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 민수에게 보내는 편지

변하지만 변하지 않는 삶에 대하여

by 반한나
지금쯤 훈련소 막바지에 왔을 민수에게.


민수, 편지 잘 받았다. 요즘 책 출판한다고 하도 정신이 없더니 이제야 겨우 편지한다.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마, 내 생에 첫 군인에게 편지하는 거거든. 뭐,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폰이 너무 안 좋아서 더 캠프 앱도 못 깔고, 너무 바쁘기도 하고... 그래서 다른 애들한테도 제대로 된 인편하나 못 써줬어.

그래도 니는 특별한 친구이니까 각별히 시간 내서 무려 '손편지'를 써보낸다. 생색 내는 거 같긴 한데 뭐, 미안한 마음이 제일 크지... 이제야 쓰는 거니...


아마 훈련소 생활도 막바지쯤 됐을 거고, 사람들이랑도 많이 친해졌겠구만.

거기 하늘은 어때? 요즘 여름이라 아주 날씨가 청명하더군! 아마 군대에서의 하늘은 더욱 그럴 테지. 라떼는 말이야~ 식사하러 갈 때 한 번씩 올려다 보는 하늘이, 그것도 저녁 쯤 분홍빛 노을 물들어 가는 하늘이 그리도 아름답더라고. 그 시간이 제일 행복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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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세 번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다면 그 날은 행복한 거라고 들었어. 훈련소 시절이 내겐 참 힘들고 정신없이 바빴지만, 하루 세번 하늘 올려다 보면서, 그렇게 억지로라도 틈틈이 행복하려 했던 것 같다. 아마도 너도 그곳에서 너만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을 테지. 어디 특별히 모난 곳 없는 너는 분명히 인간 관계에서든, 네 생활에서든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


오랜만에 만나 농구를 하고 맥주를 마시거나 커피 한 잔 하며, 참새처럼 도란도란 모여서 떠드는 시절들이 참 좋았다. 어색할 줄 알았는데도 마치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돌아온 것처럼 익숙했다. 다들 변한 게 없다고 네가 말했었는데, 나도 동감한다. 모두들 변한 게 하나도 없더라. 그리고 너도 그렇더라. 나는 사실 내가 좀 많이 변했을 줄 알았고 또 조금은 그런 변화를 기대하기도 했는데, '중학교 때랑 똑같다'는 말을 듣고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우린 10년, 30년, 60년이 지나도 그대로일 테다. 그 시간이 지나도 다시 집 앞 식당에 도란도란 모여서 참새처럼 재잘재잘 떠들 테다. 그때 나누는 대화의 주제도 지금과 비슷비슷하겠고, 생기새도 비슷비슷하겠지. 살이 좀 찌고, 주름살이 늘고, 머리가 바래지고... 뭐 그 정도일 테다.


이런 '변화'에 대한 내용을 <유퀴즈 온더 블럭>이란 프로그램에서 다룬 적이 있다.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인데 마지막에 이렇게 묻더라, "사람은 변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러면 사람들은 '변한다'고 답하기도, '변하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나의 경우 '변하지 않는다'고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 같다.


우리네 삶은 y=f(x) 꼴로 정의된 함수 같다. 함수 그래프처럼 순간의 값에 따라 우리는 변화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변화는 이미 고정된 함수 식에 의해 변할 뿐이고, 그 식은 변하지 않는다. 그 식에 따라 이미 정해진 방향으로 변화할 뿐인 것이다.

그래서 순간의 값은 변화할 지라도 그 점들을 이어보면 일관된 방향성이 나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변화하지만 변하지 않는 삶'이란 것이다.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을 뿐이지만, '스티브 잡스'도 이런 비슷한 말을 했었으니 꽤 신빙성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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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 순간 점을 찍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날 뒤돌아 그 점들을 이어보았을 때,
그제야 비로소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순간순간 변화하는 것은 태도나 생각, 선택, 신체, 외모, 경제적 상태, 기분... 등등일 것이다. 그리고 변화하지 않는 삶을 아우르는 함수 식(y=f(x))은 '가치'일 것이다. 요즘 '나의 사업'을 준비하다 보니 '가치'에 대한 생각을 자주하게 된다.

1)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2) 내가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오랜 시간 고민해 왔다.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긴한데, 아직도 찾고 있는 중이다. 너도 한 번 고민해보길 바란다.

'군대'라는 '단절'의 시간만큼 '나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좋은 기회가 없던 것 같다. 이건 너무 철학적이고 지루하고 감성적인 이야기 같을 수 있지만, 나중에 취직을 할 때도 분명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이 회사에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가?'

-> '내가 이 회사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나만이 줄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 '그럼 그걸 더 확실히 어필/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더 준비(연마)해야 하는가?'

