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교지편집위원회
1. 계보를 정리하게 앞서
한국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밈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5대 여성 래퍼는 윤미래, T, 타샤, 타이거JK 아내, 조던 엄마’라는 밈인데, 이 5개의 호칭은 전부 한 사람을 지칭한다. 좋게 포장하면 한국 힙합계에서 윤미래라는 사람이 얼마나 범접할 수 없는 위치의 아티스트인가를 보여주는 밈이겠지만, 이 밈의 진의는 오히려 ‘한국 힙합계에 이만큼 주목할 만한 여성 힙합 아티스트가 없었다’를 비꼬는 것에 가깝다. 이미 수많은 여성 힙합 아티스트들이 지금 힙합계의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밈이 지속해서 언급되는 것을 보면서 수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을 평가절하시키고 지워버리는 상황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고, 이번 기획을 통해 20년 남짓의 한국 힙합 역사 속에 어떤 아티스트들이 존재했고 자취를 남겼는지 기록해보기로 했다. 이러한 기획을 통해 여성 흑인음악 아티스트들이 왜 지금 시점에 두각을 보일 수 있었는지 배경을 설명하고, 여성 아티스트들이 노력해온 역사를 조명하면서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저평가와 의심을 일으키는 편견을 지우는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 업타운과 윤미래
한국 힙합 역사 속에서 여성 아티스트가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윤미래라고 할 수 있겠다. 윤미래는 본격적으로 흑인음악이 한국 대중음악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절, 업타운이라는 그룹을 통해 데뷔했다. 윤미래는 데뷔 시점부터 이미 랩과 보컬 모두 인정받을 정도의 실력자로 유명했고, 데뷔 이후 활발한 활동들을 통해 한국 힙합 역사에 길이 남을 실력자로 기록된다. 그러나 이 글이 주목할 것은 윤미래가 이렇게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이후의 이야기인데, 업타운이 2000년대 초반에 마약 등의 구설수로 사실상 해체되자 윤미래는 드렁큰타이거와 함께 무브먼트 크루 활동을 위주로 하며 업타운을 나온다.
그 이후 업타운을 부활시키기 위한 시도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지금은 모두에게 익숙한 Jessica H.O.(현 제시)가 객원 멤버로 참여한 업타운의 5집이 나왔다. 제시는 이 앨범을 통해 대중에게 처음 이름을 알렸고, 업타운의 멤버가 스윙스를 주축으로 한 멤버로 또 재편되면서 활동이 뜸해졌다가 2009년 『인생은 즐거워』라는 노래를 들고 컴백을 한다. 그러나 노래의 반응이 미적지근한 탓에 또다시 휴식기를 거친 제시는 모두가 알다시피 [언프리티랩스타]를 통해 날아오르게 된다.
