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우리의 여름이 끝났다

by 소금

우리가 난임 센터에 발을 들인 이후로 가장 손꼽아 기다린 날이 있다면 바로 이 날일 것이다.

우리에게 결승선이 될지 출발선이 될지 알게 될, 남편의 마이크로 테세 수술 날.



꼬박 두 달을 기다리고 나니 뜨거웠던 여름이 서서히 물러나고 아침저녁으로 차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되었다. 우리는 이른 아침 집을 나서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차를 끌고 갈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수술 당사자인 남편은 운전을 못하고, 처음으로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 전날 밤부터 잠을 설친 나도 출퇴근 시간의 복잡한 서울 도심에서 운전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오랜만에 타본 출근길 지하철은 종종걸음을 치며 출근하는 사람들로 빼곡했고, 매일 다니는 길 위에 선 사람들의 태연한 표정과 달리 우리는 긴장으로 약간 움츠려 있었다. 그래도 모처럼 뚜벅이로 데이트하던 연애 시절이 생각난다며 사람들 사이에 꼭 끼어서 마주 웃었다.



마이크로 테세 수술은 폐쇄성보다는 비폐쇄성 무정자증 환자에게 주로 시행된다. 폐쇄성 무정자증은 정자는 정상적으로 만들어지지만 나오는 길이 막힌 경우이기 때문에 정자를 채취할 확률이 훨씬 높다. 비폐쇄성은 정자의 생성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마이크로 테세를 통해 고환 조직을 절개해서 현미경으로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는 활성 정자를 직접 찾아 나서는 것이다.



수술은 1~2시간 이내로 짧은 편이지만 고환을 절개하는 수술이니만큼 전신 마취를 해야 했다. 수술 동의서에 나열된 전신 마취에 따르는 부작용에 대한 경고가 어찌나 살 떨리게 무섭던지, 정말로 이 내용에 동의를 해야 하는 것인지 처음으로 보호자의 역할을 하게 된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당일 퇴원이긴 하지만 반나절 동안 쓸 입원실을 배정받았다.

남편은 괜히 병실에서 마음 졸이고 있지 말고 근처 카페라도 다녀오라고 했지만 알았다 대답만 하고 못 들은 척 챙겨 온 책을 꺼내 들었다. 가부장적인 남자란 원래 이런 걸까(?). 남편은 처음에 수술 날에도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 말에 갑자기 서운함이 왈칵 일어난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그럼 나도 만약에 수술할 일 생기면 혼자 가야 돼?”

“아니, 당신은 당연히 내가 같이 가야지!”

“…?”



가부장적인 남자란… 원래 이런 것인가 보다(!).

남편은 계속 카페 가서 아침이라도 먹고 와라, 시원한 곳에서 조용히 책이나 읽다가 와라, 잔잔하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나는 영혼 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옥신각신하는 사이 수술 시간이 되어 간호사가 남편을 데리러 왔다. 간호사는 나에게 수술이 1시간, 길면 2시간 정도 걸릴 거라고 언질을 주고 남편을 데려갔다.



남편에게 무언의 파이팅을 보내고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나. 나는 수술실을 생각했다.

나는 살면서 수술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딱 한 번, 수술대에 누워 본 적은 있다. 나무 의자에 종아리가 쓸려 두껍고 긴 나무 가시가 박히는 바람에 병원에 갔는데, 피부 안쪽으로 깊게 박혀서 집게로 뽑을 수 없고 살을 째서 제거해야 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수술실로 안내되었는데, 수술실에 발을 들이는 순간 온몸으로 냉기가 확 끼쳐오던 느낌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실제로 수술실은 20~24도의 온도를 유지한다고 하니, 냉기를 느낀 건 기분 탓이 아니었을 것이다. 차가운 수술실 공기에 마취 없이 가시를 제거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더해져 한 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한기가 들고 이가 달그락거릴 정도로 덜덜 떨렸다. 내가 수술대 위에 머무른 건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다시는 여기에 눕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수술을 받는 동안 남편의 옷을 다시 반듯하게 접고 이불도 정리하면서 마음속으론 계속 기도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자를 조금이라도 발견해서 저희가 하나님이 주신 새 생명을 낳고 기르는 기쁨을 누리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는 일절 나오지 않았다. 남편이 수술대 위에 올라있을 때 내가 바랐던 건 한 가지뿐이었다.



수술하는 동안 의료진이 예상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나쁜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해 주시고, 잠들어 있는 남편이 무의식 가운데 평온함을 누리게 해 주시고, 그저 제 곁에 건강하게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세요. (한 가지였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세 가지나 바라고 있었다…)



이 기도를 주문이라도 걸 듯 마음으로, 입술로 중얼중얼 되뇌며 남편의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남편만 건강하게 내 곁에 함께한다면 그게 어떤 결과든 우리는 잘 받아들이고, 잘 살아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아이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남편이 건강하게 내 곁에 함께하지 못한다면 아이가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마음이, 결과를 담담하게 기다릴 수 있게 했다.



약 두 시간의 기다림 끝에 이제 막 마취에서 깬 남편이 많이 아파하면서, 또 마취의 여파로 약간은 횡설수설하면서 병실로 실려 들어왔다. 수술을 받으러 가기 전에는 계속 기다리지 말고 카페에 가라고, 다른 데 있다가 오라고 하던 남편이 병실로 돌아오자마자 한 말은 “수술 끝나고 오자마자 당신 얼굴이 보이니까 너무 좋다”였다(가부장적인 남자여, 아내 말을 잘 듣자).



남편은 365일 몸이 난로처럼 뜨끈뜨끈한 사람이다. 그래서 여름엔 근처에 있기만 해도 더워서 저리로 좀 가보라 하고 겨울엔 추우니까 옆으로 좀 와보라고 하는데, 수술을 마치고 온 남편의 몸은 얼음물에 한참 몸을 담그고 있다 온 사람처럼 차가워서 손을 잡고 있어도 내가 아는 남편의 손 같지가 않았다.



남편과 반대로 나는 사계절 내내 손발이 차가운 사람인데 오늘만큼은 남편에게 내 체온을 나눠주기 위해서였는지 모처럼 내 손에 온기가 가득했고, 나는 마음으로 내 온기가 남편에게 전부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남편의 손을 주물러주고 아파하는 남편의 얼굴을 손으로 덮어주었다. 진통제를 맞은 지 한 시간 정도 지나니 남편의 통증도 어느 정도 잦아들고 몸도 많이 따뜻해졌다.



마이크로 테세의 결과는 당일에 바로 나오는데, 우리는 끝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고환에서 정모 세포를 발견할 수 없었고, 모든 검사 수치가 정상이라 기약 없는 희망을 안고 호르몬 치료를 하는 것도 무의미했다. 다소 무뚝뚝한 인상의 말이 별로 없는 비뇨기과 선생님은 다른 때와 달리 몇 마디를 덧붙이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나름의 위로였다.



“건강에는 아무 이상 없어요.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계속 건강하게 일상을 살아가게 될 거예요.”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던 어떤 행복을 잃은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결혼을 하고 내내 둘이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똑같이 둘이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그 사실 자체가 비수가 되어 우리의 마음 깊숙한 어딘가를 날카롭게 후벼 파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일단 우리가 평생 잊지 못할 이 뜨겁고 아픈 여름이 마침내 끝났다는 것. 우리는 마침내 ‘출발선’이 아닌 ‘결승선’에 도달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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