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과 점심을 먹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무얼 먹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단둘이 처음 하는 식사이고, 우리 팀에 와준 것이 고맙기도 해서 맛있는 것을 사 주고 싶었다. (신입사원은 존재 만으로도 감사하다.)
물론 메뉴를 못 고르는 병이 깊기도 하다.
ㅡ아무거나 다 좋아요.
'아무거나'라는 메뉴는 없는데?
혀끝까지 올라온 아재 개그를 꿀꺽 삼켰다. 잘한 일이다.
ㅡ팀장님은요?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이를 어쩐다......
언제 누가 묻든 항상 '아무거나'라고 대답했다.
선수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역공을 당했다.
평소 같으면 '네가 먹고 싶은 그거'라는 식의 되도 않는 말로 빠져나가곤 했는데 이날은 분명히 먹고 싶은 게 있었다.
***
ㅡ에에? 라며언?
식사를 하고 돌아온 신입사원을 붙들고 이야기하던 직원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빛이 '조롱조롱'하다.
ㅡ진짜 먹고 싶었다고.
며칠 전부터 유난히 라면이 '땡겼는데' 먹질 못했었다.
라면이 갈급했다.
내일은 꼭 먹어야지 하고 출근했고, 그날이 오늘이었다.
'아무거나' 말고 구체적인 메뉴를 언급한 건 몇 년 만의 일이었다.
그 직원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ㅡ아~ 거기? 거기 커피가 최고죠.
하아 이 녀석 보게. 건수 하나 잡았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적당히 맞춰 주었다.
라면을 먹고 데려간 카페가,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커피 맛집이었다.
그런데 하필, '싸고' 맛있는 곳이었다.
ㅡ가격도 착하고. 그쵸, 팀장님?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회사 다닐 맛이 나지 않겠나.
기꺼이 신입사원에게 라면과 싸구려 커피를 사 준 '눈치 없는 팀장'이 되어 주었다.
한참을 다 같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끝에,
다음에 맛있는 거 사줄게,로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라면이 뭐 어때서?
라면이 어떤 음식인가. 어제 소맥으로 시작해서 막걸리...까지만 기억난다, 엄마 파김치 보내셨다, 비 온다, 장터목 대피소다, 엠티 둘째 날 아침이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에 밥이 없다, 어떡해 벌써 열두 신데 배고프다, 라면 먹고 갈래요? 그녀가 묻는다 그래도. 안 먹을 텐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라면 함부로 무시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끈한 사람이었느냐*
까지는 오버이지만,
라면은 다정한 음식임에 틀림없다.
나는 라면이 고맙다.
다음엔 다른 맛있는 걸 먹겠지만
오늘은,
라면이었다.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오마주(hom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