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난임 전문 비뇨기과로 병원을 옮긴 후, 또다시 검사와 기다림의 지난한 과정이 시작되었다. 난임 병원에서부터 소중하게 가져온 검사 결과지는 비뇨기과에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저 참고용 자료가 될 뿐, 비뇨기과에서 다시 처음부터 검사를 받아야 했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마음의 여력이 빠르게 바닥을 보이는 것이 느껴졌다. 임신이든 난임이든, 가장 힘든 건 언제나 기다리는 시간이다.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그 시간을 견뎠다.
나는 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 하릴없이 나를 내맡겼다. 마치 내가 바다라도 된 것처럼 내 안에서 쉴 새 없이 거친 파도가 쳤다. 나는 그 파도를 잠잠하게 할 수도, 그보다 더 거센 무언가로 덮을 수도 없었다. 파도가 치면 바닷물이 넘쳐 밀려오듯, 짭짤한 눈물이 눈 밖으로 넘쳐 밀려 나왔다. 그토록 많은 눈물을 흘렸는데도 내 몸의 수분이 고갈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때 정말로 내 안에는 슬픔의 바다가 넘실거렸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회사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다 가도 정해진 시간이 되면 헬스장에 가서 달렸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몇 주가 지나서는 30분 내내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어떤 마음으로 달렸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아내인 나에게만큼은 꽤나 솔직한 편이었지만 본래 누구에게든 속내를 쉽게 털어놓는 사람이 아니었고, 당시에는 아침이든 밤이든 눈이 퉁퉁 부어 있던 나를 보며 더더욱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남편이 불현듯 쓰라리고 연약한 마음을 드러낸 적이 있다. 무정자증이라는 검사 결과를 듣고 오던 날, 집에 도착해 애써 평온한 표정을 가장하며 차에서 내리려는 때였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덤덤한 남편의 목소리가 나를 붙들었다.
“그래도 나 사랑해?”
마치 ‘밥 먹었어?’라고 묻듯 평이하고 덤덤한 목소리 안에 평소 같지 않은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반사적으로 남편을 돌아본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어떻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해……”
부지불식 간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남편이 끝끝내 내보일 수밖에 없었던 연약한 마음이 내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와 나를 갈기갈기 찢어놓기 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불임이라는 결과를 받고 남편이 내게 제일 먼저 한 말이 그런 질문이라는 게, 그만큼 남편이 불안해한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속상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 순간을 평온하고 덤덤하게 떠올릴 수가 없다.
여전히 울게 된다. 남편의 그 말이 떠오를 때면 남편이 어디에 있든 달려가 아무런 맥락 없이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날 남편이 건넨 질문에 나 혼자 계속 대답을 쌓는다. 이 글을 읽으면 남편은 수시로 날아드는 내 뜬금없는 사랑 고백의 이유를 마침내 알게 될 것이다.
비뇨기과에서는 앞서 진행했던 정액 검사와 호르몬 검사에 더해 유전자 검사까지 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말 그대로 원인 불명의 비폐쇄성 무정자증. 현대 의학으로는 알 수 없는 원인 불명의 불임이라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차라리 원인을 아는 것이 더 속 시원하겠다 싶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시도는 고환을 직접 열어 정모 세포를 찾아보는 마이크로 테세(Mircro TESE) 뿐이었다.
마이크로 테세는 현미경을 통해 고환에서 직접 정자를 찾아 채취하는 수술이다.
우리의 경우 호르몬도 정상이고 유전적인 요인도 아니었기 때문에 마이크로 테세를 통해 정모 세포를 찾을 확률은 35% 정도라고 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저 밑바닥의 절망 속을 나뒹굴고 있었기 때문인지, 35%라는 생각보다 높은 숫자가 실낱 같은 희망이 아니라 튼튼하고 굵직한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수술을 통해 정모 세포를 찾는다면 동결시켜 시험관을 시도해 볼 수 있다고 했다. 35%라는 숫자가 펌프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마음이 희망으로 조금씩 부풀었다.
어쩌면, 어쩌면. 단 한 통이라도 채취할 수 있다면.
그런 간절함이 마음을 꽉 채웠다.
진료를 마치고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간호사가 수술 동의서를 건네줬다.
수술 당사자였던 적도, 보호자였던 적도 없는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고 사진까지 찍었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수술이라 사망에 이르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음을 명시한 내용을 읽을 때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듯 두려움이 밀려와 수술하지 말자고 설득해볼까 싶었다.
그러다 보니 불현듯 깨달아졌다. 내겐 남편이 없이는 자식도 있을 수 없다는 것.
그러다 보니 불현듯 다행이었다. 남편이 이렇게 내 곁에 건강하게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모든 불행과 고통을 다 떠안은 듯 보낸 2주였지만, 사실 나는 내 진짜 행복을 잃은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