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r in Music Festival 2025 리뷰
색채가 음악이 된 뮤직 페스티벌
글로벌 음악 브랜드 빌보드코리아가 주최하고 필링바이브가 주관하는 'Color in Music Festival 2025(CMF 2025)'가 지난 11월 1일과 2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개최했다. CMF 2025는 국내 최초로 '컬러(Color)'라는 명확한 주제 아래 음악과 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한 페스티벌로, 아티스트 고유의 색과 개성을 무대 위에 구현해 다채로운 감각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포부는 실제로 이어졌다. 페스티벌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사전에 아티스트들의 '컬러 인터뷰'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답변이 실제 무대 연출로 이어졌다. 이찬혁은 레드 컬러를 꼽으면서 자신의 음악은 강렬하고 정열적이고 로맨틱한 음악이라 밝혔고, 크러쉬는 가장 밝으면서도 여러 곳에 속할 수 있는 화이트를, 규현은 희망과 기쁨을 노래하는 블루를, 잔나비는 푸르게 성장하는 초록을 자신의 색으로 꼽았다. 그리고 페스티벌 무대는 아티스트은 정확히 그 색으로 그들의 무대를 채웠다. 아티스트의 철학에 맞춰 무대를 제공하는 섬세함. 이 사소하지만 강력한 '디테일' 하나만으로도 이 페스티벌을 찾을 이유는 충분했다.
필자가 관람한 11월 1일의 이찬혁, 잔나비, 크러쉬, 규현, 송소희, 이소라 등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초호화 라인업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페스티벌의 첫인상은 '배려'였다. 입장 팔찌를 채워주는 스태프가 "어떤 가수 보러오셨어요?"라고 다정하게 물었다. 나는 이찬혁이었지만, 동행인이 마침 공연 중인 가수라 말하자, 깜짝 놀란 스태프는 "그럼 빨리 보셔야죠!"라며 팔찌를 순식간에 채워주고는 어서 달려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타인의 시간을 자기 일처럼 소중히 여겨주는 마음. 그 사소한 친절 덕분에 배려받았다는 따뜻한 마음이 번지며, 축제의 시작부터 기분 좋은 신남이 차올랐다.
가장 먼저 마주한 무대는 송소희였다. '국악신동'이라는 익숙한 수식어를 벗어던진 그는 완전히 새로운 장르와 함께 돌아와 있었다. 솔직히 음원으로 들었을 때는 이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그의 음악은 사람을 홀리는 듯한 신비로운 매력을 뿜어냈다. 마치 구미호가 홀리듯 관객을 무대 속으로 거세게 빨아들였다. 한국의 원초적인 신앙, 그 얼과 혼을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듯한 무대. 하나의 잘 짜인 현대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듯했다. 매혹적이면서도 더없이 신나는 그 무대를 보며, 머지않아 대한민국을 알리는 독보적인 아티스트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크러쉬는 무대를 유쾌하게 장악하는 방법을 알았다. 그는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노련함으로 현장의 분위기를 단숨에 끌어올렸다. 노래를 부를 듯하다 멈추며 관객과 '밀당'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이 모든 '재미'가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실력'이 탄탄하게 받쳐주었기 때문이다. 곱고 로맨틱한 음색이 흘러나오다가도, 이내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리드미컬한 래핑이 터져 나왔다. 발라더이자 래퍼, 최고의 퍼포머이자 아티스트.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흰색'이라는 컬러가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가수가 또 있을까.
규현의 무대는 잔잔한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첫 곡을 부르고 나서 갑자기 눈물을 훔쳤다. 순간 '노래에 깊이 몰입했나' 싶었지만, 이내 "너무 추워서 눈물이 났다"는 솔직한 고백이 이어졌다. 그럴만도 한 게, 그의 무대는 해가 지고 차가운 인천 앞바다의 바닷바람이 불어오던 아주 추워지는 시간이었다. 규현은 5분 정도 늦게 등장했는데, 그사이 늦어진 시간을 채우는 메뉴얼인지 늦게 등장할때 폭죽이 터지기도 했다. 혹한의 날씨에 급하게 내복을 챙겨 입느라 늦어진 것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지금껏 TV 속 예능인이나 대극장 뮤지컬 배우로 그를 더 자주 만나왔지만, 이날 무대 위의 그는 '발라더 규현'의 본체 그 자체였다. 이별 노래만 잘하는 줄 알았던 그가 이토록 살랑이고 로맨틱한 노래들을 불렀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부드러운 음색이 무대 전체를 감쌌지만, 노래하는 내내 눈가가 촉촉해지고 손에 핫팩을 쥐고 있는 모습에 인간적인 안쓰러움이 더해져 웃음이 났다. 무대 전체를 물들인 '파랑파랑'한 조명은 마치 그의 퍼스널 컬러인 듯 퍽 잘 어울렸다. 그가 선사한 푸르른 행복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기다렸던 아티스트, 이찬혁. 그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였고, 그의 무대는 완벽한 예술이었다.
