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전시리뷰
한 번도 반출된 적 없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소장품들이 최초로 한국에 왔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중, 단 한 번도 해외로 나온 적 없던 25점의 마스터피스가 한국에서 처음 공개된 것이다. 이번 전시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로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 그리고 모더니즘의 시작까지 서양 미술사 600년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서양 미술 거장 60인의 대표작 65점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거대한 웅장함이 나를 감쌌다. 높게 솟은 기둥들과 세심하게 마감된 아치형 입구는 마치 유럽의 유서 깊은 유적 건물이나 해당 지역의 미술관을 통째로 옮겨온 듯했다. 그것은 단순한 전시장 가벽이 아니었다. 관람객이 발을 딛는 그 순간부터 서울의 소음을 지워내고, 500년 전 예술의 시간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으려는 세심한 공간적 장치였다.
전시를 주최한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는 지난 세종문화회관 전시 때부터 관람객의 경험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기획력으로 내게 깊은 신뢰를 준 곳이다. 이번에도 그 믿음은 이어질까? 기대감을 안고 전시장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본격적인 관람에 앞서 마주한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소개 영상은 미술관의 가치, 그리고 이 전시의 핵심을 보여준다.
"우리는 예술과 문화의 힘이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격차를 넘어설 수 있게 한다고 깊게 믿습니다. 예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칩니다. 역사와 미래, 조화와 관용,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 이 모든 것이야말로 우리 뮤지엄에 깃든 핵심 가치입니다."
이 문장은 전시 내내 나의 시선을 이끄는 나침반이 되었다. 예술이 어떻게 인간의 격차를 메우고 위로가 되는지 보여주는 이들의 철학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특히, 먼 타국인 샌디에이고 미술관 내에 '한국 미술관'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놀라움과 함께 뭉클한 반가움이 일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샌디에이고를 방문해 그 공간을 직접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제 시공간을 초월해,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거장들의 마스터피스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만남의 장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첫 번째 섹션은 14세기부터 16세기, '재탄생'을 의미하는 르네상스의 문을 연다. 신 중심의 중세에서 벗어나 고대 그리스·로마의 '인본주의'가 부활하던 시기, 화가들은 합리적인 원근법과 해부학적 사실성을 무기로 삼았다.
여기서 가장 먼저 나를 사로잡은 것은 베르나르디노 루이니의 <막달라 마리아의 회심>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가장 가까운 추종자였던 루이니의 붓끝에서는 스승의 흔적이 짙게 묻어난다. 그림 앞에 서자 묘한 전율이 일었다. 마치 <모나리자>를 마주했을 때처럼, 어떤 각도에서 바라봐도 그림 속 여인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다 빈치의 서명과 너무나 흡사한 화풍 탓에 오랫동안 레오나르도의 작품으로 오해받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오해가 오히려 납득이 갈 만큼, 루이니가 구현한 우아함은 독보적이었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이탈리아 남부의 화풍과 달리, 현실의 관찰과 묘사에 집중했던 북부 유럽의 차이를 비교해 보는 것도 이 섹션의 묘미다.
발걸음을 옮기자 층고가 확 트인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17세기 바로크 시대는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이 부딪치던 격변의 시기였다.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더욱 극적이고 감동적인 종교화를 필요로 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크 양식이다.
전시 연출은 탄성이 나올만큼 탁월했다. 높은 벽면에 걸린 대형 작품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하늘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나 역시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높은 곳을 응시하게 되었다. 그때, 보스(Bose) 스피커를 통해 웅장하고 성스러운 선율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시각적 압도감과 청각적 전율이 동시에 밀려오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묘한 경외감마저 들었다. 그야말로 '홀리(Holy)'한 순간이었다.
그 침묵 속에서 엘 그레코의 <참회하는 성 베드로>가 눈에 들어왔다. 십자가형 전날 그리스도를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가 깊은 슬픔에 잠겨 회개하는 장면이다. 당시 반종교개혁 가톨릭교도들이 개신교가 비판하던 '고해성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 주제를 자주 인용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보니 그림이 새롭게 보였다. 붉어지는 눈시울로 하늘을 우러르는 베드로의 표정은 종교적 논쟁을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적인 후회와 간절함을 전하고 있었다.
