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관객이 만나는 특별한 예술 축제
서울 코엑스에서 "어반브레이크"가 열렸다. 매년 여름 열리는 어반브레이크는 단순한 아트페어를 넘어선 글로벌 아티스트 페스티벌이다. 'Play with Artist'라는 슬로건 아래, 기존의 획일적인 아트마켓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15개국 300여 명의 아티스트가 집결하는 이 행사는 K-컬처를 기반으로 한 창작자들의 허브 역할을 하며, 관람객이 작가의 세계관과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현장형 콘텐츠로 구성된다.
2025년에는 특히 '토이콘 서울'이라는 국내 유일의 글로벌 디자이너 토이 페어가 동시 개최되었고, 자이언티가 이끄는 '스탠다드 프렌즈'와의 K-POP 컬래버레이션, 그리고 AI 아티스트들을 위한 별도 프로그램까지 더해져 그 어느 때보다 확장된 모습을 선보였다.
이는 단순히 작품을 구경하는 전시가 아니라, 예술가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창작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축제'였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향한 곳은 인스타그램으로 이미 익숙해진 그림비 작가의 부스였다. 연인 간의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그림비 스튜디오는 이번에도 역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작품들로 가득했다.
작가의 부스는 온통 '잠'이라는 주제로 꾸며져 있었다. 침대 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따뜻한 순간들이 캔버스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운이 좋게도 작가를 직접 만날 수 있었는데, 그가 들려준 작업 철학이 인상적이었다.
"잠이라는 게 원래 하루 중 1/3을 차지할 정도로 꽤 많은 시간을 차지하잖아요. 그 시간마저도 그냥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따뜻하고 편안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의 모든 그림 속 인물들은 연인을 안고 포근한 이불 속에서 행복한 단잠에 빠져 있다. 단순히 졸려서 자는 것이 아니라, 잠을 편안하고 소중한 시간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다정한 시선이 고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특히 '샘플'이라고 적힌 두 점의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작가는 "우리 삶 속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떼어내서 '이것이 행복의 샘플이다'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우리도 이런 샘플처럼 행복한 순간이 분명히 있고, 관람객들도 이 작품을 보면서 그걸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했다.
작가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표현법에 감탄하는 시간이었다. 정말 그의 의도대로, 그림들 속에서 스며 나오는 편안하고 포근한 행복이 마치 전염되듯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물들이는 순간들이었다.
다채로운 작가들과의 만남
어반브레이크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런 다양성에 있었다.
Twelve Dot 작가의 부스에서는 커다랗고 깊은 호수 같은 눈망울을 가진 개구리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없이 귀여우면서도 힙한 감성을 지닌 개구리들은 때로는 공 같은 외형으로 변주되기도 했다. 개구리라는 소재를 이토록 깊이 있게 탐구하며 새로운 매력을 발견해내는 작가의 시선이 놀라웠다.
임철균 작가의 거북이 조각 작업은 대중성과 독창성을 동시에 잡은 작품이었다. 헬멧과 바다거북을 결합한 이 작업의 탄생 배경을 들어보니 더욱 흥미로웠다.
"붉은바다거북 다큐멘터리 한 장면이 작업의 출발점이었어요. 알에서 깨어나 바다를 향해 모래사장을 기어가는 새끼 거북들, 그 짧은 여정에서 97퍼센트가 쓰러져가는 처절한 생존의 이야기를 보면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마하 해변 장면이 떠올랐죠. 해변을 가로지르는 거북들과 총탄 속을 헤쳐나가는 병사들.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제 작품에서 하나가 되었어요."
거북의 등껍질과 군인의 헬멧, 자연의 갑옷과 전쟁의 보호구가 닮아있다는 발견에서 시작된 이 작업은 본능과 의무, 자연과 전쟁 사이의 경계를 회색 빛 속에서 모호하게 만든다. 거북이의 등껍질에 새겨진 "Home is the goal", "War is hell" 같은 영화 속 명대사들은 장수의 상징이자 환경오염의 직격탄을 맞는 거북이와 전쟁을 상징하는 군모라는 대립적 요소를 하나로 엮어내며 전쟁의 참혹함을 은유적으로 전달했다.
태국 작가의 부스에서 만난 소주병 속 캐릭터는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작가는 특별히 한국 전시에 참가하면서 한국적 소재를 택했다. 소주병 안에 빠져있는 작은 캐릭터와 김밥에 말린 캐릭터까지, 자석으로 되어 있어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이 작품들은 직관적이면서도 유머러스했다.
'술통에 빠져산다'는 한국의 표현을 말 그대로 현실화한 아이디어였는데, 캐릭터가 소주병에 '풍덩' 빠져있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태국 작가가 우리나라 문화를 이렇게 재치있게 해석해서 표현해준다는 것 자체가 감동적이었다.
김김랩 작가의 "달콤한 건 항상 녹아"라는 컨셉도 인상 깊었다. 녹은 아이스크림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은 바닥의 푹신한 쿠션부터 녹고 있는 초콜릿까지 모든 것이 달콤하면서도 일시적인 순간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었다.
이런 단순하지만 명확한 메시지를 가지고 예술 작업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그 아이디어 구상법이 정말 탁월하다고 느꼈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들이었다.
원목 조각을 회화처럼 벽에 걸어 놓은 조희정 작가의 작업도 새로운 시각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브루클린에서 거주하며 자신이 사는 동네의 길거리 건물들을 소재로 작업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무의 결이 정말 살아있는 건물처럼 느껴졌다.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허무는 이런 작업은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더욱 인상적이었다.
어반브레이크 2025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작가와 직접 만나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다양한 작가들, 그리고 해외에서 온 아티스트들까지 어떤 작업을 하는지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특히 평소 SNS나 온라인으로만 접했던 작가들을 실제로 만나 궁금했던 점들을 스스럼없이 물어볼 수 있다는 것은 팬들과 아트 애호가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험이었다.
이곳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창작자와 관람객이 진정으로 소통하는 열린 공간이었다. 작가들의 창작 철학을 듣고, 작업 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며, 때로는 일상적인 대화까지 나누는 모습들을 보면서 어반브레이크가 추구하는 'Play with Artist'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어반브레이크에서는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과 갤러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지금의 미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작가 한 분 한 분이 가진 기발한 아이디어와 독특한 표현 방식, 그들만의 접근법들은 내게 또 다른 인사이트를 주었고, 창의적 영감을 얻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K-컬처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아티스트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어반브레이크는 단순한 아트페어를 넘어 창작자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 축제로 진화하고 있었다. 내년에는 또 어떤 새로운 만남과 발견이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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