 오는 불안을 아십니까? 자유와 불안, 조금 상충되는 듯한 단어들의 조합입니다만, 그것은 실존합니다. 며칠 간의 인턴 생활 간 그것은 스스로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일이 없이 모니터를 쳐다볼 때, 주위 사람들도 제 모니터를 주시하는 것 같습니다. 남들은 편해서 좋겠다고 말하지만, 감시 아닌 감시 속에 살아 피곤합니다. 다행히 오늘은 꽤 바쁜 하루였습니다. 덕분에 시간도 빨리 갔고, 적당한 성취를 느꼈습니다.
인턴을 시작하고, 조금 여유를 느낍니다. 전에 학회나 스타트업을 위주로 하루를 보낼 때는 나의 영역이 침범 되곤 했습니다. 자정에 잡힌 회의, 업무로 가득 찬 새벽 등이 주 용의자였습니다. 지금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여 퇴근하니 휴식을 지킬 수 있습니다.
-26일의 이야기
어제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레 쫓기고 있다는 불안감에 우울이 날 감쌌습니다. 어딘가로 달아나고 싶은데, 사방이 막힌 방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멈춰서 좇는 이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를 쫓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습니다.
'나'는 회사에서부터 나를 쫓아왔습니다. 자유에서 불안을 느낀 것도 '나' 때문일 겁니다. 혼자 남겨진 사이에 가까이 다가와 인지하고 만 겁니다. 아아아 어째서였을까 '넌' 누구냐
-'나'의 이야기
언제나 최선을 다했습니다. 100을 할 수 있으면, 120까지 하려고 했습니다. 가끔,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고, 그때는 공부나 열심히 사는 것에 관심 없었다고 괜스레 농담하곤 했습니다. 각자의 '열심'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는 제각각 다르단 것을 압니다. 사실 그때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다만, 대상이 연예인이었을 뿐입니다. 늦은 밤에 연예인의 스케줄을 정리해도 피곤함을 몰랐습니다. 더 즐겁게 좋아할 수 있도록, 사진 편집 등을 배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나는 대상이 바뀜과 동시에 바뀌었습니다.
고등학교 무렵 새로 찾은 대상은 '나'였습니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목표는 정했는데, 막상 방법이 없었습니다. 겨우 고른 게 공부였습니다. 미친 듯이 문제를 풀었고, 후회가 남지 않도록 쏟아부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오고 방법이 바뀌었습니다. 공부는 학회와 소모임, 또는 공모전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나'를 갈아 넣고, 갈아 넣으며 고통을 느껴도 결과가 모든 것을 상쇄했습니다. 상쇄, 상쇄라는 단어로는 부족합니다. 마약 같은 행복이었습니다.
왜 마약이 위험한 것인지. 극도의 도파민을 경험한 뇌는 다른 자극에 무감각해지고, 그것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라면 무엇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나'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소화하지 못할 일들을 소화하려 했습니다. 고통 뒤엔 큰 행복이, 큰 고통 뒤에는 더 큰 행복이 계속되었습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망가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와 무리를 말하는 게 어리석음을 잘 압니다. '나'의 평생은 늘 한계를 시험하는 과정이었으니까요. 노력에 대해 논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일련의 화학 반응으로 생긴 앙금에 대한 얘기입니다. 분명 중학교 때 나의 열정은 대상만 다를 뿐 정도는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한 번의 순환이 끝나고 잔여물은 상반됩니다. 그때는 과정도 즐거웠습니다. 지금은 과정이 고통스럽습니다. 무엇이 다를까 한참을 고민해 봤습니다. '나'는 커다란 착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과정이 아닌, 본질부터가 달랐습니다.
누군가의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 '나'의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에 가격표가 매겨진 다는 것은, 결과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칩니다. '나'는 이 평가에 싫증을 느꼈던 겁니다. '나'의 만족만으로 행하던 블로그가 스펙이 됨을 깨달았을 때, 블로그에 대한 흥미는 급속도로 식었던 기억처럼요. 어른의 세계는 더 냉혹합니다.
공모전의 끝은 결국 순위입니다. 1, 2, 3 작은 숫자에 며칠의 가격이 매겨집니다. 가격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도파민이 치솟지 않습니다. 그래서 혹시를 준비합니다. 우울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가 끝나면 다른 하나를 시작합니다. 바라던 결과가 나옵니다. 아, '나'의 노력은 보상받았습니다.
'나'는 행복에 절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럽습니다. 멈춰야 합니다. 스스로 멈춰 서길 바라는 건 꿈같은 얘기입니다. 이미 이 굴레에 순환에 중독되었습니다. 그러나 멈춰야 했습니다. 그런 우연을 갈망하던 '나'는 간단한 말 한마디로 구원받았습니다.
-나의 이야기
어색해도 된다는 말, 불편해도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평생 어색함과 불편함을 용납하지
못했던 걸 깨달았습니다. 남들과 어색하지 않으려 거절하지 못한 일들, 혼자 불편함을 느끼기 싫어서 억지로 잡고 있던 일들을 내려놓았습니다. 동시에 여유를 배웠습니다.
이번에도 대상은 나입니다. 그러나 방식은 조금 다릅니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찾아보고 있습니다. 호와 불호를 가르기보다는 호를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남은 사금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업무로 가득 찼던 밤이 영화와 함께하는 밤이 되었습니다. 내일 할 일들로 빼곡했던 일기를 오늘의 감정으로 써내립니다. 시간을 되찾고 있습니다. 덕분에 나를 쫓던 '나'와 대화를 나눌 기회도 생겼습니다.
'나'를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평생을 후회 없는 삶을 바랐지만, 미숙하였기에 연민을 느낄 뿐입니다.
오늘도 과거의 '나'는 관성으로 남아 나를 재촉했습니다. 타인이 보기에 나는 아직 조급한 사람일 겁니다. 새로운 나와 많은 날을 보내지 않아 더 그렇습니다. 언젠가 시간의 마찰력에 과거는 과거가 됩니다. 그때는 조금 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바뀌지 않는 단 한 가지는 있습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겁니다.
그래요. 지금은 공백을 여백으로 바꾸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자유가 불안을 동반하는 게 아닌 여유를 동반할 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