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겐 자식이 제일 중요하거든

by 소금

할머니 집에 가면 흥미로운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할머니, 그러니까 ‘나의 엄마의 엄마’가 ‘나의 엄마’를 부탁할 때다. 할머니는 강아지를 어루만지듯 주름진 손으로 내 볼을 토닥토닥 어루만지다가도 헤어질 때가 되면 손을 꼭 잡고 말한다.



“엄마한테 전화 자주 하고, 응? 엄마 손목이 안 좋으니까 네가 많이 도와주고. 알았지?”



엄마가 아프지 않게, 엄마가 외롭지 않게, 엄마가 힘들지 않게. 현관문 앞에서 할머니의 신신당부가 이어진다. 그럼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으로 말한다. 할머니, 그냥 한 마디만 하셔도 돼.

‘내 딸한테 잘해!’라고……



다른 사람이 만날 때마다 그런 말을 하면 조금은 지긋지긋한 잔소리로 느껴졌을 텐데, 내 엄마의 엄마가 나의 엄마를 부탁하는 말이라 듣고 또 들어도 당연한 소리요, 납득이 가는 말이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한때 눈에 넣어도 안 아프던 손주들은 부모 속을 썩이는 순간부터 내 자식 힘들게 하는 ‘상놈’이 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자식은 자식이다. 중년이 된 내 자식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게 하는 손주는 어화둥둥 내 강아지, 주름만 늘게 하는 손주는……이 시점에서 이미 손주라고 불리기를 포기해야 하겠다.






임신을 시도하면서 자주 상상하던 장면이 있다. 소위 ‘임밍아웃’이라고 불리는, 부모님께 서프라이즈로 임신을 공개하는 이벤트다. 임신을 한다면 부모님께 어떻게 공개할까? 어버이날이나 생신과 같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어떤 핑계를 대고 준비하지? 임신 테스트기를 드리는 게 나을까, 초음파 사진을 준비하는 게 나을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달큼한 김칫국을 마셨다. 친구가 굳이 해주고 싶다고 했던 브라이덜 샤워는 ‘그런 거 귀찮다, 번거롭다, 안 해도 된다’는 온갖 이유를 들어 끝끝내 거절했으면서, 임신도 하기 전에 젠더리빌 파티를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아마 김칫국을 한 사발 시원하게 떠 마신 게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의 인스타그램 팔로잉 리스트에는 나중에 손주가 생기면 입히고 싶은 옷 브랜드가 잔뜩 담겨 있었다. 엄마는 말 그대로 ‘구매 대기’ 상태였다. 하지만 엄마의 꽉 찬 장바구니는 비워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임밍아웃’이 아닌, ‘불임아웃’을 해야 했다.



지금에 와서야 하는 생각이지만, 내가 아이 없는 삶을 완전히 받아들인 후에 부모님께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럼 엄마라도 좀 덜 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 나에겐 엄마가 필요했다. 엄마의 기도가 필요했고, 엄마의 ‘괜찮다’는 말이 간절했다. 엄마의 말에는 힘이 있어서 엄마가 괜찮다고 해주면 정말로 괜찮아질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부모님이 손주를 바랐던 마음만큼 사위를 원망하게 되지는 않을까? 나에게 자식을 낳고 기르는 기쁨에 대해 수도 없이 말하던 엄마가 우리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부모님을 보는 우리는, 괜찮을까?



부모님들 중 가장 먼저 우리의 불임 소식을 듣게 된 엄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생명을 낳고 기르는 것이 사람의 힘과 의지로 되는 게 아님을 알고 계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많이 우셨다. 한동안은 사위 얘기만 나와도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 집에 오실 땐 눈물을 참지 못해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을 울고 퉁퉁 부은 눈으로 나오곤 하셨다.


내가 가장 견딜 수 없을 상황은 우리가 불임이 된 일로 남편이 처갓집에서 눈치를 보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런 낌새가 보인다면 다시는 남편을 본가에 데려가지 않겠다는 방어적인 마음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사위가 딸의 천생연분임을 철썩 같이 믿는 우리 부모님은 사위에 대한 사랑이 가끔은 유별나다 싶을 만큼 대단하셨는데, 그 사랑의 진가가 위기라고도 할 수 있는 불임 소식 앞에 드러났다.



“부모에겐 자식이 제일 중요하거든. 너희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우니까 손주가 생기면 당연히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엄마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엄마한텐 아직 있지도 않은 손주보다 너희가 훨씬 중요해. 이 일로 너희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는 거, 속병 나지 않는 거, 몸 상하지 않는 거, 그게 훨씬 중요해.”



부모님에게 우리가 불임이라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우리의 안위였다. 엄마는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 우리의 안부를 물으셨다. 그렇게 전화를 걸어도 통화 시간의 절반은 내가 훌쩍이거나 엉엉 우는 소리를 들어야 했는데도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전화를 걸어오셨는 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말처럼 부모에겐 자식이 제일 중요하니까, 엄마의 마음이 미어져도 자식이 혼자 울게 둘 수는 없어서. 내가 실컷 울고 전화를 끊으면 그때서야 엄마는 울었다.






한동안 남편에게 계속하던 말이 있다. ‘우리 집에 안 가도 된다’는 말이다.



“있잖아, 불편하면 우리 집에 안 가도 돼. 완전 백 퍼센트 진심이야.”

“나 하나도 안 불편한데?”

“마음이 조금이라도 껄끄러우면 한동안 우리 집에 안 가도 된다고!”

“아니 나도 백 퍼센트 진심이야. 난 아버님 어머님 뵈러 가는 거 좋다고!”



걱정한 건 나뿐이었던 것처럼 남편도 부모님도, 그 누구도 우리의 문제 앞에 위축되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내가 연결 고리로 끼어 있는 남편과 부모님의 관계만 생각했다. 부모님이 사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남편이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중간에 있는 나만 안다고 여겼다. 하지만 어느새 부모님과 남편 사이에도 우리가 결혼한 햇수만큼 4년 치의 사랑과 애정, 신뢰가 쌓여 있었다.


부모님에게 남편은 자식처럼 사랑하는 사위였다.

우리에게 부모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를 향한 사랑을 거두지 않을 존재였다.

그 사랑 앞에 무정자증이 대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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