▶︎ 『인생은 즐거워』 당시 제시
윤미래와 제시 둘 다 그룹 내의 다른 남성 래퍼들에게 대부분의 랩 파트를 내줘야 했고, 그 후 본인들의 홀로서기 이후에 랩 실력이 주목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랩과 보컬 두 가지를 전부 소화 가능한 아티스트들이기에 힘겹게 힙합계에 안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후에 등장한 수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남성적인 발성과 마초적인 가사를 소화하거나 혹은 래퍼들을 보조하는 보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역할이 치중되는 양상을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보여준다. 이런 흐름 속에서 스윙스와 버벌진트가 중심이 되는 오버클래스, 그리고 딥플로우와 바스코(현 빌스택스) 등을 주축으로 한 지기펠라즈, 더콰이엇을 필두로 한 소울컴퍼니 등의 대형 힙합 크루들이 힙합계를 장악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3. 힙합 크루의 시대 속 여성 아티스트들
이러한 크루 들에는 현재 유명해졌거나 혹은 현 힙합계를 이끄는 사람이 된 래퍼들이 많았는데, 그사이에는 당연하게도 여성 아티스트들이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스윙스와 버벌진트, 산이가 주축이 된 오버클래스라는 크루는 독보적으로 여성 아티스트들의 참여가 돋보였다. 당시 이 크루의 여성 아티스트 중에는 어반자카파의 조현아, 리미 등의 여성 멤버가 있었고 이들은 본인들의 존재감을 어필하며 크루에 큰 힘을 실어주는 멤버들이었다. 이 중에서도 오버클래스에는 초창기 멤버 중 스테디 비(Steady B)라는 래퍼가 있었는데, 90년대 말부터 여러 곡에 참여한 베테랑 래퍼였음에도 본인의 이름을 건 커리어가 부족한 래퍼였다. 오버클래스에 합류한 이후 화려한 크루 원들의 지원 속에 2009년 [Steady Lady]라는 첫 정규 앨범을 내게 되지만 화려한 참여진에 오히려 본인의 존재감이 묻혔다는 평가와 함께 본인의 실력도 평가절하되며 이후 별 활동 없이 크루를 탈퇴하며 은퇴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Steady Lady]는 윤미래 말고는 찾기 힘들었던 10곡이 넘는 꽉 찬 구성의 여성 래퍼의 앨범이라는 점에서 후에도 종종 기억되는 앨범으로 남았다.
스테디 비의 활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오버클래스가 새로 영입한 Rimi(리미/남수림)이 등장한다. 리미는 그 쟁쟁하던 당시 오버클래스 크루 멤버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랩 실력으로 등장하자마자 주목을 받던 여성 래퍼였다. 리미는 오버클래스 크루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Collage 2]의 [I’m Hot]이라는 곡으로 단숨에 주목을 휩쓸었는데 (당시 앨범 평들에는 앨범에 참여한 수많은 아티스트들 중 오버클래스에 갓 합류한 산이와 리미에 대핸 찬사가 대다수였다) 해당 곡 이후 몇 개의 믹스테이프를 낸 뒤, 첫 정규 앨범인 [Rap Messiah]를 발매한다.
“내 rhyme은 거룩한 rhyme
내 말은 거룩한 말
거룩한 skill 거룩한 flow
거룩한 bitch의 거룩한 글”
리미 『림교』 中
이 과정에서 리미는 한국 힙합계에 엄청난 인상을 남겼다. 종전의 힙합계에서는 윤미래를 필두로 하는 – 흑인음악 본토의 느낌을 재현해내는 보컬리스트이자 랩까지 되는 - 여성 아티스트만이 존재할 수 있었다. 리미는 이러한 프레임을 비웃듯 보기 좋게 깨부수며 오롯이 본인의 랩 스킬을 과시하는 행보를 보였고 리스너들은 이런 신선한 충격에(놀랍게도 이전에는 이런 여성 아티스트가 없다시피 했다)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계속되는 차별, 음악 외적인 논란, 앨범에 대한 많은 좋은 평가와 상반되는 판매량 부진 등이 겹쳤고, 힘든 상황이 이어지는 속에서 한국 힙합계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리미는 이후 리미와 감자라는 코믹 힙합 듀오로의 활동와 남수림이라는 이름으로 발매한 몇몇 잔잔한 노래들을 거쳐 현재는 음악 활동을 접게 된다.
[1] 이는 동시기에 활동했던 스윙스 등의 남성 래퍼들이 온갖 논란과 사고, 부진에도 불구하고 현재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는 모습과 극명하게 대조된다고 볼 수 있다.
