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은 없다. 또 다른 행운이 있을 뿐.

by 소금

우리 집 거실에는 소파가 없다.

결혼하고 2년이 지나던 무렵, 거실에서 소파를 치웠다. 마침 전세 계약이 만료되어 이사를 가야 할 시기였다. 감가상각이 대단하다는 소파도 ‘신혼부부, 애완동물 없음, 2년 사용’이라는 무적의(?) 키워드가 붙으니 금세 팔렸다. 그렇게 이사 간 집의 거실은 깔끔하다고 해야 할지 휑하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25평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너른 공간을 자랑했다.


그즈음 거실을 비운 건 이사 핑계를 대고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새로운 거실에는 보다 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우리 집은 안방과 옷방, 나의 사무실로 사용하는 서재로 방 세 개가 꽉 차 있었다. 아이가 생긴다면 어떤 방을 비워야 하나 고민하곤 했는데, 먼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친구들의 집을 보니 방보다 중요한 건 거실인 것 같았다. 아기는 자는 시간 외에는 대체로 엄마가 잘 볼 수 있는 거실에서 생활하니 말이다. 그래서 아이가 생기면 넓은 거실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도록 소파를 치우고, 대신 수유하거나 아이를 안고 재울 때 편하다는 리클라이너를 들였다. 리클라이너에 앉아서 종종 즐거운 상상을 했다. 아이가 생기면 복작복작 짐이 많아질 테니 치울 수 있는 건 더 치워야지. 남편이 게임을 할 때 사용하는 75인치 TV도 거실에서 치우자고 남편과 미리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우리는 비폐쇄성 무정자증 진단을 받아 비자발적 딩크 부부가 되었고, 너른 거실에 아이를 위한 매트를 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느 날은 혼자 부엌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데 문득 휑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결혼을 할 때 나의 로망은 거실을 서재처럼 꾸미는 것이었는데, 아이를 위해 비워둔 거실이 목적을 잃었으니 다음 집에선 책장을 들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 우리 다음에 이사 가면 거실을 서재처럼 바꿔볼까? 식탁도 큰 걸로 놓고.



곧장 남편의 답장이 날아왔다.



- 다음에 말고 지금 바꾸면 안 돼?

- 이렇게 갑자기?

- 지금 바꾸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어?



어…그런 건 없지. 남편의 추진력이 주저하는 내 등을 툭툭 떠밀었다.

그렇게 새해를 코앞에 둔 연말에 때아닌 거실 뒤집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월넛 색상의 책장이 거실에 새롭게 들어서고, 부부 둘이 사는 집에 거대한 6인용 식탁이 자리를 잡았다. 종종 손님들이 올 때마다 바닥에 상을 깔고 앉아야 했던 아쉬움을 큰 식탁을 사는 것으로 풀었다. 잘 보지 않는 TV도 거실에서 치웠다. 대신 서재에서 사용하던 모니터에 이동식 거치대를 연결해 거실 어디에서든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남편은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답게 로봇 같은(?) 면이 있어서 입력과 출력이 확실한 사람이다. 연애할 땐 간혹 오류가 나는 일도 있었지만, 연애 4년+결혼 4년, 도합 8년의 훈련 과정을 거친 남편봇은 웬만한 일은 척척 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이런 게 있으면 딱 좋겠는데’ 하면 남편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 만들어 주었다. 그 덕분에 거의 2주 만에 거실 인테리어를 싹 바꾸고 새해는 새로운 공간에서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스스로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꽤나 모범생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부러 의식하진 않았어도, 때에 맞춰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인생의 숙제로 여길 때다. 대학에 가는 것, 사회에서 자리를 잡는 것,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 이런 것을 위해 인생을 사는 건 아니지만, 삶의 시기마다 ‘그때’ 할 수 있으면 좋은 것들을 그 시기에 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실제로 나의 20대는 그랬다. 대학에 갔고,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었다. 남편 또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우리는 이걸 평범함의 행운이라고 불렀다. 우리는 평범함의 행운을 넘치게 누린 사람들이라고, 부족한 것도 넘치는 것도 없는 삶이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나의 다음 20년은 부모가 되어 아이를 잘 양육하는 것이 1순위인 삶을 살고 싶었다. 어쩌면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것 같은 날이 더 많겠지만, 그럼에도 남편과 한 팀이 되어 아이를 양육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행운이라고 여기면서도 그런 평범함이 이번에도 당연히 주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불임을 진단받고, 내가 정해 놓은 삶의 틀에서 튕겨져 나온 것 같은 우리의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한동안 식당에 가면 아이가 있는 테이블만 눈에 들어왔다. 30대 중반. 지금은 무리 없이 신혼부부로 보이는 우리가 조금 더 나이가 들면 남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자기 연민의 늪에 빠져 있었다. 내가 정해 놓은 정석적인 삶에서 무려 20년 치 숙제를 잃어버려 어찌할 바 몰랐던 것도 같다. 로또 1등에 당첨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꽝을 뽑아본 적도 없는 사람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꽝을 뽑은 것 같은 상실감과 허탈함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의 삶에 ‘꽝’ 같은 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부모로 살 수 있는 20년의 행운은 주어지지 않았지만, 대신 온전히 ‘나로서’ 살 수 있는 20년의 행운이 주어졌다. 나에게 임신과 출산은 여자로서 꼭 경험해보고 싶은 아름답고 숭고한 생명의 신비였지만, 그 대신 내 몸을 위험이 수반되는 큰 변화 없이 건강하게 가꾸며 살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거실 인테리어를 바꾼 후로 집의 다른 공간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아이를 염두에 두고 많은 것을 다음으로 다음으로 미루었던 집이 이제는 온전히 부부로서 누리고 살아가는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우리의 삶에 꽝은 없다. 기대하지 않았던 다른 행운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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