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병원에 가야겠다

당신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고 싶어서

by 소금

난임 검사를 미뤄두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두려움이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병이 있어도 내가 모르고 있으면 마음만은 편안하니까 라는, 다소 미련한 쫄보 마인드가 내 발을 붙들었다. 어떻게든 자연 임신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고집스럽게 나를 붙들어 두었다. 스트레스가 어디에는 좋겠냐마는, 계획 임신에 가장 큰 문제이자 피할 수 없는 방해물은 역시 스트레스다.


배란일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언제쯤 테스트기를 해야 한다는 것도 모른 채 임신을 한다면 당혹스럽기는 해도 자연스럽게 임신을 받아들이게 될 텐데, 배란일을 따져가며 정교하게 목표를 겨냥해야 하는 계획 임신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곧 스트레스다. 여자에게 스트레스란 대부분 자궁의 건강으로 이어지고, 한 달 한 달이 아쉬운 시점에 생리 불순이라도 생기면 정말이지 극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스트레스가 전부 자궁으로 직행하는 것 마냥 자연 임신을 시도하는 11개월 중 5개월은 생리 불순을 겪었다.


생리 불순의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일단 임신을 시도할 수 있는 소중한 한 달을 날릴 수 있다는 뜻이고, 생리 주기가 틀어져 다음 배란일을 예측할 수 없어졌다는 의미이며, 자궁 내에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제때에 노폐물이 배출되지 못하고 자궁에 머무르면 내막증이나 근종 등 여러 문제를 만들어낸다. 여자에게 자궁 문제란 이토록 파급력이 대단하다 보니 쫄보라고 할지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부인과에 가서 굴욕 의자에 앉아야 하는 것이다.


다소 사무적인 인상의 의사 선생님께 검진을 받고 진료실에 앉았다. 선생님은 검진하는 동안 찍어 둔 몇 장의 사진을 모니터에 띄워 보여주셨다.


“다낭성이 좀 있는데, 임신에 문제 되는 정도는 아니라 괜찮아요. 시험관 하게 되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고.”

“네에(시험관 안 하고 싶은데…)”

“생리는 곧 할 것 같네요. 열흘 이내에 할 것 같은데 혹시 그 이후에도 안 하면 다시 내원하세요.”

“네에에…(그 말은 즉 이번에도 임신이 아니라는 뜻이구나)”


이미 임테기 지옥에서 노역 생활을 진하게 하다 왔음에도 내심 생리를 하지 않으니 임신은 아닐까 했던 기대가 고개를 떨구었다.


“흠, 임신을 계획하고 계시다고 하니까 아무래도 제일 중요한 건 나이인데, 더 늦기 전에 적극적으로 검사를 받아볼 필요는 있겠네요.”


선생님의 시선이 내 나이가 적힌 차트를 힐끗 훑는 게 보였다.


맞아요, 그래서 저도 빨리 임신하고 싶거든요. 지금 첫째를 낳아야 마흔이 되기 전에 둘째를 낳을 텐데......


30대 중반이란 인생 전체로 볼 때 언제든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창창한 나이지만, 임신이라는 두 글자 앞에서는 마치 마지노선에 닿아 있는 것 마냥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의학적으로 노산의 기준은 만 35세이고, 나는 몇 달 있으면 만 34세가 될 예정이었다.


“그 외에는 뭐, 괜찮아요. 자궁이 깨끗하고 모양도 예쁘고 사이즈도 좋네요. 임신하면 아이가 지내기 아주 좋겠어요.”


어쩌면 나는 내 자궁이 문제 덩어리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임신도 빨리 안 되고 스트레스라도 받으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파업을 해버려서 나를 기어코 굴욕 의자에 앉히는 문제 덩어리. 이제껏 항상 자궁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러 병원에 갔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병원에 갔으니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을 듣자, 처음으로 자궁이 ‘내 아이의 집이 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지내기 좋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내가 얼마나 남편과 나의 아이를 바라고 있는지, 나조차 잘 몰랐던 간절함과 그리움이 해일이 일 듯 마음으로 밀려들었다.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임신과 출산은 대부분 여자가 감당해야 할 영역이다. 그래서 요즘 남편들은 배려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몇 명 가지고 싶다는 말도 섣불리 꺼내지 않는다고 한다. 남편이 아내를 얼마나 지극히 사랑한다 한들, 임신과 출산, 회복의 지난한 과정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 계획도 자연스레 아내가 감당할 수 있을 때, 아내가 원할 때 이루어지는 게 당연하다.


우리 부부 또한 그랬다. 내가 아이를 갖겠다고 마음먹고서야 임신을 시도했다. 한편으로는 노산에 따르는 위험을 최대한 피하고 싶어서 나이에 등 떠밀려 임신을 계획했다. 자연 임신을 시도하면서 때로는 임신 자체가 목적이 된 듯한 기분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런 기분에는 꼭 자괴감이 뒤따랐다. 내가 아이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저 때맞춰 숙제하듯 생애 주기에 맞는 가족을 이루고 싶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러니까, 사실은 내게 아이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여러 생각과 감정, 거듭 반복되는 임신 실패로 인한 좌절감과 우울이 얼기설기 얽혀 있어 형체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던 나의 진심이 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오롯하게 드러났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그리울 만큼 간절하게 바라는 장면에는 내가 아닌 남편이 있었다. 내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보다 남편이 아이를 안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임신과 출산이 숨 막히게 두려우면서도 감당하겠다고 뛰어든 이유는 내가 아내로서 남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내가 아이를 원한다는 생각에는 확신이 없어 자주 휘청거렸지만, 남편에게 우리의 아이를 안겨주고 싶다는 바람에는 분명한 확신과 간절함이 있었다.


‘아이가 지내기 좋겠다’는 그 말이 내 머릿속에 선명한 그림을 그려냈다.

내 몸에 우리 아이를 잘 키워낼 최적의 공간이 있다는 기쁨이 발 끝에서부터 찰랑거리며 수위를 높이더니 안개처럼 뿌옇게 나를 잠식하던 우울을 가만히 잠재웠다.


그 마음을 깨닫자 놀랍게도 이전에는 없던 용기가 생겼다. 내 간절함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게 되고 나니 자연스레 그 방향으로 마음이, 몸이 움직였다.


검사를 받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아야겠다.


나는 산부인과를 나서며 곧장 난임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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