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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숲 Dec 14. 2021

카페에서 비폭력에 대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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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의 말과 행동에 숨어 있는 폭력성을 깨닫고, 비폭력대화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다 비폭력 대화의 즐거움에 빠져서 주위의 친구들에게도 많이 권하기도 했다. 또래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열거나 독서모임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쓰고 말하기는 쉽게 습득되지 않고, 계속해서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우리는 이따금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널 잃을까봐 두려워' 라고 이야기하는 대신에 상대가 무심하다며 책망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 힘들어서 따뜻한 위로가 필요해' 대신에 분노와 짜증을 터뜨리기도 한다. 솔직하게 표현하는 대신에 뒷담을 하기도 한다. 가끔씩 그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들으려면 들리는 그대로 듣지 않아야한다.


 보통 우리는 부정적이거나 연약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데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 수용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친구가 눈물을 흘리때 우리는 "울지 마."하고 이야기를 하지, '네가 우는 걸 보니까 나도 정말 슬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누군가 운좋게 부모로부터 솔직함을 물려받았더라도,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로부터 그러한 솔직함과 비폭력이 지지받지 않는 한 이는 지켜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평소에 폭력적인 문화에 익숙해져있다. 영화나 드라마, 만화까지 거의 모든 이야기가 싸우고 투쟁하며 적과 대적하는 내용이 담긴다. '적 이미지'는 쉽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쉽기 때문이다. 왜냐면 누구라도 유아적인 폭력성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의로움과 선함의 척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싸우는 장면이 들어있지 않으면 밋밋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더 자극적인 연출과 이야기가 인기를 끈다.


 최근 인기를 끈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지옥'은 재밌지만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잔혹하게 죽이는 장면이 계속해서 나온다. 인기있는 각종 히어로물, 범죄물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선과 악이 대적하거나, 선과 악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스토리의 흐름 자체를 재밌게 보면서도 가끔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왜냐면 우리는 평소에 일상에서는 벌레 한 마리를 죽일 때에도 죄책감을 느기고, 개의 죽음에도 쉽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이렇듯 폭력적인 내용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마치 스스로에게 '그래, 세상은 이렇게 끔찍하지. 인간은 원래 본성이 악한 존재야. 네 불안감, 두려움은 정당해. 그러니까 인간은 잘못을 하고 처벌을 받아야하는 존재야. 세상엔 내가 싸워서 이겨야할 적이 있어. 방심하면 안 돼.'하고 되새기는 것 같다.


 그리고 뉴스를 틀어보면 성폭력, 살인사건, 아동학대 사건이 빠지지 않고 저녁 시간 주요 뉴스를 채운다. 그 뉴스들을 보며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강화한다. 뉴스에는 긍적적인 미담과 사례보다는 자극적인 스캔들(정치적인)과 범죄 사건이 더 눈길을 끈다.


 이렇듯 부정적인 폭력의 문화에 익숙하면서도, 우리는 일상에서 사람에게 휘두르는 폭력에 대해서 굉장히 조심하며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여긴다. 폭력을 피하는 이유는 체면이든, 두려움이든, 신념이든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 그래서 일상에서의 폭력은 그보다 은밀하게 감추어져있다. 타인에게 던지는 한 마디 말에 칼이 숨어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나는 과연 솔직할 수 있을까? 하루에 한 번 스스로에게 솔직하면 자유로워질까? 오늘 분노와 절망을 느낀다. 집안일을 하고 요리를 해야하는데 내가 해야할 의무에 대해서 지겨움이 느껴진다. 남편을 사랑하지만 해야할 일은 지긋지긋하고, 스스로에게 무능력함을 느낀다. 나는 창조성의 욕구가 있고, 시간을 더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데에 쓰고 싶기 때문이다. 좀 더 의미있는 일에 능력을 쓰고 싶어서, 글을 쓰고 싶어서 이렇게 끄적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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