18세기는 귀족들의 화려한 사교 문화인 '로코코'와 이에 대한 반발로 고대 그리스·로마의 엄격함으로 돌아가려는 '신고전주의'가 교차하는 시대였다. 특히 이 시기에는 부유한 영국 귀족 자제들이 유럽 대륙을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가 유행했는데, 이때 여행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구입했던 풍경화(베두테)들이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베르나르도 벨로토가 그린 베두테 앞에 섰을 때, 나는 작년에 다녀온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골목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잔잔한 운하, 붉은 벽돌길, 햇살을 받아 반짝이던 건물들. 벨로토가 화폭에 담아낸 300년 전의 풍경은 내가 걷고 사랑했던 그 베네치아와 놀랍도록 똑같았다. 곤돌라와 성당, 광장의 공기는 여전했다. 몇 백 년 전의 그림을 보며 낯선 감동이 아닌 반가움과 그리움을 느낀다는 것. 그것은 예술이 가진 시간을 초월한 힘이 내 개인의 기억과 만나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한편, 스페인의 거장 프란시스코 고야의 <라 로카 공작 비센테 마리아 데 베라 데 아라곤의 초상>은 또 다른 의미에서 '말을 거는' 작품이었다. 청각 장애를 앓아 소리를 듣지 못했던 고야는, 역설적으로 그림 속 공작이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듯 입을 살짝 벌린 모습을 그렸다. 이를 '말하는 초상화'라 부른다. 들리지 않는 화가가 캔버스 위에 구현해 낸 생생한 목소리. 그 너머에 있는 인간 심리에 대한 고야의 통찰력은 서늘하면서도 뜨거웠다.
19세기에 접어들며 혁명과 산업화의 물결 속에 예술가들은 아카데미의 엄격한 규범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신화나 영웅이 아닌 눈에 보이는 '사실'을 그리고자 했고, 나아가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포착하려 했다.
어둠이 걷히고 빛이 쏟아지는 이 섹션에서 나는 가장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클로드 모네의 초기작 <샤이의 건초더미>는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었다. 붓질 사이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과 고요한 공기. 훗날 그의 대표작이 되는 건초더미 연작의 전조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내 방 벽에 걸어두고 매일 아침 마주하고 싶을 정도로 더없이 포근하고 안온했다. 역사적 위계보다 눈앞의 풍경이 주는 찰나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네는 빛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20세기 모더니즘 섹션은 앞선 공간들과 확연히 다른 에너지를 뿜어냈다. 르네상스가 '조화'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면, 20세기의 화가들은 각자의 개성과 시선으로 세상을 해체하고 재조립했다.
라울 뒤피, 마리 로랑생,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 호아킨 소로야….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눈에 익은 거장들의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이곳은 분위기부터 달랐다. 엄숙했던 이전 섹션들과 달리, 사진 촬영이 허용된 이 공간은 색채부터 '영(Young)하고 힙(Hip)'했다. 자유로워진 붓터치, 과감한 색감,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주제들은 관람객의 마음까지 가볍고 산뜻하게 만들었다. 모더니즘이 선사하는 시각적 해방감 속에서, 나는 비로소 긴 미술사 여행의 끝이 희망차게 마무리됨을 느꼈다.
전시장을 나서는 발걸음은 들어올 때보다 한결 가벼웠다. 이번 전시는 르네상스부터 모더니즘까지, 방대한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핵심적인 걸작들과 함께 총망라했음에도 결코 버겁지 않았다. 오히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선과 아름다운 선율 덕분에, '공부인 듯 공부 아닌' 기분 좋은 산책을 다녀온 느낌이었다.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전하고 싶다던 그 가치처럼, 전시는 공간 그 자체로 관객에게 몰입감을 선사했고, 그 안에서 만난 작품들은 500년이라는 시간의 격차를 넘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름다운 그림과 음악, 그리고 세심한 공간이 어우러진 곳. 마음이 소란스러운 날이라면, 꼭 한번 이곳을 방문해 보길 권한다. 거장들의 따뜻한 시선이 당신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