▶︎ 리미의 공연
오버클래스 크루 외에도 바스코, 딥플로우, 베이식 등이 주축을 이룬 또 하나의 대형 힙합 크루였던 지기펠라즈에도 여성 멤버인 Elly(엘리)가 있었다. 엘리는 지기펠라즈의 컴필레이션 앨범인 [The Blue Album]에서 처음 등장한 뒤, 같은 크루 원들의 곡들에 피처링 참여를 하는 식으로 소소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 본인 이름의 작업물은 내지 못한 채 조용히 힙합계에서 사라졌었던 멤버였다. 정확히는 사라진 줄 알았었는데, 어느 날 LE라는 이름으로 예명을 바꾼 뒤 걸그룹 Exid의 멤버로 음악계에 다시 등장하게 된다. LE는 이후 한국 여성 아이돌 판의 래퍼 포지션 중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데, LE의 선례 이후로 소소하게 사운드클라우드 등의 플랫폼에 본인의 작업물을 올리거나 작은 거리 공연을 해오던 무명의 여성 래퍼들이 아이돌로 데뷔하는 케이스가 종종 나타나곤 했다. 여담으로 최근에는 이와 반대로 아이돌로 데뷔한 뒤 그룹을 나와 흑인음악계에 들어오는 사례가 등장하기도 한다.
대형 크루 소속은 아니었지만, 더콰이엇이 속해있던 소울컴퍼니의 래퍼였던 라임어택의 정규1집에 수록된 [W.W.W]란 곡에 참여하며 씬에 처음 등장한 Jolly.V(졸리브이)는 곡이 수록된 앨범과 해당 곡이 좋은 반응을 끌어내며 리스너들에게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었던 래퍼였다.
이 외에도 이러한 대형 크루 밖에서도 2010년대 초반 소울컴퍼니의 해체와 더불어 힙합 크루들이 시들 해지던 시기에 기존의 힙합 사이트 게시판뿐만 아니라 사운드클라우드라는 새로운 활로가 활성화되면서 여러 여성 래퍼들이 본인들의 작업물을 공유하며 활동을 펼치곤 했다. 이 시기에 활동을 시작한 케이온[2], 최삼, 슬릭 등의 래퍼들은 기존에 등장하며 고착화된 여성 래퍼의 이미지에서 벗어난 음악을 내놓으며 크루 중심의 주류 힙합계에 속해있던 여성 래퍼들과 다른 가사들과 스타일로 소소한 주목을 받으며 활동을 이어나갔다.
4. 이비아와 [언프리티 랩스타]
▶︎ 이비아의 두 번째 EP 커버
동일한 시기에 리미와 더불어 대중적으로 크게 시선을 끌었던 여성 래퍼가 한 명 있었는데, 이 래퍼가 바로 e.via(이비아)였다. 당시 이비아는 힙합계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난 기획을 통해 데뷔했다. 강한 이미지가 대다수였던 힙합계에서 본인을 성적 대상화의 대상으로 상정한 ‘귀여운 (여동생)이미지’의 여성 래퍼이자 여자 아웃사이더라는 등의 이미지 메이킹을 홍보의 방향을 잡은 래퍼였다. 물론 기존의 한국 힙합계에서도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 래퍼인 니키 미나즈 등의 아티스트들이 그러했듯 “Bad Bxxch”, 즉 “나쁜 X” 컨셉을 잡고 활동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비아의 경우 ‘귀여운 외모’와 귀여운 이미지를 내세우는 동시에 남성들에게 자신을 성적으로 어필하는 [오빠! 나 해도 돼?] 같은 어그로성 제목과 선정적인 안무,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본인을 대중들에게 어필했다.
“Why not! why not? (왜? 안돼, 왜? 안돼?)
오빠 나 해도 돼?”
