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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장들

밥과 똥

김훈, "연필로 쓰기"

by 소기


내가 중2 때 박정희 소장이 군대를 이끌고 한강을 건너와서 정권을 잡았다. 그해 겨울에 병수네 아버지가 내리막에서 사고를 냈다. 똥구루마의 관성속도를 이기지 못해서 길바닥에 쓰러졌다. 병수 아버지는 다쳤고, 골목에 똥이 쏟아졌다. 동네 엄마들이 비명을 질렀고, 쓰러진 병수네 아버지를 몰아붙였다. 병수는 똥칠갑이 되어서 아버지 옆에서 울었다. 밥을 먹고 눈 똥을 치워서 또 밥을 먹어야 하니까, 밥이 웬수고 똥이 웬수였다. 그날은 내 소년 시절에서 가장 슬픈 날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이 슬프다.

김훈, "연필로 쓰기"



먹고 싸는 이야기는 아침이든 저녁이든 언제 들어도 참,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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