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완성은 무엇일까?
우리가 비폐쇄성 무정자증으로 인한 불임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협한 시각으로 인생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저출산 시대에 등장한 딩크족을 보며 ‘개인의 선택이니 당연히 존중받아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에는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면 결혼을 왜 하지?’라는 의아함이 있었다. 딩크족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면 결코 완성되지 않는 이 빠진 동그라미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결혼’에는 두 사람이면 충분하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에는 충분치 않게 느껴졌다.
내가 당사자인 남편보다 더 오랫동안 마음이 무너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건 우리에게 이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에게 가장 중요한 가족은 나였고 우리가 결혼한 것으로 남편이 원하는 가족의 모습이 이루어졌다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남편이었지만 우리 두 사람이 ‘진짜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더 정답에 가까운 지는 모른다. 그냥 집마다 원하는 정답을 고르면 그만이다. 일단 우리 집은 (직접 선택할 기회는 없었지만) 남편의 생각이 정답인 것으로 결론이 났다.
결혼을 하고 남편 직장이 있는 곳에 신혼집을 얻었다. 남편의 회사가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에 오게 되면서 뿌리내리지 못한 부레옥잠처럼 살게 될 줄 알았는데, 4년이 지나서 보니 스스로도 놀랄 만큼 제법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뿌리는 그냥 내려진 게 아니었다. 우리가 안착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꼭 붙들어 주는 손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에게는 그런 손길을 기꺼이 내어주는 어른들이 계셨다.
처음 불임을 진단받았을 때부터 수술 결과가 나오기까지, 때로는 부모님보다 더 편하게 우리의 속 사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분들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텅 빈 교회 한 구석에서 함께 따뜻한 차를 마시던 어느 날, 자녀가 없이 살아가야 할 삶이 너무 외로울 까봐 두렵다고 토로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계시던 권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애들이 다 컸잖아, 알지? 제 앞가림도 다 잘해. 문제는……앞가림을 너무 잘해서 문제야. 부모한테 어떤 도움도 받으려고 안 해. 너무 독립적이야.”
“그게 좋은 거죠!”
“알지, 아는데. 가끔 보면 좀……싸가지가 없어(머뭇거리다 말씀하셨지만 말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이셨다). 그럴 때 어떤 생각이 드냐면, ‘아, 이제 진짜 자식한테는 신경 끄고 부부 둘이서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
“빈 둥지 증후군, 이런 건가 봐요.”
“맞아, 딱 그걸 겪고 있는 거지. 가끔은 너무 서운하고 속이 상해. 근데 나도 알고 있거든, 자식들이 그렇게 하는 게 맞다는 거.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식이 있어도 똑같다는 거야. 자식이 있든 없든, 결국은 부부 둘이서 끝까지 잘 살아내는 게 중요한 거야. 우리 부부가 요즘 그런 생각을 하거든. 둘이서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재밌게 살까. 너희는 그 고민을 좀 더 빨리 하게 된 것뿐이야.”
가정은 부부로 시작해서 부부로 끝난다.
아이가 있든 없든, 부부로서 잘 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다. 아이가 있어야만 가족의 모습이 온전하다면, 아이가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을 때 부부는 강제로 뿌리가 뭉텅 뽑힌 나무처럼 휘청거리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면 왜 결혼을 하지?’라고 의아해하던 나에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이 세상에 뿌리를 내려 안착해야 하는 사람들이고, 살다 보면 각자에게 휘몰아치는 풍파를 견뎌야 할 때가 있다. 우리에게 닥친 불임이라는 사건은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꾸는 대재앙급 풍파였고, 우리가 서로의 뿌리를 단단하게 붙들고 있지 않았다면 우리의 인생은 순식간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휩쓸려갔을 것이다. 부부가 되기로 선택하는 이유는 그런 것이다. 뿌리를 내리든 송두리째 뽑혀 어딘가로 쓸려가든, 부부라는 이름으로만 함께할 수 있다.
남편과 내가 이룬 가정에는 ‘자녀’라는 새로운 뿌리가 내리진 못하겠지만, 우리는 평생을 부모가 아닌 부부로서, 나의 뿌리로 너의 뿌리를 단단하게 붙잡아 서로를 키우며 살아갈 것이다.
<결혼은 했고요, 아이는 없습니다.> 끝.
어느 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확하게는 '어딘가에 글을 올려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스트레스를 주로 종이에 푸는 사람이라, 힘든 날엔 자려고 누웠다가도 다시 일어나서 종이에 뭐라도 적어야만 잠들 수 있었습니다. 딱히 노트를 정해놓은 것도 아니고 이 노트 저 노트, 포스트잇, 메모지, 블로그, 여기저기에 내키는 대로 적곤 했어요. 그럴 때면 마음의 천장까지 쌓여있는 돌덩이를 하나하나 종이 위에 옮겨 놓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남편의 무정자증을 몇 차례에 걸쳐 진단받는 동안에도, 검사 결과와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결국은 딩크로 살아야 하는 삶을 받아들이는 과정 가운데서도, 여기저기에 많이 적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제 안에 넘실거리는 슬픔이 잘 갈무리되어 사라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이제까지는 그 방법으로 이런저런 모양의 돌덩이를 마음에서 잘 내보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글자로 내보냈다고 생각했던 슬픔이 그저 한 웅덩이로 고여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만 아는 장소에 슬픔의 모양을 잘 정리해서 다시 쌓아놓은 거예요. 나는 내보냈다고 생각했지만, 나만 아는 장소에 다시 들여놓은 걸 내보냈다고 할 수는 없는 거죠.
'내가 끌어안고 있으면 슬픔일 뿐이지만 흘려보내면 어딘가에 닿아 무엇이든 되겠지', 이런 마음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렸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 이런 사정이 있을 수도 있구나, 하고 이해의 지경을 넓히는 글이 되기를, 또 누군가에게는 어디에도 말 못 할 막막하고 힘든 마음을 거울처럼 비추어 위로하는 글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제가 쓴 글이 누구에게 닿아 무엇이 될지 저는 알 수 없겠지만, 용기를 내어 흘려보냈으니 반드시 어딘가에 닿으리라는 믿음만으로도 쓰는 동안 많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임신을 향해 가는 지난한 터널을 지나고 나면 아는 길, 예상 가능한 길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터널을 나오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길이 펼쳐져 있었어요.
처음에는 우리가 바라지 않는 길로 가야 한다는 사실에 덜컥 겁이 났는데, 꿀꺽 침 한 번 삼키고, 남편과 손을 붙들고, 그 미지의 길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길에서 알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찾아보기로. 그렇게 우리는 몰랐던 더 좋은 날을 향해 걸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혹시 지금 아는 길이 끊어진 지점에 서 계신다면, 그곳에서부터 아름답고 귀중한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며 나아가게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