이비아 『오빠! 나 해도 돼? (XXX version)』 中
이런 마케팅은 대부분의 어그로성 마케팅들이 그랬듯이 휘발성이 지나치게 강했고, 활동 초기에 많은 주목은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 해졌으며 덩달아 이비아 또한 이러한 컨셉에 한계를 느꼈는지 곡을 내는 빈도수가 적어지며 모습이 뜸해졌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한국 힙합계의 최대 이벤트 중 하나였던 ‘컨트롤 대전’[3]
에 참가, 자신을 이비아로 데뷔시켰던 전 소속사 사장을 디스하며 타이미라는 이름으로 힙합판에 재등장하게 된다. 사실 타이미는 이비아로 데뷔하기 전 Napper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던 언더그라운드의 여성 래퍼였는데, 이 시절의 랩은 타이미로 이름을 바꾸고 낸 곡들의 스타일에 훨씬 가까웠었다. 이비아로 활동한 시기는 소속사 사장이었던 무브먼트 크루[4]의 김디지가 (언더그라운드 힙합 출신인 본인의 출신은 망각한 채
) 이비아에게 대중성을 강요하며 본인의 스타일을 버리고 ‘이비아’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상품화했던 것이다
. 그 과정에서 이비아는 회의를 느끼고 재계약을 포기한 뒤 아웃사이더의 아싸커뮤니케이션과 계약을 한 뒤 타이미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 나가던 중 한국 여성 힙합 역사의 가장 큰 분기점 중 하나가 된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 1]에 나가게 된다.
기존 여성 힙합 아티스트들은 크게 ‘Bad Bxxch’로 대표되는 강한 이미지의 아티스트들과 이와 대조되는 일상적이고 가사적인 부분에 중점을 둔 주류에 벗어난 여성 아티스트 두 가지로 갈리곤 했다. 이러한 양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2010년 초반이 지나갈 즈음, 한국 힙합계의 방향을 크게 바꾼 [쇼미더머니3]가 성공을 거두게 되며 이후 엠넷은 [쇼미더머니3]에 나와 주목을 끌었던 타이미와 졸리브이의 디스전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언프리티랩스타]라는 프로그램을 런칭하게 된다.
이 프로의 핵심은 위에서 언급한 ‘Bad Bxxch’를 표방하는 래퍼들을 모아 기 싸움을 찍고 내보내는 것이었다. 그에 최적화된 출연진으로 제시, 졸리브이, 타이미, 릴샴, 치타, 키썸 등을 데려와 그들이 경쟁 과정에서 기 싸움을 하는 모습을 엠넷 특유의 편집을 통해 선보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여성 래퍼들의 이미지는 이미 고착화된 ‘센 언니’ 클리셰에 더욱 갇히게 됐다. 특히 [언프리티랩스타]에 나온 대다수의 래퍼가 본인의 작업물이 없는 아이돌 출신, 혹은 [쇼미더머니] 시리즈의 탈락자 출신 위주로 꾸려져 출연진 선정에서부터 한계가 명확했으며 상대적으로 [쇼미더머니] 시리즈에 나온 남성 래퍼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출연진 구성은 여성 래퍼들의 실력에 대한 인식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받는다. 이는 [언프리티랩스타3]에서 [쇼미더머니6]에 나온 남성 래퍼들과 [언프리티랩스타3]의 출연진을 대놓고 대립 구도로 만드는 기획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었다.
[언프리티랩스타] 시리즈는 여성의 힙합 참여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췄다는 나름의 긍정적인 평가와, 아이돌 래퍼들의 선전을 보여주며 그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끌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5]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헤이즈를 필두로 하는 언프리티 랩스타의 출연진이 추후 랩이 아닌 R&B 장르의 보컬 작업물로 더 인정을 받게 되는 경향, 또한 이들과 경쟁을 펼쳐 승리한 랩퍼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작업물이 연달아 실패하게 되는 상황들이 겹쳐 결과적으로는 여성 래퍼들의 랩 실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했다고 해석하는 의견이 많다.
