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권, 제 3 편
<순자> 제2권, 불구不苟 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군자'다.
제목이 "구차하지 않다"이지만, 군자가 핵심 단어라는 것은 좀 어색한 감이 있다. 하지만 천천히 읽어내려가다 보면 순자의 군자상이 보인다.
역시 맹자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을 때 양혜왕은 맹자에게 많은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맹자가 양나라에 왔으니 많은 이득이 되겠다면서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맹자에게서 전혀 다른 말이 돌아온다.
"왕께서 어찌 이익 만을 바라십니까? 오직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王何必曰利, 亦有人義而已矣" <맹자, 양혜왕 상>
'역시 맹자다'라는 생각이 든다. 실리보다 명분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맹자는 매우 적극적인 정치관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맹자>를 읽어보면 단언형 문장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더라도 극적이고 맹목적인 성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왕이 실정을 하면 왕을 쫓아내서라도 장치를 바로 잡겠다는 강한 신념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맹자가 그 유명한 역성易姓을 언급하는 부분이다.
"왕이 잘못을 하여 간을 하되 여러 번 간을 해도 듣지 않으면 자리를 바꾼다.
君有大過則諫, 反覆之而不聽, 則易位" <만장 하>
이렇듯이 맹자가 기대하는 군자는 일국을 좌우할 수 있는 완벽에 가까운 도덕적 인간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이상향이 높을수록 이상향 만큼 성장하려는 시도보다 지레 겁을 먹고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역사적으로 공맹 사상이 중심이었던 사회 위정자들의 도덕적 수준은 평균 이하로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군자도 사람이다
학문이든 인격 수양이든 처음 시작하는 기준을 낮게 잡아서 점차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부작용도 적고 현명한 듯하다. 순자는 이 점을 잘 이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순자는 인간의 욕망과 나약한 의지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군자의 기준을 낮게 설정한다. 군자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사회 속에 어울려 사는 인간 부류의 일부분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군자도 두려움이 있고, 이익을 바라기도 하고, 능력이 없을 수도 있고, 모가 나기도 하고, 마음이 작을 수도 있고, 걱정도 있다. 하지만 순자가 이렇게 군자의 기준을 낮춘 이유는 세상 속에서 누구와도 함께 어울림이 가능한 현실에 뿌리를 박은 인간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군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는 희망을 높이고, 최종적으로는 고정된 신분 사회가 아닌 유동적인 신분 사회를 위해 신분 이동의 문턱을 낮춘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不
<순자> 불구 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글자는 "불, 부不"이다.
단순히 찾아보면 불구 편에만 64번 등장한다. 이는 단일 편당 단어수를 400-500 단어로 설정할 때 약 8 단어마다 한 번씩 不가 등장하고 있다. 물론 글자의 쓰임에 따라 뜻이 달라질 수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적은 수가 아니다. 군자의 의미를 설명하는 편에 '하지 마라'는 의미의 글자를 많이 사용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첫째는 합리적인 실천력이다.
"군자는 구차히 어려운 일을 행하지 않고, 이론 중에서도 이미 알려진 것만 구차히 귀하게 여기지 않고, 사물의 이름 중에서도 이미 알려진 것만 구차히 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합당한 것만 귀하게 여긴다.
君子行不貴苟難,說不貴苟察,名不貴苟傳,唯其當之爲貴."
이 문장을 보면 불구 편 전체의 주제가 들어있다. 마지막 부분에 "군자는 오직 합당한 것만 귀하게 여긴다"이다. 합당함의 다른 표현으로는 합리성이다. 돌을 끌어안고 강물에 뛰어드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고 산과 연못이 높이가 같이 평평하다고 하는 것, 하늘과 땅이 비슷하고, 음식이 귀로 들어가서 입으로 나온다는 것, 낚시 바늘에 수염이 달렸고 계란에 털이 자란다는 말은 합당하지 않다. 합리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경지의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해하는 합리적인 실천을 말한다. 군자도 일반인들이 느끼는 감정을 느끼고 일반인들이 가지는 욕심도 있다. 군자라고 해서 감정을 초월한 무아의 경지에 이른 것도 아니고 욕망을 절대 억제하는 수행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자와 일반인이 구분되는 부분은 바로 "합리적인 실천력"에 있다. 군자도 두려움이 있고, 이익을 따르기도 하고, 능력 있는 군자도 있고 능력 없는 군자도 있다. 두려움을 갖고 있지만 의를 위해서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구는 있지만 잘못된 일을 하지 않는다. 능력이 많으면 많은데로 쓰이고 능력이 적으면 적은데로 쓰임을 받는다. 군자는 일반인들도 따를 수 있도록 상황에 맞는 모범을 제시하는 인간이다.
마치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을 보는 듯하다.
둘째는 균형과 절제다.
