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너머에 있는 당신, 넉넉히 위로받고 나오세요

by 소금

두 달 뒤로 수술 날짜가 잡히자마자 우리는 난임 병원을 옮겼다.


병원을 바꾼 이유는 딱 하나였다. 시험관의 기회가 한 번이 될지 두 번이 될지, 기회가 있기는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단 한 번의 기회도 낭비할 수가 없었다. 배양 기술이 우수한 병원, 적극적으로 우리의 상황을 파악하고 처방을 내려줄 의료진이 필요했고 우리는 그런 병원과 선생님을 찾아냈다. 환자가 너무 많아 시험관 고차수 환자만 받는다는 유명 난임 병원의 원장 선생님께서 뜻밖에도 우리를 맡아 주셨다.


무엇보다도 꼭 이 병원에서 시험관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선생님께서 아이를 기다리는 부부의 간절함을 너무나 잘 이해하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난임 병원과 비뇨기과 진료를 보면서 알게 된 팁이 있는데, 그건 바로 질문지 준비와 빠른 말투, 그리고 녹음이다.



유명한 병원의 노련한 선생님들의 진료실 문 앞에는 언제나 대기 환자가 넘쳐나기 때문에 병원 오픈시간에 맞춰 도착해 몇 시간 웨이팅을 하더라도 진료 시간은 대체로 3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 3분은 때로는 우리의 감정을 추스르는데 만도 부족해 다급히 감정을 주워 담아 나와야 할 때도 있었다. 그건 불만 거리도 될 수 없었다. 난임 병원은 모두가 간절하고 지치고 힘든 마음으로 기다리는 곳이니까.


그런데 이 선생님의 진료실은 사뭇 달랐다.


오픈런으로 처음 내원한 날, 역시나 우리는 진료를 보기 전 3시간 정도 대기해야 했는데 대기 의자에 앉아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 너머로 본 진료실 모습이 퍽 신기했다. 일단 진료 시간이 길었고(기본적으로 5분은 넉넉히 넘겼다), 진료실을 나오는 부부의 뒤로 원장 선생님이 매번 따라 나와 배웅을 하시는 게 아닌가(충격). 그렇게 문을 붙잡은 채 진료를 마친 부부와 몇 마디 더 주고받고는, 진료실 안에 전화기가 있음에도 간호사에게 직접 처방을 전하고 들어가셨다.


이렇게 대기 환자가 로비를 꽉 채우는 병원에서 이렇게 여유로운 선생님이라니. 긴 대기 시간에 항의하는 사람은 없나 싶어 슬그머니 주변을 돌아보는데 다들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순서가 되었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얼마나 긴장했는지, 꽤 더운 날씨였음에도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 병원에서의 첫 진료이기도 하지만 내가 긴장한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짧은 진료 시간 내에 궁금한 것을 다 물어봐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해 이 날 처음 뵙는 선생님께 비뇨기과에 제출할 진료 의뢰서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첫 진료에 의뢰서를 요청했더니 언짢아하시더라, 하는 다른 병원의 후기를 보고 잔뜩 쫄아 있었기에 더 위축되고 공손한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섰다.



“무슨 스트레스를 그렇게 받아서 그래~ 임신이 아니더라도 생리는 해야지.”



차트를 넘겨보다가 고개를 돌려 따뜻하게 미소 짓는 선생님을 보자 내 등을 뻣뻣하게 하던 긴장감이 한 꺼풀 사르르 녹아내렸다. 왜 진료실을 나오는 부부들이 전부 웃으며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선생님은 처음 본 우리를 마치 조카라도 대하듯 친근하게 맞이했다. 진료실에서 이렇게 편안하게 우리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나.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의사 선생님 뒤에 선 간호사의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며 속사포 랩을 하듯 질문과 답변을 이어갔던(이 마저도 1~3분 컷이었다) 지난 경험과 달리, 진료실 안에 있는 그 누구도 급하지 않았다. 스몰 토크로 진료를 시작하는 난임 병원 선생님이라니?(충격2)



문진표에 있는 정보로만 우리를 대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의 상황이 어떤지, 우리가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충분히 듣고, ‘무정자증’이라는 비일상적인 이벤트를 마주해 어찌할 바 모르는 우리에게 마이크로 테세 이후 정자를 찾는다면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그전에 난임 병원에서 함께 준비할 것이 무엇인지를 차근히 말씀해 주셨다.


처음 난임 병원을 방문했을 때 가장 아쉽고 힘들었던 건 방금(!) 난임이라는 진단을 받아서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의 우리가 ‘질문을 해야만’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라는 말에 무엇을 궁금해해야 하는지도 몰라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질문해야 할 것들을 메모해서 갔지만, 물어보기도 전에 선생님이 먼저 설명해 주셨다. 첫 진료에 의뢰서를 요청하는 게 무례한 건 아닐까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 진료 의뢰서도 필요한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시고 그 자리에서 바로 작성해 주셨다.


선생님의 배웅을 받으며 진료실을 나서는 우리는 한결 편안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불임 진단을 받은 부부였고, 두 달 뒤 정자를 찾기 위한 마이크로 테세를 앞두고 있다는 상황은 진료를 받기 전과 다를 바 없었지만 말이다.




담당 주치의와의 라포 형성이나 위로를 바라고 진료실에 들어가는 게 아님에도, 도장받듯 결과를 통보받고 어버버 하다가 홱 쫓겨나듯 나오면 연약해질 대로 연약해진 마음은 알게 모르게 상처를 입는다.


진료실 안에 있는 누군가가 상처를 주는 게 아니다.

그냥, 난임이라는 어둡고 컴컴한 터널을 걷다 보니 이리저리 부딪혀 이미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서 그렇다. 그 길이 너무 외롭고 막막해서 나도 모르게 처음 만난 의사 선생님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드는데, 다소 사무적이고 차가운 진료실 분위기에 정신을 번쩍 차리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진료를 마치고 문을 나서는 것이다.



난임 부부는 대체로 가족에게 조차 알리지 않고 조용히 슬픔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난임의 여정을 함께하는 의료진의 따뜻한 응원과 격려가, 진료실에서의 다정한 그 몇 분의 시간이 큰 힘이 된다. 안 그래도 대기 시간이 긴데, 진료 시간이 늘어나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슬프게도(?) 나의 경험상 진료를 1분 보든 10분 보든, 대기 시간은 비슷했다.



그 뒤로 몇 번 더 병원을 방문할 때도 여전히 긴 대기 시간을 견뎌야 했지만, 불평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누군가 나처럼 저 문 너머에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위로받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넉넉히 기다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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