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자증은 정액 검사에서 정자가 발견되지 않는 것을 뜻하며, 남성의 1%에서 발견된다. (나도 내가 이걸 알게 될 줄은 몰랐다.)
무정자증에는 폐쇄성 무정자증과 비폐쇄성 무정자증이 있다. (이걸 알게 될 줄도 물론 몰랐다.)
폐쇄성 무정자증은 고환에서 정자가 만들어지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는 상태이고, 비폐쇄성 무정자증은 정자를 만들어내는 기능이 정지한 경우를 말하며, 남성 불임의 5% 이하를 차지한다.
그러니까 1% 중에서도 5%. 대충 흔치 않은 케이스라는 뜻이다.
난임 병원에서 재검사를 받을 때 의사 선생님께서도 비폐쇄성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고 폐쇄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거의 집과 회사, 교회만 오가는 남편은 술, 담배도 하지 않고, 자전거와 달리기로 다져진 허벅지도 딴딴하고(내가 남편의 신체에서 특히 좋아하는 부분이라 적어봤다), 그 흔한 감기도 잘 안 걸리고, 머리만 붙이면 어디서든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요즘 보기 드물게 마음도 건강하고 성욕도 많......이정도면 정자가 없을 이유가 없지 않아?(화난 거 맞음)
재검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은 내 생애 이렇게 시간이 안 흐를 수 있나 싶은 7일이었다.
‘그래, 이제 목요일이야. 이틀만 기다리면 돼’라고 생각하며 달력을 보면 화요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직도 수요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서른이 넘어가면서부터 세월이 화살처럼 날아간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삶에 슬로우 모션이 걸렸다. 나이가 들면서 신경 써야 할 많은 것들에 고개를 휙휙 돌리며 경보하듯 빠르게 시간을 걷다가, 하루아침에 거대한 족쇄가 다리를 붙든 것 같았다.
걸음을 내디뎌 보려고 끙끙대다가 힘에 부쳐 자주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김에 조금이라도 고통의 무게를 줄여 보자고 한숨도 내보내고 눈물도 쏟아보다가 다시 일어나 걸었다. 아주 느리게 걷는 것만 같았던 내 마음의 바깥에서,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결과가 좋지 않네요. 더 이상 난임 센터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지난 내원 때는 내내 잔잔한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원장님의 표정이 웃음기 없이 진지했다.
재검에서도 정자는 발견되지 않았고, 호르몬 수치를 확인한 결과, 비폐쇄성 무정자증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까 내 남편은, 그 흔치 않은 1%의 5%에 해당하는 케이스인 것이다. 다만 비뇨기과에서 조직검사를 통해 정모 세포를 찾는 경우, 동결시켜 시험관을 시도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원장실을 나오기 전, “그럼 저희는 난임인가요, 불임인가요?”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재검 결과를 통해 명확한 결론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명확한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확인한 후 난임의 길을 걸어가든 아이가 없는 삶을 준비하든 결정을 내리고 싶었다. 우리의 여정은 여러 문을 두드려야 하는구나. 난임 병원의 문을 지나 이제는 비뇨기과의 문을 열 때였다.
두 번의 정액 검사와 호르몬 검사 결과지, 원장님의 소견서를 받아 병원을 나섰다.
남편을 의식해 아무렇지 않은 듯 표정을 갈무리하며 서류를 넘겨보는데, 다른 부연 설명 없이 소견서의 빈칸을 차지한 글자가 눈에 박혔다.
'저희는 난임인가요, 불임인가요?'
내뱉지 못한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소견서에 적혀 있었다.
[ 남성 불임 ]
문득 내가 평범한 삶을 당연한 전유물로 여겼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전에도 그랬듯,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가 아는 길로만 가게 될 줄 알았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은 때로는 단조롭게, 때로는 평온하게 내 삶을 채워왔고, 나는 그 이상의 것을 욕심내지 않았다.
그게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는 행운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이 매일 일어나지는 않지만 불행이 도처에 널려 있지도 않은 일상. 그게 내 삶이었다.
“평범한 게 최고야.”라고 말하는 우리 부부에게, 이토록 평범하지 않은 진단이 내려졌다.
남성 불임이라는 네 글자가 내 마음을 짓누르는 것보다 더 크고 무겁게 남편을 짓누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내 마음에 두었던 시선을 거두고 남편의 손을 잡았다. 남편이 짓눌려 땅으로 꺼지기라도 할까 봐 나도 모르게 남편을 붙드는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이 순간만큼은 온몸과 마음으로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한 몸은 아니지만 한 몸처럼 밀접한 부부의 관계에서 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위로의 말은 '괜찮아'이기 때문이다. 나의 문제와 너의 문제가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괜찮아'는 많은 마음을 담은 말이다.
'너에게 이런 문제가 있어도 나는 괜찮아. 나는 여전히 너와 함께할 거야'를 뜻하기도,
'이런 문제가 있어도 너는 괜찮아. 내가 너와 계속 함께할 거니까'를 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에는 남편과 침대에 나란히 누워 그런 얘기를 했다.
"보통 사람들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면, 우리는 마이너스 2,000만 원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
"그렇네. 달리기 경주라고 하면 우리는 출발선에서 한 30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하는 거지. 남들은 임신이 출발선인데, 우리는 임신이 꼭 골인 지점인 것처럼 느껴지잖아."
앞으로 어떤 병원을 더 가고, 어떤 검사를 더 하게 될지 몰라 막막한 기분이 딱 그랬다.
우리는 이미 300미터를 열심히, 온 힘을 다해 달려서 피니시 라인에 도달했는데 사실은 여기가 시작점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분이란. 이미 모든 힘을 다 써버렸는데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 막막함. 그 막막함 가운데 지칠 대로 지쳐 멍하니 서있는 우리의 안쓰러운 모습이 이미 정해진 미래처럼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런데 300미터를 열심히 달려오고도 출발선에 발조차 들이지 못한다면?
내 안에서 부정적인 생각과 불안이 끝을 모르는 경주마처럼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