불구 편에 보면 부드러움에 관한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앞서 수신 편에서 순자가 노자의 사상을 적지 않게 수용했음을 확인한 것처럼 불구 편도 다양한 방법으로 언급하고 있다. 관대함寬, 부드러움柔, 관용容, 따뜻함溫溫, 창포와 갈대蒲葦 등의 표현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남성다움을 배척한 것도 아니다. 모남廉, 견고하고 강함堅彊, 사납고 억셈猛毅 등의 표현도 사용하면서 군자의 강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이 순자가 부드러운 여성성과 강인한 남성성을 동시에 언급한 이유는 균형 잡힌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노자>와 <장자>에서는 부드러운 여성적인 이미지가 강하다면, <논어>와 <맹자>에서는 가부장적이고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후에 논하겠지만 능력에 따른 성 차별을 인정하지 않았던 순자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지닌 균형 잡힌 인간을 군자의 모델로 삼았다.
"일반인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이다.
凡人之患,偏傷之也."
그래서 순자는 편상偏傷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균형 잡히지 않는 치우친 생각이 어려움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균형에는 반드시 절제가 필요하다. 관대함과 부드러움과 관용, 따뜻함 등의 여성적 개념들과 모남, 견고하고 강함, 사납고 억셈 등의 남성적 개념을 조화시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조건은 바로 절제다. 어느 하나에도 치우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갖춰야 하는 덕목인 것이다. 군자는 절제를 통해서 현상과 사건을 객관화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군자는 왼쪽에 있으면 왼쪽에 맞게 행동하고 오른쪽에 있으면 오른쪽에 맞게 행동한다.
詩曰,左之左之,君子宜之,右之右之,君子有之"
인용된 <시경>의 내용처럼 어느 특별하거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군자가 왼쪽으로 서 있으면 왼쪽에 맞게 행동하고 오른쪽으로 서 있으면 오른쪽에 맞게 행동한다. 이것이 순자식 절제다.
마지막으로 불언이다.
불언은 <노자>에서 등장하는 단어로서 죽간본 갑본 제15장, 통행본 56장, 백서본 28장에 등장하고, <장자> 천도 편과 지북유 편에 등장한다.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知之者弗言,之者弗知"
사실 불언은 후에 <순자> 왕패王覇 편에서 다시 논하겠지만 순자가 이해하는 왕의 통치 방법 중 하나다. 이는 단배端拜와 왕패 편에 나오는 공기共己와 통하는 의미로 왕은 아무것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팔짱만 끼고 있지만 정사政事가 순리대로 잘 운영된다. 세상의 모든 사각형은 작은 다섯 치 직각 모양의 자만 있으면 모서리의 각도가 직각인지 아닌지 판별이 가능하다. 왕의 정치 형태도 이렇듯 다섯 치 직각자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왕이 나라의 모든 일을 할 수 없듯이 신하들에게 정사의 전권을 부여하고 왕은 단순하고 명확한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 된다故操彌約而事彌大.五寸之矩,盡天下之方也. 이러한 통치가 가능하다면 왕은 말을 많이 하지 않고도 직각자 만으로 통치를 할 수 있게 된다.
정성誠과 의지
순자는 군자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덕목을 정성誠으로 보았다. <논어>에는 정성을 의미하는 단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맹자>에는 정성을 의미하는 단어가 비교적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 성격이 <순자>와 다르다.
맹자가 말하는 정성이란 철저히 관계적이다. 군신, 부자, 사제, 부부, 친구 간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들의 관계는 나와 타인의 구분됨이 전제조건이다. 이러한 조건에는 각 관계 사이의 선천적인 주종관계를 확립하고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공맹을 추종하는 유가들이 신분 제도를 고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맹자>에서 말하는 정성이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give and take'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논어>에 정성에 관련된 단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도 선천적인 주종 관계를 암묵적으로 동의함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순자가 말하는 정성스러움이란 군자 개인적인 영역부터 천지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정성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존재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 순자가 말하는 정성은 공맹의 그것과 다르게 수양의 의미가 강하다. 더 나아가 순자는 맹자의 정명론을 구체적으로 반박한다.
"성인의 지혜가 있어도 정성되지 않으면 만백성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아버지와 자식은 친해야 하지만 정성되지 않으면 멀어진다. 왕은 존귀하지만 정성되지 않으면 천해진다.
聖人爲知矣,不誠則不能化萬民, 父子爲親矣,不誠則疏,君上爲尊矣,不誠則卑."
맹자는 정명론으로 주종 관계를 고착화하였고 계층 간의 권리를 강조한 반면, 순자는 이러한 관계 혹은 계층 간에도 스스로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면 소원해진다고 말한다. 이는 각자가 정성을 다해야 하는 의무를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순자는 지킴操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오직 지극한 그것(정성)이 머무는 곳에 모이고, 정성을 지키면 얻을 수 있으나, 정성을 포기하면 실패한다.
唯所居以其類至,操之則得之,舍之則失之."
정성은 의지를 갖고 공을 들이고 노력을 해야 얻을 수 있다는 뜻으로, 지위와 신분에 의해 자동적으로 얻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순자 자신도 결국 고정성이 아닌 화化를 통한 유동성을 주장한다.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본성을 부정하는 순자에게 의지적인 정성스러움이야 말로 역동적인 사회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덕목이다. 지위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구차함을 추구하지 않고 정성을 다함을 통한 적극적인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