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라고 말할 수 없는 마음

by 소금

결혼한 지 4년 차가 되니 어디에 가든 꼭 듣는 말이 있다.



“아직 아이는 없어요?”

“이제 아이만 있으면 딱 좋겠네!”



우리가 사는 지역이 유독 출산율이 높고 아이가 많은 동네라서 주변을 돌아보면 당연하게 둘 이상씩은 낳고 살기 때문에 더 그렇다. 남편과 내가 이런저런 모임을 하다 보니 그곳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의 필수(?) 질문 같은 것이다. 보통은 대충 웃으며 “아직 없어요~”라고 얼버무리고 마는데, 가끔은 콕 집어서 “혹시 딩크예요?”라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때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으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 딩크는 아니구요……. 그냥 아직 계획이 없어요.”



그렇게 말하고 나면 또 ‘아차’ 싶은 것이, 이제 본격적으로 ‘임신’에 대한 온갖 정보가 쏟아져 들어온다. 그때 마침 옆에 먼저 아기를 낳은 친구라도 있으면 “빨리 질투해! 질투해야 애기가 생기지!”라는 그 시대 어르신들만의 카더라 민간요법까지 등장한다. 싱글싱글 웃어넘기던 표정에 쩌적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고, 마음속에선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린다(‘지금 당장 이 자리를 떠나!’라고 경고하는 사이렌이다). 그렇게 나는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거나, 전화를 받아야 하거나, 급하게 할 일이 있는 사람이 되어 그 자리를 뜬다.


우리의 가족계획에 관심을 갖는 분들의 선의를 알고 있다. 젊은 부부가 참 예쁘다, 하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것도 안다. 집에 돌아오면 뒤늦게 그런 악의 없는 관심들이 뾰족한 가시처럼 우리를 찌르기도 하지만, 남편과 함께 부정적인 감정들을 갈무리해서 선의만 남기려고 한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공존하는 시대이다. 아이가 없다고 해서 특별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는 요즘. 차라리 먼저 딩크라고 말하면 더 편하지 않을까? 남편과 나란히 누워 이런 생각을 자주 나누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차마 딩크라고 말하지 못해 “결혼은 했고요, 아이는 없어요.”라고 답하곤 한다.



우리는 왜 딩크라고 말할 수 없는 마음이 되었을까. 애초에 우리가 선택한 적 없는 길이기에, 뒤에 따라오는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우리가 선택한 삶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엔 아이가 함께하는 미래를 간절히 원했고, 그 미래를 기대할 수 없어 많이 울었고, 아직도 그 슬픔이 목 끝까지 차올라 있어 누군가 툭 건들기만 해도 곧바로 손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고 싶은 시기였다.

‘결혼은 했고, 아이는 없다’는 말이 나의 최선이었다. 최선을 다한 ‘거짓말이 아닌 말’이었다.



나를 수시로 무너뜨리던 감정은 고독과 외로움이었다. 부모님, 특히 엄마에게 나는 퍽 다정한 딸이었고, 부모님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노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 내 주된 관심사 중 하나였다. 우리 부모님은 여느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자식이 인생의 큰 기쁨과 행복인 분들이었고, 나도 자식이 있다면 그랬으리라고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었다. 엄마에게 내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는 엄마의 나이가 된 나를 떠올렸다. 나는 노년의 내가 겪을지도 모를 고독과 외로움을 생각할 때마다 해일처럼 밀려와 내 마음의 균형을 순식간에 뭉개 버리는 두려움에 잠식당해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그렇게 소리 내어 울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매주 만나는 친구들에게 우리의 사정을 털어놓지 못하는 것도 나를 외로움이라는 감옥에 가두었다. 임신 소식이 자주 들리는 친구들 모임에 우리가 불임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사정으로 한껏 축하받고 기쁨을 누려야 하는 친구들의 마음에 미안함이 들어서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의 아픔을 털어내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과 친구들에게 괜한 슬픔의 짐을 지우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자주 충돌했다.



친구들과 함께 공원으로 피크닉을 나갔던 어느 날에는 임신 안정기에 들어선 친구가 해사한 얼굴로 아직 티가 나지 않는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 날씨가 진짜 좋다! 딱 요즘 내 기분 같아!”



정말 멋진 날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눈이 내리던 겨울을 막 지나온 참이었다. 나무마다 연둣빛 새 잎들이 흔들리고, 깨끗하게 펼쳐진 하늘과 겨울이 아직 한 발을 채 빼지 않은 것처럼 선선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날이었다. 임신 초기의 고된 입덧에서 해방된 친구의 기분이 딱 이런 봄이었을 것이다. 날씨 덕분에 친구가 느끼는 행복이 내 손에도 만져질 듯 선명했다.



남편과 함께 돌아오는 길 내내 그 친구의 밝은 웃음이 머릿속을 맴돌아서 의아했는데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친구가 그 말을 하던 순간이 그토록 생생한 기억으로 남은 이유를. 그건 친구의 행복이 손에 잡힐 듯 선명했던 것만큼 나의 부러움이 오롯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부러움에는 신데렐라의 새언니들처럼 질투와 시샘이 따라붙기 마련인데, 다른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이 순수한 부러움으로 마음이 꽉 찼다. 부러움이 마음을 채우다 못해 눈물로 비집고 나오는 날에는 또 베개에 얼굴을 묻고 실컷 울었다.






도저히 눈물이 멈추지 않아 덜컥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어느 날, 하염없이 눈물을 쏟는 나를 붙들고 남편이 말했다.



“오늘이 지나면 괜찮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 오늘만 살아 보자. 시계 봐 봐, 벌써 8시야. 오늘 거의 다 갔어. 오늘은 짧으니까 오늘 하루를 사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 않아.”



절대 상처받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둘만의 성을 지어 마음을 꽁꽁 싸매고 살 수도 있다.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에 위축된다면 사람들과 만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어떤 때에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몸과 마음이 너무 많이 힘들었고, 아팠다. 나는 나를 외로움이라는 감옥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나를 가둔다면 기꺼이 내가 만든 외로움과 은둔의 감옥에 따라 들어올 남편이라는 걸 알기에, 우리를 가두고 싶지 않았다.


딩크라고 말할 수 없는 마음도, 가끔은 나 스스로 깜짝 놀랄 만큼 가슴에 사무치는 부러움도, 엄마의 모습에 나를 투영하여 볼 때마다 밀려드는 고독함과 두려움도, 오늘이 지나면 괜찮을 것이라고 되뇌었다.

오늘은 짧고, 오늘을 사는 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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