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될 수 있을까
임신 시도 11개월째. 매달 내 발로 걸어 들어가는 지옥이 있다.
이름하여 ‘임신테스트기 지옥’, 임테기 지옥이다.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 수납장에는 전날 밤에 미리 준비해 둔 일회용 컵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손에 묻지 않도록 신중하게 컵을 기울여 채운다. 아무리 내 몸에서 나온 내 것이라 해도 묻었을 때 찝찝하지 않은 건 아니다. 특히 노폐물이 농축된 첫 소변이라면 더더욱.
그래도 이 순간만큼은 이렇게 소중한 게 없다는 듯, 조금이라도 흘릴 새라 조심스럽게 컵을 바닥에 놓는다. 종이 박스를 열고 비닐을 뜯자 가벼운 플라스틱 소재의 기다란 테스트기가 미끄러져 나온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괜히 다시 한번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 본다. 철저히 설명서대로 테스트를 진행하겠다는 마음으로. 테스트기 끝부분을 소변에 담그고 느리게 시간을 잰다. 설명서에는 5초라고 되어있는데, 간절한 마음으로 세다 보면 1초는 2초가 되고 5초는 10초가 된다. 테스트기 뚜껑을 닫아 평평한 곳에 두고 남은 소변을 버리고 손까지 깨끗하게 씻고 나면 이제 남은 건 기다림뿐이다.
결혼 3년 차. 언제쯤 아이를 가지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는데도 3년쯤 되니 자연스럽게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는 때가 올까 싶었는데 ‘때가 되면 다 낳게 된다’는 어른들의 말이 사실이었다.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 남편과 나를 닮은 아이를 낳아야겠다는 결심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으로 흘러 들어왔다.
피임을 하지 않으면 바로 생길 것이라는 근거를 알 수 없는 확신이 있었다. 그게 자연스러웠으니까. 우리 엄마도 그랬고, 우리 엄마의 엄마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이를 가졌고 그 자연의 섭리가 나에게로 이어졌으니까, 나 또한 그러리라고 여겼다. 나도 그 자연의 섭리 안에서 임신과 출산을 하고 싶었다. 우리에게 임신 계획이 있다는 말에 친구들은 일단 난임 병원에 가서 검사부터 싹 받으라고 했다.
“난임이 아닌데 왜 난임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혹시 문제가 있어서 자연 임신이 잘 안 되면 시간 아깝잖아. 요즘은 다 그렇게 해. 자연 임신 가능성이 낮으면 시간 낭비 없이 바로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으로 가는 거지.”
“그렇구나. 근데 우리는 자연 임신 안 되면 그냥 아이 없이 살려고. 굳이 시험관까지 하고 싶진 않아.”
임신과 출산만큼은 온전히 순리에 맞게, 때에 맞게 흘러가고 싶은 나의 진심과 시험관에 대한 두려움이 절반씩 담긴 말이었다.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휴지 위에 평평하게 놓인 테스트기를 들여다보니 빨간 대조선과 반대로 결과면은 아주 깨끗했다. 좀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 건지도 몰라. 전등을 켜고 다시 들여다보았지만 여전히 하얗고 깨끗했다. 이미 임테기 지옥에 발을 들인 이 노예 1은 불빛 아래에서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며 테스트기를 비춰보고 흰 종이를 뒤에 놓고 보기도 하면서 홀로 난리법석을 피웠다.
눈이 빠져라 임테기를 보다 보면 매직아이가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뭔가, 뭔가 보이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분명히 저기 어딘가에 선이 있는데. 조금만 더 하면 드러날 것 같은데, 하는 아슬아슬하고 간당간당하면서 간절한 마음이 목까지 꽉 차오른다. 이미 유효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흘렀다. 어딘가에 닿고 싶어 간당간당 매달려 있던 끈이 탁 풀어지고, 이제 그만하고 오늘 하루를 살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독인다. 웃기는 건 몸은 탁탁 털고 일어나면서도 테스트기는 버리지 못하고 남편이 보지 못할 한 구석에 숨겨둔다는 것이다. 마치 임신을 확인해서 서프라이즈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 ‘한 시간 뒤에 테스트기를 봤더니 두 줄이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 테스트기를 바로 버리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여기는 임테기 지옥이요, 나는 임테기 노예 그 자체가 된 것이다.
임테기 노예에서 해방되는 길은 딱 두 가지뿐이다. 임신을 하거나, 생리를 하거나.
나는 지난 10개월간 새빨갛게 터지는 피를 보며 눈물로 임테기 지옥을 걸어 나왔다. 생리가 터질 때마다 내 마음에 14일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기대의 벽도 댐이 터지듯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꾹꾹 눌러 유예시켜 놓았던 우울이 순식간에 나를 덮쳤다.
내가 임테기를 족쇄 삼아 노예가 되었다가 (피)눈물을 흘리며 해방되는 것을 반복하는 사이 주변에서는 심심치 않게 임신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거듭 임신하지 못하는 동안 누군가의 임신 소식을 듣는 것은, 뭐랄까, 양가감정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경험이었다. 한쪽 귀로는 축하의 말을 건네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다른 한쪽 귀로는 내 안 어딘가 무너지는 소리를 동시에 듣는 것. 나는 여러 번 축하 인사를 건네었고, 그때마다 집에 돌아와 남편의 품 안에 무너져 울었다.
일반적으로 피임을 하지 않고 부부관계를 했음에도 12개월 이내에 임신이 되지 않으면 난임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고작 1개월이 남았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나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