5. 재키와이 그리고 현재
[언프리티랩스타]를 기점으로 대중들에게 여성 힙합 아티스트들의 실력에 대한 불신이 심해진 상황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슬릭, 케이온, 최삼 등 앞서 언급한 방송 출연 없이 사운드클라우드와 본인들의 작업물 위주로 활동해오던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묵묵히 해왔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엠넷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듯 부정적인 상황이 이어지던 상황은 트랩의 부흥과 함께 pbr&b[6]라는 새로운 장르의 바람이 불게 되며 급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랩과 노래의 경계가 옅어지고 오토튠이 적극적으로 도입됐고, 굳어진 여성 힙합 아티스트 이미지에 맞춰 남성적인 발성을 내야 하거나 아예 랩을 포기하고 보컬에 치중한 음악을 하지 않고서는 인정받기 쉽지 않던 여성 힙합 아티스트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활로가 열리게 된다. 이는 [언프리티 랩스타] 이후 보컬에 치중한 음악을 하던 다른 여성 아티스트들의 인식 개선에도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 Hypebeast 재키와이 인터뷰 사진
이러한 흐름을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한 아티스트가 Jvcki Wai(이하 재키와이)였다. 재키와이는 [Ugly Juction]이라는 소규모공연장을 열어 꾸준히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발굴하던 소울컴퍼니 출신의 화나가 주최한 여성 래퍼 컴퍼티션이었던 [GALmighty]를 우승하며 씬에 처음 등장했지만, 그 이후 별 활동이 없던 래퍼였다. 그러나 컴퍼티션 당시와 전혀 다른 트랩과 오토튠에 치중한 스타일로 냉소적이며 아나키즘적인 가사가 특징인 본인만의 색을 선보인 첫 EP 앨범 [Exposure]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안 맞춰 X 같은 법에 난 잃을 게 없는데
뭘 나눠 이분법에 난 인간
X녀도 성녀도 아니네”
재키와이 『Anarchy』 中
특히나 pbr&b 장르의 아티스트들은 사운드클라우드 플랫폼과 SNS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특징이 있었다. 때마침 [언프리티랩스타]와 [쇼미더머니]를 통해 대중들의 힙합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상황과 pbr&b 장르의 힙스터 적인 성격이 맞물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들의 작업물을 발굴하는 시도가 많아졌고, 이런 흐름 속에서 재키와이라는 독보적인 스타일의 아티스트는 한국 힙합계의 큰손이 된 스윙스의 러브콜을 받아 인디고 뮤직에 들어가게 되면서 힙합계의 중심에 등장하게 된다.[7]
재키와이는 사실상 리미 이후 거의 유일하게 힙합계의 유행을 선도하는 여성 힙합 아티스트가 됐다. 재키와이를 통해 새로운 스타일의 힙합 장르를 접하게 된 대중들이 여성 힙합 아티스트에 대한 선입견이 아주 옅어진 상황은 이후에 비슷한 장르의 작업물들을 발매한 스월비, 릴체리, 윤훼이, 브린, 제이클레프 등의 여성 아티스트들에게도 주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실제로 재키와이의 등장 이후 한국 힙합계에 여성 아티스트들이 대중들에게 주목받는 빈도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 제이클레프
그러나 재키와이가 음악계의 중심에 자리하게 된 배경이 스윙스라는 한국 힙합계의 대표적인 인물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점, 재키와이에 이어 주목을 받은 다른 여성 아티스트들 또한 기존에 존재하는 힙합 레이블을 통해서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은 아직도 여성 힙합 아티스트들이 남성 중심적인 힙합 문화의 영향 아래 놓여있는지 보여주는 한계라고 봐야 한다. 이는 그들이 얼마나 양질의 작업물을 내고 대중들에 인정을 받는가와는 전혀 무관한 양상이다. 이들의 작업물을 동료 남성 아티스트들이 주목해야만 대중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은 한국 힙합계의 한계를 실감하게 한다.
