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썼다.
'나는 활자 읽는 것을 좋아했는가? 얼마나 좋아했나?' 갑자기 자문을 하게 된다.
내게 나는 답을 해본다. '아닙니다. 절대로'
최근에 눈이 너무 건조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노트북을 켰을 때 전에 사둔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썼더니 확실히 덜 피로함을 느꼈다.(마음적 효과일지 모르지만)
왜 이렇게 읽을 게 끝이 없는 걸까?
나는 과연 '마감' 없이, '과제' 없이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을까. 아니었을까.
이 새벽에 종알 종알, 주절주절, 브런치에 하소연을 펼쳐본다.
한국어도 이렇게 어려운데 외국어였다면?
오히려 외국어라서 다르게 읽혔을까?
갑자기 줌파라히리의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가 생각난다.
작가는 인도 출신이고 미국에서 생활했고 나중에 본인이 배우고 싶어서 선택한 언어는 '이탈리어'였다.
그러면서 쓴 책이었는데.. 생활하기 위해 배운 언어가 아닌 (내가) 선택한 언어를 배우고 알아가는 것..
모국어 이해도 이렇게 어려운데 외국어는 얼마나 어렵겠는가..?
한편으로 외국어를 배울 때 내가 모국어만큼을 '이해'하고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접근했다면 더 깊이 알 수 있었을까? 더 즐거워했었을 수 있었을까?
한국어도 내가 과연 읽은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단지 글자를 읽는 수준일 수도 있다.
그저 알아가는 '중'이다.라고만 생각했다면 더 가볍고 흥이 나는 배움의 과정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쓰다 보니 또 의식의 흐름대로 썼다.
결론은 읽을 게 많아지니까 너무 읽기 싫고, 읽고 이해하고, 읽고 '생각해야 하는 것' 자체가 싫다.
쓰는 것도 '목적'에 맞게, '독자'에 따라, 어떤 전략에 따라 쓰기도 하지만
백지에 휘갈겨 쓰는 것도 나는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활자를 많이 읽는 사람도 아니지만 활자를 읽고 싶지가 않은 새벽에
나는 또 이렇게 활자를 쓰면서 내 이야기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