그는 패션부터 남달랐다. 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 중절모, 소매가 긴 셔츠에 조끼, 부츠컷 팬츠. 무대 연출은 더욱 파격적이었다. 90년대 쇼 무대처럼 여러 명의 코러스가 무대 전면에 위치했고, 이찬혁은 관객이 아닌 코러스와 눈을 맞추고 교감하며 노래를 이어갔다. 관객에게 오직 측면만을 보여주는 가수. 페스티벌 무대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 낯선 구도는,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의 실루엣은 '멋' 그 자체였다.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시간, 통상적으로 주인공을 향해 쏟아져야 할 밝은 스포트라이트가 이찬혁을 전혀 비추지 않았다. 무대 위 주인공인 이찬혁부터 코러스, 밴드 세션까지 모두가 동일한 '빨간 조명' 아래 서 있었다. 시선이 한 명에게 쏠리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아버린 연출. 덕분에 관객은 무대 위 모든 요소를 '전체'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가 인터뷰에서 자신의 컬러라 말했던 '레드'. 그 컨셉에 충실한 붉은 조명이 무대를 감쌌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마저 계산된 무대효과인 듯 그의 셔츠를 펄럭이게 했다. 측면을 보인 채 코러스를 마주하며 노래하는 이찬혁, 같은 동작으로 흥겹게 화음을 쌓는 코러스, 하얀 옷을 맞춰 입은 밴드 세션. 이 모든 요소가 하나의 그림처럼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 이 무대 자체가 예술이구나'하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멋지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었다.
음악은 이 완벽한 시각적 경험에 깊이를 더했다. 레트로하면서도 정겨운 비트 위에 현대적이고 철학적인 가사가 얹혔다. 집에서 혼자 흥얼거리던 노래를,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관객과 한목소리로 따라 부르는 경험은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이찬혁 타임의 플레이리스트는 한 편의 공연처럼 기승전결을 갖췄다. 흥겨운 'TIME STOP'으로 시작해 '비비드라라러브', '멸종위기사랑'으로 이어졌다. 특히 '멸종위기사랑'이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정확한 타이밍에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가수, 그리고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터진 불꽃. 행복은 극에 달했고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온몸을 감쌌다.
죽기 전 사랑을 깨닫는 혼성 듀엣 발라드를 지나, 무대는 마지막 곡 '파노라마'로 향했다. 죽음 앞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되묻는 이 노래는, '버킷리스트를 다 해보라'는 메시지를 통해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충실하라는 묵직한 울림을 전했다. 그의 음악적 메시지가 치밀한 무대 연출, 현장감, 독보적인 퍼포먼스와 결합해 더욱 깊이감 있게 우리에게 전달됐다.
이찬혁의 디테일과 무대 완성도가 정점을 찍은 순간은, 정해진 시간을 완벽하게 채우기 위해 모든 곡을 메들리로 재편곡한 지점이었다. 그는 노래 사이에 한 치의 쉼도 없이 다음 곡으로 넘어가며 준비한 모든 곡을 정해진 시간 안에 끝냈다. '파노라마'가 끝난 직후, 뮤지컬 커튼콜처럼 높은 편곡을 더하며 퇴장한 피날레는 관객의 아쉬움마저 감싸 안는 완벽한 마무리였다. 사소한 디테일들까지 치밀하게 빚어내 '하나의 작품'을 보여준 그는 완벽한 연출가이자 천재 아티스트였다.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찾아 듣는 잔나비의 무대를 끝으로 보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예정된 시간에서 10분이 지나도 그들은 나오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억새처럼 퍼붓기 시작했고, 이내 강풍이 불며 펜스가 넘어졌다. 주최 측의 우비는 이미 동이 났고, 우산도 챙기지 못한 터라 패딩이 젖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급한 마음과 깊은 아쉬움을 안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무대는 30분이나 지연되었지만 결국은 진행되었다고 한다.
비를 맞으며 뛰어가던 그 순간마저도, 이상하게 마음 한편은 꽉 채워져 행복했다.
음악의 힘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페스티벌. 최초로 음악에 컬러를 입힌 무대에서 사랑하는 가수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짙은 힐링과 삶의 행복을 가득 얻어갔던 시간이었다.
무대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슬플 때, 기쁠 때, 혹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가장 접하기 쉬운 음악에서 답을 찾곤 하지 않는가. 무대 위에서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직접 마주할 때의 그 기쁨은, 형용할 수 없이 행복하고 벅차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 마음속에서부터 짜릿하게 올라오는 카타르시스의 감정을 선물해준 컬러뮤직페스티벌에게 감사하다. 다만 내년에는 부디 외부 날씨 변수에 대한 더 철저한 준비와 함께, 아티스트와 관객 모두를 위해 조금 더 따뜻한 계절에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