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떠올릴 것

by 소기

병원에 다녀왔다.

갔다 오면 별것도 아닌데

가기까지가 왜 그렇게 귀찮은지...


몸의 불편함이나 마음의 쓰임도

또 병을 키우고 앉았다는 아내의 다정한 잔소리도

끝끝내 귀찮음을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엔 완전히 졌다.

오랜 벗처럼 가끔 드나들던 통증이

어때? 이번엔 좀 다르지 않아?

하고 버티는 통에 그만, 항복하고 말았다.


ㅡ어디가 불편하세요?

ㅡ목이랑 어깨 뒤쪽이요.

ㅡ또 아프신 데는요?

ㅡ또요? 음... 손목이랑, 네? 아, 왼쪽이요. 그리고 무릎이... 어느 쪽이더라? 하도 오래돼 가지고 이게... 허허.


간호사가 양쪽 다 보면 된다고,

더 없으시냐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발목과 뒤꿈치까지 이야기하려다 그만두었다.


예약하지 않아서 그런지

한참을 기다려 엑스레이 스물한 장을 찍고 나와

또 한참을 기다린 끝에 진료실에 들어갔다.


ㅡ다치셨어요?

ㅡ아니요. 다른 데는... 오래됐고, 목이랑 어깨는 오늘 아침에 갑자기...


솔직히 말하기 민망해 대충 얼버무렸다.

생각할수록 창피한 일이다.


ㅡ아빠, 나 심심해.

ㅡ아빠 일하는 중이잖아.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아이가 다가와 몸을 기댔다.

평소 같으면 볼록한 배가 귀여워 꼭 안아줬을 텐데

하필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있던 중이었다.


ㅡ아빠 일하는 걸 왜 봐?

ㅡ안 봤는데?

ㅡ봤잖아, 모니터.

ㅡ아빠 봤어. 여기 아빠 사진.


아이가 사내 메신저에 있는 내 사진을 가리켰다.

그래? 미안해. 아빠가 오해했어.

또는,

아빠 일하는 중이니까 조금만 이따가 놀자.

아니면 최소한,

어때? 아빠 잘생겼지? 껄껄껄. (이건 아닌가?)

정도가 그나마 정답일 텐데

여기서부터 오답의 향연.


ㅡ숙제했어?

ㅡ응.

ㅡ그래? 영양제 먹었어?

ㅡ응, 먹었는데.

ㅡ그래?

ㅡ응, 좀 전에.

ㅡ근데 너 개인 훈련 안 하니? 레슨 가서 배운 거, 집에서도 매일 해야 야구가 늘지. 레슨 가서만 하고, 집에서는 맨날 놀기만 하고 그럼 뭐 하러 레슨해? 비싼 돈 내고, 왔다 갔다 힘들고, 춥고 배도 고프고, 아빠도 윽!


그때였다.

목덜미가 뻣뻣했다.

저릿한 통증이 목덜미와 어깨를 따라 흐르다 별안간

정수리를 찔렀다.

식은땀이 났다.

목을 움직일 수 없었다.


ㅡ일자목이시네요.

ㅡ네에...

ㅡ일자목이 담에 결리거나 통증이 생기기 쉬워요. 심해지면 디스크가 오고요. 수영이 좋습니다. 머리를 뒤로 넘기는 스트레칭도 좋고요.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그런 경우가 많아요.


치료를 받고 약을 지어 돌아왔다.

좋지 않은 자세가 첫 번째 원인일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부끄러움.


잘못된 말과 행동을 한 것.

알고도 그렇게 한 것.

끝내 인정하거나 바로잡지 않은 것.

솔직하지 못한 것.

그리고,


ㅡ윽!

ㅡ아빠, 왜? 어디 아파? 괜찮아?


억울한 잔소리를 듣는 와중에도 해야 할 말과 행동을 한

어린아이보다 못한, 못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ㅡ아빠, 병원 갔다 왔어?


훈련을 마치고 나온 아이가 물었다.


ㅡ응, 아빠 손목에 주사 맞았어. 물혹이 생겨서. 좀 아팠는데 괜찮아.


아이는 내 손목을 조심스럽게 만지며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감사한 일이다.

이런 아빠에게 이런 아들이라니.


통증은 곧 잊힐 것이다. 물론 다시 찾아오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오늘 한 작은 다짐.


나와 아이에게 솔직하자.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떠올린다면 쉬이 잊히지 않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차는 괜히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