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같아 보이던, 어쩌면 정반대의 모습이던 너와 나.
사랑하는 나의 나나야.
밤이 늦다 못해 새벽시간에 네게 편지를 써.
너에게 보여지지 않을 편지를 쓰는 건 아마도 더는 우리가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기에는 너무 자란 어른이 되어버려서일 수도 있어.
내 기억에는 다섯 살 적, 어쩌면 우리 엄마와 네 엄마의 첫 대면이었을, 내가 엄마의 뱃속에 있었을 적부터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을 거야.
내 기억의 너는 여자아이인데도 까까머리에 가까운 숏컷을 하고 있던 모습이란다. 늘 긴 머리에 일명 여성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다니던 어릴 적 나와는 정 반대이던 아이.
사실 너를 처음 만나 무엇을 했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 그만큼 우리의 인연은 오래전이었단 얘기겠지.
네게 내 모습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는지는 술자리에서 여러 차례 말하던 네 얘기로 어렴풋이 알고 있어. 성에 갇힌 공주 같았다는 너의 얘기 말이야.
그 당시 우리 엄마가 나를 어떤 모습으로 키우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아이들의 눈에는 너처럼 집에만 있던 아이로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엄청 엄하지도 않았고, 아예 나가 놀지 못했던 것도 아닌데, 당시에 또래보다 학원도 많이 다니고 학습지도 해야 하던 내 모습이 다른 친구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나 봐.
그래서 너는 우리 집 주방 창문에서 내 이름을 그리 종종 부르며 나오라고 야단했겠지. 덕분에 그런 날들 중 하루이틀은 밖에 나가 너희와 신나게 뛰어놀았던 그날들을 기억해. 그리고 그날들은 지금도 내게 마치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아있어.
그렇게 너는 나를 데리러 오는 기사님 역할을 자주 해주었네. 그때도 그 후에도 말이야.
겉모습은 정 반대였던 우리지만 좋아하는 취향도 비슷했고 생각하는 방식도 비슷해서 우리는 오랜 시간 친구로 남아있는 것 같아.
시간이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 우리는 겉모습은 같아지고 생각이 조금은 달라진 여고생이 되었지. 네가 없는 중학생시절을 힘겹게 보내면서 나는 겉으로만 밝은 아이가 되어 속이 곪아가고 있었고 너는 겉과 속이 모두 밝고 튼튼한 아이가 되어있었어. 어릴 적의 너도 좋았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만난 네가 너무 멋져서 나는 네가 더 좋았어.
그런 너와 대학생이 되어 거리가 멀어지고 나서도 방학이면 만나 일주일정도 함께 머물며 웃고 떠들고 우리들의 추억을 쌓아갔지. 덕분에 나 혼자라면 해보지 못할 경험들도 많이 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 우리의 웃음으로 가득한 흑역사도 그때 많이 만들었지 아마?
어느새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올 겨울 너의 결혼식이 있을 서른아홉의 우리가 되었어. 네게 결혼식 날짜를 듣고 나서는 종종 너의 결혼식을 상상해. 갑작스러운 내 결혼식에 올 수 없어서 전화를 붙잡고 한참을 울고 속상해하던 우리가 생각난다. 멀리 외국에서도 웨딩드레스를 골라주고 싶었다며, 결혼식도 꼭 보고 싶었다며 아쉬워하던 네게 너무 미안했어. 그래서 더 결혼식날 울 수 없었을지 모르겠다.
너의 결혼식에는 내가 꼭 갈게.
내 결혼식에 함께하지 못한 만큼 내가 가서 더 많이 축복해 주고 더 많이 웃어주고 어쩌면 더 많이 울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나의 나나.
잠이 안 오는 이 밤에 네 생각에 미소 지으며 글을 쓸 수 있어서 참 다행이야.
내 안의 이야기를 전화로 모두 털어놓으면 네게 짐이 될까 봐 이제 이렇게 네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려고 해. 늘 그립지만 오늘따라 그리운 나의 나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