과거 헤이즈가 씬에 처음 등장했을 당시 한 남성 래퍼의 애인으로 이름이 알려졌던 것, 윤미래가 아직도 타이거JK의 아내로 인식되며 본인의 작업물보다 드렁큰타이거와 함께한 작업물이 더 많은 현실, 동료 의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남성 래퍼들의 여성 래퍼 성적 대상화와 비하 등의 사례[8]를 통해 과거부터 뿌리 깊게 이어져 온 극단적 남성 중심의 힙합 문화는 남성 아티스트들이 음악의 변화와 발전을 이어나간 시간에 동료 여성 아티스트들 또한 발전을 거듭해왔음을 망각해온 것이다.
6. 계보를 정리하며
20년 정도의 한국 힙합의 역사 속에서 여성 아티스트들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들이 빛낸 음악 또한 정말 많았음에도, 뚜렷하게 본인들의 이름을 역사 속에 각인한 사람들은 정말 많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이들에게 이름을 알릴 기회도 많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한국 힙합 사의 중심에 자리 잡은 여러 남성 아티스트들은 여태껏 여성 아티스트들의 곡 참여 등의 도움이 필요해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도움을 받아오면서도, 정작 자신들과 함께 주인공이 될 기회는 주변의 남성 아티스트들에게만 줘왔던 현실을 봐야 한다.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 중에서 이름을 알린 남성 힙합 아티스트 중에는, 그저 자신의 인맥과 끈끈한 ‘남성 연대’의 힘으로 유명해진 사람들이 여럿 있다는 것을 대중들은 이미 여러 차례 봐왔었다. 성공할 기회의 파이가 적었던 과거와 달리 힙합계의 경제적 파이 자체가 커진 지금에서나 재능 있는 여성 아티스트들에게 손을 내밀며 ‘자신들은 원래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열려 있다’ 식의 발언들을 했던 남성 아티스트들은, 분명 그 이전에도 그런 재능이 있는 여성 아티스트들은 이미 유능한 남성 아티스트들만큼 존재했으며, 그저 그들에게 마이크를 주기 전 다른 남성들에게 먼저 무대를 세웠을 뿐임을 그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계보를 정리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 아티스트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관심을 지속해서 가질 기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 수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이용해 자신들의 재능을 펼치고 있는 것을 반겨야 하고 또 그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음악가들에게는 팬들이 곧 활동의 근간이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들에게 지속적인 지지와 관심을 이어나가 이들이 한국 흑인음악계 속에서 자신들의 지지 기반을 굳건히 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1] 현재 본인의 안경 브랜드를 런칭해 사업 활동 중이다. 최근 팝스타 자넬 모네가 이 브랜드의 안경을 착용해 화제가 되었다.
[2] XXXYYY라는 여성 래퍼 5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크루 소속이다.
[3] 미국 유명 래퍼인 켄드릭 라마의 광역 디스곡인 [Control]의 비트를 가지고 스윙스가 한국힙합계를 대상으로 광역 디스곡을 냈고, 이후 여러 래퍼들이 이에 동일한 비트로 응답하는 곡을 내던 중, 슈프림팀의 멤버이던 이센스가 이 비트에 전 소속사 사장이었던 다이나믹 듀오를 디스하는 랩을 하며 한국 힙합계 전반에 걸쳐 벌어진 디스전이었다. 당시 가장 유명하던 래퍼들 대다수가 참전하여 한국 힙합 역사상 가장 큰 이벤트로 기록된다.
[4] 드렁큰타이거가 수장이며 에픽하이, 다이나믹듀오, 은지원, 리쌍 등이 속해있던 국내 최대의 힙합크루였다. 당시 드렁큰타이거가 김디지를 무브먼트 크루의 자존심이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5] 다만 이는 [쇼미더머니] 시리즈에도 동일하게 나오던 평가였다.
[6] 힙합, 알앤비,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장르로, experimental r&b라고도 불리며 드레이크가 이 장르의 유행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로는 위켄드, 프랭크 오션 등이 있고 딘이 이 장르를 국내 힙합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7] 현재는 인디고 뮤직을 상호 합의 하에 나온 상태이다
[8] 대표적인 사례로 블랙넛의 키디비 성적 모욕 건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