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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완성

by 소기

하조대의 파도는 엄중했다.

쓸데없는 고민도, 넘치는 생각도, 한치의 망설임도, 헛된 분노도 미움도 후회도 허락하지 않았다. 엄하고 정중하게, 부딪고 부서지는 파도를 한참 바라보았다. 격정과 평온이 교차했다.


비가 듣기 시작했다. 서둘러 캐치볼을 시작했다. 아이에게는 '캐치볼 총량의 법칙'이 있어 매일 일정 시간 이상 캐치볼을 해야 한다. 그래야 평화로워진다. 가끔 의무감에 할 때도 있지만, 여행지에서 캐치볼은 언제나 즐겁다. 때론 환상적이다. 이날 이곳이 그랬다.


그동안 아내는 바다(모래사장에서 캐치볼 하는 부자)가 보이는 카페에서 강아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강아지는 내내 졸다가 한 번씩 아내의 얼굴을 올려다 보고 멀리 바다(모래사장의 그 부자)를 보곤 했다고 한다.


빗방울이 굵어졌다. 캐치볼 하길 잘했다. 숙소로 갔다. 평화로운 나절이었다.




숙소는 차로 2~3분 거리에 있었다. 걸어서도 바닷가에 갈 수 있었다. 영국 카라반 명가 W사의 럭셔리 카라반을 그대로 가져와 2000년대 초반 영국 감성을 느낄 수 있다고 했는데, 겉모습은 그냥 컨테이너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아, 이런 느낌?' 싶었다.


소위 말하는 '인스타 감성'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거실에 벽난로 스타일의 히터가 있고, 냉장고에 술이 가득(1인 1일 1병 무료), 아기자기한 소품들에 이케아 가구와 식기,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까지도...... 젊은이들에게 즐거운 추억이 될 만한 곳이었다.


감성과 위생은 공존할 수 없는지. 젊은이 빼고는 다 있는(늙어가는 이와 그의 아내, 어린이와 강아지. 아내가 좀 억울할 수는 있겠다) 우리 가족에게는 조금 아쉬운 점이 보이긴 했다. 우리 앞에 묵었던 이들의 취향과 머리 색까지 알 필요는 없지 않을까.


밤이 되고 맥주가 끊이질 않고* 신서유기는 시즌 5를 지날 뿐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위생 따위 개나 줘! 라기엔 개가 옆에 있어 좀 그렇지만, 나름 명백히 재미가 있는 공간이었다. (*여행을 떠난다면 H사의 케그를 꼭 지참하시길!)




캔자스 외딴 시골집에서

어느 날 잠을 자고 있을 때

무서운 회오리바람 타고서

끝없는 모험이 시작됐지요.

(만화 영화 '오즈의 마법사' 주제가 중에서)


다음 날, 오전에는 바닷가에서 놀고(오늘의 캐치볼 완료), 오후에는 강풍 경보로 숙소에 있었다. 카라반이 무섭게 흔들렸다. 이대로 잠들면 끝없는 모험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밤새 자다 깨다 했다. 역시 카라반은 젊은이들에게......




돌아오는 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터널을 통과하니 눈 세상이었다. 강원도는 신비롭다.

길이 막혔지만 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에 지루하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와 강아지는 잠이 들었다. 음악 소리를 줄였다. 고요하고 평화롭다.


집에 가고 싶다. 여행을 떠날수록 집이 그립다. 돌아가는 길이 설렌다. 떠날 때나 돌아갈 때나 가슴이 뛴다. 여행은 유효하다.




"집이 최고다."

강아지를 빼고는 모두가 같은 말을 했다. 아마 강아지도 거실에 들어서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익숙한 집이 설레고 반갑다.

여행의 묘미는 집이다. 돌아왔을 때,

비로소 여행은 완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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