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이민자는 도대체 왜?

1. 나는 왜 이곳에

by Soha

본격적으로 해가 길어지는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되는 하루


어제부터 써머타임이 시작되었다. 분명 새벽 1시임을 확인하고 침대에 누워 얼마나 뒤척거렸을까. 다시 핸드폰을 들어보니 새벽 3시 8분. 내가 이렇게나 오래 뒤척거렸나.. 그때 옆에서 남편이 자다 깨서 나지막이 웅얼거렸다.


"써머타임 시작이잖아.."


그렇다. 여기는 또다시 써머타임이 시작된 캘리포니아 LA이다.


나는 왜 이곳에 갑작스럽게 살고 있는가?


내 나이 23살 (물론 만 나이다.) 갓 대학을 졸업하여 학위복 벗은 지 일주일 만에 비행기를 타고 처음으로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첫 발을 내디뎠던 그날.


2시간 이상의 비행은 해본 적도 없는 서울 촌년이 새로운 도전을 위해 아무도 없는 곳에 첫 발을 내딛는 그 설렘은 마치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자국을 찍는 느낌과 같았을 것이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으로 비장하게 비행기에 내렸지만 정말 내리자마자 캐리어를 꽉 쥔 손에는 땀이 흥건하였고 입국 심사 줄에서 이미 내 등줄기에는 큰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좋은 인상과 나이스한 태도를 계속 중얼거리며 내 차례가 되자 손 덜덜 떨며 준비한 비자 서류를 주며 나이스하게 안부를 물었지만 내 입꼬리는 올라가기를 거부하며 그곳에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광기의 한국인을 이렇게 보여주는 것인가. 정말 얼레벌레 얼렁뚱땅 통과하여 (아직도 사실 내가 어떻게 통과했는지 잘 모르겠다;;) 캐리어를 찾는 곳에 오니 내 처지와 같은 큰 이민 가방 2개가 저 멀리서 굴러오고 있었다.


LA 공항을 나오자마자 스근하게 느껴지는 새로운 냄새.. 대마초 냄새가 진하게 인사하며 모든 간판들이 영어로 쓰여있고 라라랜드 영화에서 볼 법한 큰 고속도로들이 나를 반겨주는 것을 보니 드디어 내가 미국에 왔다는 것을 찐하게 느꼈다.


미국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살 곳을 정하는 것이었다. 일단은 어디서든 살아야 하지 않겠나.

MBTI J가 95%인 나는 파워 J인 나는 이미 한국에서 하숙 아주머니와 연락하여 집을 보기로 해놨고 그 집은 결국 약 8개월 동안 나의 거처가 되었다. 다니게 될 회사와 걸어서 20분, 차로는 약 3분 거리, 10분 거리에 마트 있음, 인 앤 아웃 세권, 지금 보니 다시는 이런 집 못 구할 것 같군. 그보다 주인아주머니 상당히 쿨하신 분이라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이 가격에 물도 잘 나오고 세탁기, 스트릿파킹 안전, 침대, 책상 다 주시고 마룻바닥에 여자끼리만 사는 집. 그 자리에서 계약하게 되면서 나의 미국 생활은 아주 스무스하게 시작되었다.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차 없는 나는 매일 아침마다 선글라스를 끼고 큰 도로 옆을 걸어 다녔는데, 그때 느꼈던 가장 큰 감정은 쪽팔림이었다 우리 집 옆의 도로는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정말 큰 도로였기 때문에 아무도 이곳을 걸어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이틀 만에 알아버리고... 누가 봐도 '한국' 스타일의 옷을 입고 '젠틀몬스터' 선글라스를 끼고 걸어 다니는 나를 큰 사거리에서 정차하여 구경하고 있는 멕시칸들은 얼마나 재밌었을까. 심지어 횡단보도도 전봇대 기둥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보행자 신호를 준다는 것을 10분 동안 신호 기다리다 어떤 아저씨가 누르는 것을 보고 배웠다. 한 달간 아침마다 엄마랑 20분씩 전화를 하며 괜히 이곳에서 고생하고 있음을 어필하기 않기 위해 씩씩하게 모든지 하고 있음을 열심히 브리핑하며 걸어 다녔던 것 같다. (다행히 퇴근은 회사 동료가 카풀해줬다..)


온 지 한 달 정도가 되었을 때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겠다 결심한 나는 오픈 단톡에 가입하여 또래 인턴 친구들과 나 혼자의 친구 사귀기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사실 나는 굉장한 집순이에 친구도 그다지 많이 없는 타입이지만, 한국에서의 그런 생활들이 지겨웠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특히 더 다양한 사람들과 친해져야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었다. 그러던 와중 대화의 결이 맞는 사람과 개인톡을 주고받고 할 정도로 친해졌는데, 이 친구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남자였으며 내가 사는 곳에서 약 50분 넘게 있는 곳에 살고 있었고 심지어 차도 없는 뚜벅이 었다. 그럼에도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는 즐거움과 함께 그 친구와 NBA 농구를 보기러 약속을 잡고 집주인 이모에게 그 친구 이야기를 신명 나게 했다. 이모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우버로 거기 가는 게 쉽지 않을 텐데..."라는 말을 남기셨다.


그 뒤로 이틀이 지난 후 이모는 갑자기 나에게 이모 친구 아들 중 심심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며 그냥 오빠 동생으로 차도 좀 얻어 타고 다녀보라며 넌지시 나에게 말했고 새로운 사람은 모두 OK 마인드였던 나는 카풀이나 좀 해줬으면..이라는 마음으로 연락처를 넘겼다.


그게 내가 생각지도 못하게 미국에 남게 될 가장 큰 이유가 될지 모르면서 말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