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는 게 기억하는 것보다 더 좋아요. 왜 제일 이렇게 끔찍한 기억이 계속되는 걸까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스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앤의 대사이다.
앤은 새로운 집으로 입양되어 가는 설렘에 들떠 있다. 하지만 예전에 좋지 않았던 기억도 떠오른다.
기뻐해야 하는 순간에서도 슬픔을 생각해야 하는 앤이 가엽게 느껴졌다.
비단 앤만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취업에 성공한 기쁨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두려움,
진급에 성공한 보람과 새로운 직급에 대한 부담감,
승리를 이루어 낸 쾌감과 이 승리를 지킬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현재의 기쁨과 미래의 두려움은 공존하기 마련이다.
미래의 두려움은 과거에 좋지 않았던 기억에서 나오기도 한다.
과거의 좋지 않았던 당장 없앨 수는 없다.
다만 그런 기억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음껏 기뻐하고 싶을 때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빗물을 완전히 털고 우산을 실내로 가지고 들어오기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말끔히 털어내고 내 마음 안으로 가지고 오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인의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다. 많은 노력과 치료로 완치되셨단다. 아니 완치된 것으로 알고 계셨다. 얼마 후 암이 재발했다. 아버님은 처음에는 어떻게 해서든 암을 제거하고 싶으셨다고 했다. 암을 떼어 내기 위한 모든 것을 하셨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더 쌓이셨다고 했다 오히려 몸이 더 안 좋아진 이유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생각을 고치셨다고 했다.
그분의 따님이 이런 말을 했다.
"암을 떼내려 하지 않고, 암과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마음먹으셨어요"
아버님은 암을 이별의 대상이 아닌 동행의 대상으로 보신 것이다. 다행히 그 이후 아버님은 치료를 받으시며 잘 생활하고 계시다고 했다.
인정하자. 아픔을 지우려 하지 말고 아픔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보자.
그렇게 아픔과 친구가 되면, 그리고 시간이 되면 그 친구가 알아서 먼저 조용히 떠날 수도 있다.
슬픔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하며 의연한 마음을 가지는 것.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조용히 내 곁에 두는 것. 그것이 슬픔과 이별하는 첫 단계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빨간 머리 앤이 매튜 아저씨, 마릴라 아주머니와의 행복한 삶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도 지난날 아픈 기억과 동행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