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먼저 주말에 일찍 가서 정액 검사를 하고, 나는 조금 더 예약이 여유로운 평일에 가서 난소기능검사를 받았다.
때마침 국가에서 가임력 검사비 지원 사업을 하고 있어서 더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앞서 산부인과 검진을 받을 때 용기를 얻은 덕분에 검사를 기다리는 마음이 그렇게 불안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처음 만난 난임 센터 선생님은 우리 동네에서 ‘삼신 할배’라고 불리는 유명한 원장님이었는데,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푸근한 미소, 차분하고 나긋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부인과를 거쳐 난임 센터로 와서 재미있었던 것 중 하나는 내 나이에 대한 상반된 반응이었다.
일반 부인과에서 만 35세에 바짝 나가선 내 나이는 임신과 출산의 마지노선인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으나, 난임 센터에서는 나이를 걱정하는 나를 마치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햇병아리를 보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임 센터에는 내 나이와 앞자리가 다른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난임 센터에서 만 35세란 큰 의미가 없는 숫자였다. 데스크에 수납을 하고 돌아서는데 간호사가 나를 붙들었다.
“토요일에 결과 들으러 오실 때 남편 분도 꼭 함께 와주세요.”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지만 남편이 꼭 와야 한다고 강조하는 말에 약간 의아함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에게도 내가 느낀 의아함을 전했더니 평온하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드러났다.
“내 결과가 많이 안 좋은 가 본데?”
“아니야. 다음 스텝을 정할 때 부부가 같이 와야 상담하기 편해서 그런 거겠지. 그리고 결과가 좀 나빠도 뭐, 그래서 시험관이 있는 거잖아! 요즘 남자들도 정자 문제가 많다더라.”
남편의 등을 두드리며 의연하게 말할 수 있었던 건 임신에 있어서 남자의 몸보다 여자의 몸 상태가 훨씬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몸에만 문제가 없다면 남편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사소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내 결과만 괜찮다면 우리의 가족계획은 순항일 거라고, 시험관에 대한 두려움만 이겨내면 된다고, 그렇게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마음을 다독였다.
토요일은 금세 돌아왔고, 우리는 다소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진료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정자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재검을 하고 다시 결과를 보도록 하죠.”
원장님의 입가에 여전히 온화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우리가 너무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단어를 고르시는 듯했다.
“간혹 컨디션에 따라 이런 결과가 나오기도 해요. 무정자증이라고 해서 아예 임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원인에 따라서 난임이 되기도, 불임이 되기도 하죠. 일단 오늘 호르몬 검사도 같이 받고 가시죠.”
정자가 있을 때에는 그게 무엇이든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정자가 없을 때에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우리에게 아이가 없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10대 때 이미 다낭성 난소 증후군 진단을 받았고, 종종 산부인과에 검진을 갈 때마다 임신 계획이 있다면 병원의 도움을 받는 게 빠를 거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아이를 갖는다면 자연 임신을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하거나, 두려움을 안고 시험관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아이가 없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가 없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무정자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자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옛날처럼, 마치 전생인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언제 아이가 없는 삶을 상상이나 했던가.
당연히 우리가 한 생명을 키워가며 많은 순간 웃고 때로는 한숨지으며 늙어갈 것이라 여겼다.
아직 있지도 않은 아이가 내 품을 떠나는 게 벌써 아깝고 소중해서, 나는 아이를 가지면 꼭 24시간 모자동실이 가능한 조리원에 가겠다 이야기하고는 했다.
나와 남편의 사랑을, 우리를 사랑하는 온 가족의 사랑을 받을 존재를 생각하면 때때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이가 없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마음에도 없는 저울질을 하던 내게 정말로 아이가 없을지도 모를 삶이 선고 내려지기 직전이었다.
진료실을 나서는 마음이 이상할 만큼 덤덤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돌아보니 그건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딘가 멍해 보이는 남편의 등을 두드리며 짐짓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난 남편이 심각하게 아프거나 생명이 위중한 것보다 이런 상황이 훨씬 나아!”
그저 위로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나에겐 항상 최악이 어느 지점인지 먼저 가늠해 보는 나쁜 습관이 있는데, 이번만큼은 그 습관이 긍정 회로를 가동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 게 틀림없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받았지만, 그게 우리에게 최악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일주일 후에 우리는 기나긴 여정을 앞둔 난임 부부가 될까, 아니면 불임이라는 최후의 선고를 받게 될까. 자연 임신을 시도하는 지난 1년 간 난임 병원에 발을 들일 일이 없기를 바라왔는데, 이제는 그 난임 부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병원을 나서게 되다니.
사람 일 알 수 없다는 게 이런 게 아니고 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