이런 식으로 발전해가는 사고의 흐름은 너를 주체적인 존재로 단숨에 바꿔놓을 것이다.


그래서 민수야,
* 너의 가치는 뭐야?
* 네가 세상(조직이나 그룹 등)에 줄 수 있는 가치는 뭐야?


어쩌면 이미 많이 고민해 봤을 수도 있겠지만, 계속해서 질문해나가기를 바란다. 주체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물론, 네 삶의 방향성까지 정해질 것이다. 그리고 방향을 알고 달리는 자는 그 어떤 천재들도 쉽게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봤자 스물세 살 너랑 동갑인 놈인데 벌써부터 이런 꼰대 같은 말을 해버렸다... 미안 (웃음) 근데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물론 지금도 대단히 잘 해내고 있겠지만)에 한 말이니 너무 아니꼽게 생각하지는 말길 바란다. 그리고 내가 무려 손편지를 써주는 건데! 이정도는 감당해야하지 않겠뉘?! (웃음)



(그럼 좀 다른 이야기로 바꿔서...)

요즘 책 내는 일은 잘 진행되고 있다. 얼마전가지만 해도 돈이 안 모여서 고생 좀 했는데, 알바하고 용돈 좀 받고 그러다보니 이제는 돈도 충분히 모였다. 출판하게 되면 너한테 꼭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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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9살 수능 끝나고 부터, 20살 대학에 들어가고, 이것저것 하다가, 21살 군대에 가고, 거기서 고생 좀하다가 23살, 다시 대구로 돌아온 후까지... 그 시절의 일들을 일기로 썼는데 그걸 모은 책이다. 에세이지.

민수, 니 이야기도 있고, 김정융이나 노준영, 김광민, 권예찬 이야기도 있다. 공감될 거다. 특히 니는 군대에 있으니까 더욱... 자대배치 받으면 연락줘. 바로 보낼게, 책나오자 마자.


책 제목은 <뭐라도 되겠죠>. 우리가 조금 더 미숙한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습관처럼 내뱉던 말, 'x발 뭐라도 되겠지이-'가 책 제목이 됐다. 그리고 그 문장은 분명 현실이 될 거다, 나도 니도 다른 애들도 분명 '뭐라도 되'어 있을 거다.

난 관상 공부도 했고 사람보는 안목도 좀 있어서 그런데, 내가 이렇게까지 오래 친하게 지내는 애들은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놈들이거든... 건방져 보일 수 있겠지만(웃음) 농담 섞인 진담이다. 그러니까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잘 버텨내라. 그냥 너답게 하면 너는 분명 어디서든 인정받고 사랑받을 거다. 내가, 동*초, 대*중, 대* 고등학교 학생회장이었던 내가, 내가 그럴 줄 안다. 확실히 안다.


쨌든 남은 시간 잘 지내고, 틈틈이 행복하고, 책도 좀 읽고 임마. 응?! 그렇게 부지런하게, 건강하게 살아라(웃음). 쓰다보니 무슨 아저씨 같네...(웃음) 거기서는 뭐 밥도 맛 없고 똥도 안 나오고 그런다며. 근데 자대 배치 받으면 무조건 다 괜찮아지니까 지금은 그런 시간들을 좀 누려봐라(웃음). 살면서 언제 그렇게 맛 없는 밥 식은 밥 먹어보겠냐. 그것도 다~ 군대 별미인 거야. KOREAN ARMY RESTARUNT 이라고 미슐랭 별 3개 받은 데라 생각해봐라...


응~ 생각만 해도 비참해~ (웃음)


장난이고... 그래도 인생에 한 번 밖에 안 갈 곳이다. 눈과 마음 속에 또, 보다 많은 감각들 속에 차곡차곡 담아두고 온나. 이미 잘 그러고 있겠지만!



쓰다보니 길어졌네. 이만 줄일게. 아, 그 전에 한 문장 문단만 더 쓸게.


거기, 그 고여있는 군대란 집단에서, 굳이 인정받고 사랑받으려 할 필요 없다. 나와보니까 우습더라, 그렇게 발버둥치던 시절들이... 나오면 너는 더 빛나는 사람이란 걸 믿고, 밖에는 언제나 든든한 너의 가족, 친구들, 또 그 중 하나로 이렇게 멋진 내가 있단 걸 믿고, 그냥 너의 할 일이나 해라.

그 속에서 해야 할 일도 물론 해야하지만, 그 너머의, 진짜 너를 위한 일들 말이야. 그 일을 찾아서 해.

남한테 사랑받으려 애쓰지말고. 그건 이미 충분하니까.


2022.05.30. 김승학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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