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길고 길었으며 길었다.
어디든 가고 싶었고 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우선 어디를 갈 것인가를 정해야 했다. 밀양에 할머니가 계셔서 추석 당일에는 그곳에 가야 했으므로, 내려가는 길 어딘가를 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지도를 보며 고른 곳은 대구. 내려갈 때마다 항상 지나치는 곳이고, 그리 친하지는 않은 친척들도 여럿 사는 곳인데 여행이라고 할 만큼 머물러 본 적은 없는 곳이다. 이번 기회에 한 번 가 보자 했다. 장소를 정했으니 숙소를 정하면 사실상 여행 준비는 끝난 것이(라고 말해)다(오). 몇십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황금연휴를 불과 2주 남긴 터라 숙소를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매번 하게 되는 생각, 나는 왜 미리 준비하지 않는가,를 이번에도 어김없이 하며 구글링 하기를 한 시간 만에 적당한 숙소를 구하였고 바로 결제를 하였다. (대구에 있는 호텔인데 부다페스트에서 결제된 것은 비밀) 이제 시간이 지나고 떠나면 되는 것이다.
시간이 되었다. 길고 긴 연휴가 시작되었다. 우린 떠날 채비를 이미 끝마쳤다. 가는 길도 막히지 않았고 기분도 좋았다. 역시 여행이란 언제 어디를 가든 즐거운 일이다. 숙소에 도착했다. 그닥 좋지 않았다. 그랬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대구에 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실, 다섯 살 평생 기차에 빠져 살아오고 있는 아들 녀석이 모노레일을 타고 싶다고 해서였다. 대구에 그게 있었다. 대구 지하철 3호선이다.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으로 공중에 붕 띄워 만든 모노레일인데, 예쁘게 꾸며서 훌륭한 관광상품이 된 것 같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도 잘 활용했다. 아파트 등 건물 가까이 가면 자동으로 창이 불투명하게 바뀐다.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목적지는 수성못이었다. 아이는 로보카 폴리 모노레일을 타지 못한 것을 조금 아쉬워했다.
수성못에서 오리배를 탔다. 다시는 타지 않기로 했다. 오리배는 남들이 타는 오리배를 구경하는 것이지 타는 게 아니다,라는 교훈을 마음에 새겼다. 수성못은 어두워지며 더 밝아졌다. 저녁 무렵부터 밤에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수성유원지를 아들이 발견하고 말았다. 큰일이었다. 우린 지치고 숙소에 돌아가고 싶었다. 숙소에 가서 캐리 누나를 보자고 해도 기어이 유원지를 가야겠다고 했을 때, 아 이건 안 되는 거구나, 생각했다. 결국 수성유원지를 들렀다. 공중 자전거를 탔다. 오리배와 같은 메커니즘을 가졌고, 다만 공중에 있었다. 다리가 아팠다. 몹시 허기져 핫도그를 먹었다. 그 핫도그가 나를 살렸다.
드디어 숙소에 돌아왔다. 힘들지만 힘든 하루였다.
다음 날 그토록 가고 싶었던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에 갔다. 곳곳에 김광석의 흔적이 있었다. 골목골목 예쁜 가게들이 있었다. 광석이 형이랑 (한 번 뵌 적도 없지만) 소주 한 잔 하면 딱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짧지만 절실한 소망 한 자 남기고 돌아왔다.
대구를 알차게 즐기지는 못했다. 사실 숙소만 정하고 그냥 방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미리 더 알아보고 준비를 더 했다면 더 즐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여행이란 돌아오는 길이 가장 행복하다. 결국 돌아갈 곳이 있다는 깨달음, 그게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기회가 된다면 김광석 다시 그리기길에는 다시 한 번 가 보고 싶다. 저녁 어스름에 소주 한 잔 하고, 흘러나오는 김광석 노래도 흥얼거리고 싶다. 어쨌든 오늘은 김광석을 들어야겠다.
(2017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