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헌이 이경령에게
※이 글은 이경령 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연작수필의 형식으로 각색한 것입니다.
1. 노래하는 아이
어린 아이가 무대 위에 서 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서 있는 아이는 얼핏 보면 별 생각 없이 눈을 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속으로는 긴장하고 있었다. 아이가 긴장한 마음을 달랠 새도 없이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평소에 다같이 연습하던 것처럼, 그렇게만 하자. 되뇌이며 아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귀로는 음악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내고 있으면서도 아이는 금방이라도 어디서 무언가 터질 것 같아 속으로 떨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돌아다니는 시선 속에 자신을 보고 있는 부모님이 들어왔다.
그 순간에 터질 것 같던 떨림이 멈췄다. 합창무대를 보러 온 사람들이, 아이의 곁에서 입을 모아 목소리를 내고 있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서야 아이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늘처럼 맑으면서도 별님처럼 반짝이는 목소리였다. 그 날 노래하던 아이는 내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어린 나의 모습이었다.
내 곁에는 늘 내 노래를 듣는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친구들이 있었다. 맥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 중에서도 생각나는 한 사람이었다.
서로의 노래를 모르고 만난 우리가 노래를 부르는 것하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곳에서 만나서 함께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너와 내가 함께 있을 때는 늘 우리의 노래도 함께였다.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 주었고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 너랑 있을 때면 나는 처음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던 어린아이가 느꼈던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때, 너는 가수가 되겠다고, 꿈을 가질 수 있게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얘기해주었다. 그 때 깨달았다. 네가 나에게 준 것만큼이나 나도 너에게 힘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함께 노래를 부르곤 했던 무대에 다시 서기란 어렵겠지만 살면서 몇 번이고 노래를 부르곤 했던 우리가 생각날 것이라고.
2. Home, sweet home
어린아이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게 되던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중학생의 나이에 한국을 떠나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가게 된 어린 나에게는 집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house는 있었는데 home이 없었다.
나는 홈스테이라는 방식으로 호스트 가족의 집에 살게 되었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호스트 가족들과 지내면서 가족이 아닌데도 가족처럼 같이 살고, 대화하고, 그러는 와중에 말 못할 거리감을 느끼는 내가 있었다. 단란한 가족 사진의 귀퉁이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외부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이번엔 그 곳에서 사귀게 된 친구의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됐다.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좋은 곳이었지만 사소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그 집의 부모님들은 자주 부부싸움을 하곤 했다. 자식들은 이미 잦은 부부싸움에 지쳐 휘말리는 것을 꺼려했던 터라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나의 몫이 됐다. 그렇지만 내가 들어준다한들 내 나이보다도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이들의 갈등을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그 대신에, 어느새부턴가 나는 그 분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알아차리고 대답해주고 있었다. 그걸로 그 분들은 나에게 많이 의지하고 아껴주었지만 이번에 나는 가족 사진의 한가운데에 서서 불편하게 웃고 있는 외부인의 기분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집 안에서 나는, house와 home이라는 단어들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을, 우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는 알 수 없을 만큼 아득하게 멀고 외로운 거리였다.
3. 나,너,우리
언제부턴가, 나는 나의 우선순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내게 상처를 입히는 말이 있어도 나는 내 상처를 가리는 데에만 급급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내게서 선뜻 나오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보다 상대방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는 데에 익숙해졌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끙끙 앓고 있는 나에게 손을 뻗었다. 이대로는 안된다며, 상처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하고 싶은 말을 하기로 했다. 상대방이 비록 나에게 실망하고 나를 미워하게 된다고 해도 꾹 참고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미움받진 않을까. 두려워하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은 배려심 뒤에 숨어 있던 나보다 할 말을 하는 바뀐 나를 더 많이 좋아해주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낸 용기가 지금은 대화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을 즐기고 있는 나를 세상으로 내보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외로워도 내가 외로운건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혼자 있으면 혼자서 안좋은 생각이나 고민들을 하곤 하다가 그런 것들은 떨쳐내기 위해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 안에서는 내가 혼자서 멋대로 안좋게 상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겪은 경험들, 친구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들었던 소중한 말들과 이야기가 들어가 있어 나는 사진앨범처럼 언젠가 내가 쓴 글들을 되짚어가며 그 당시에 느꼈던 희로애락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다.
나를 위해서 쓴 글들은 이제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친구에서부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독자들에게 내 추억들로 채워진 나의 글이 어떻게 읽히게 될지를 생각한다. 어린 아이였던 내가 합창을 하던 것과 같이, 내가 좋아서 시작했던 일이 결국에는 다른 사람과 함께,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이 되었다.
생각해보면,누군들 안 그렇겠냐만은, 나의 생각과 나의 글은 항상 다양한 타인들로 채워져있다.
내가 의지하는 사람들, 나에게 의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고, 앞으로 내가 기대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길에도 그들과 함께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를 읽고 있는 여러분들과도 함께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