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탄식이 리듬이 될 때, The Gift 묘한민요

일상의 고됨을 씻어주는 선물, 차차웅의 현대민요

by 이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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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힘들다."


살면서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이 탄식이 실은 실은 가장 원초적인 민요다. 취업이 안 돼서 힘들고, 연애가 뜻대로 풀리지 않아 답답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야근에 파묻혀 있을 때 우리는 "죽겠네, 죽겠어" 본능적으로 탄식을 뱉는다. 그런데, 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고단한 한숨이 사실은 가장 오래된 '노래'의 씨앗이었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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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1일, 서울 소월아트홀에서 <묘한민요>는 이 보편적인 넋두리가 바로 '타령'의 시작점임을 알리며 막을 올렸다.


한국메세나협회와 메트라이프생명 사회공헌재단이 주최한 'The Gift 묘한민요'가 열렸다. 'The Gift'는 2019년부터 역량 있는 예술단체를 발굴하고 지역사회에 문화 경험을 나누기 위해 진행되어 온 문화예술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퓨전국악 밴드 '억스(AUX)', '날다(NALDA)' 등에 이어, 올해는 자신만의 색채로 민요를 재해석하는 밴드 '차차웅'이 그 주인공으로 선정되어 무대를 채웠다.


민요, 박제된 전통이 아닌 '지금'의 이야기

도입부의 메시지는 민요와 대중 사이의 묵직한 거리감을 단숨에 좁혔다. 옛 선조들이 밭을 갈며, 혹은 길쌈을 하며 불렀던 노래들도 결국 그 시대의 '야근'과 '생활고'를 토로하는 과정이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강남역 연애 타령가' 같은 현대적인 제목들이 낯설지 않고 오히려 친숙하게 다가왔다. 2025년을 사는 우리에겐 꽉 막힌 강남대로가 고개고, 복잡한 썸과 연애가 험난한 물길이다.


내 입에서 나오는 불평불만이 곧 가사가 되고, 그 넋두리에 장단을 맞추면 민요가 된다는 발상. 이 지점에서 민요는 교과서 속 오래된 전통이 아니라, 내 친구가 술자리에서 들려주는 '썰'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힘든 일, 화나는 일들을 노래로 풀어내고 승화시키는 것. 그것이 민요의 본질이다."

공연의 서두가 던진 메시지는 꽤 묵직하면서도 유쾌했다. 이 지점에서 민요는 더 이상 교과서 속 박제된 음악이 아니라, 지금 내 옆의 친구가 들려주는 생생한 이야기로 변했다. 삶의 고됨을 리듬에 실어 날려버리는 선조의 지혜가 현대의 우리에게도 유효함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사이키델릭 민요, 밴드 '차차웅'의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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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채운 밴드 '차차웅'의 음악은 '파격' 그 자체였다. 국악 하면 떠오르는 정적인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했다. 밴드 사운드를 기반으로 댄서들을 전면에 배치한 구성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들은 '달타령'처럼 우리 귀에 익숙한 남도민요나 경기민요를 원형 그대로 부르기보다, 민요라는 소재만을 가져와 완전히 새로운 그들만의 장르로 재창조했다. 이들은 현대적인 팝이나 록 사운드 위에 민요의 가락을 얹었지만, 결코 국악의 색채를 잃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요즘 노래'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민요의 현대적 해석을 넘어, '차차웅'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목격한 기분이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사이키델릭 얼터너티브 민요 밴드'라 칭한다. 그 수식어처럼 그들의 음악은 몽환적이면서도 강렬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달타령>의 변주였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라는 익숙한 구절이 흘러나왔지만, 그 밑에 깔리는 사운드는 펑키한 베이스와 드럼 비트였다. 꽹과리나 장구 대신 일렉 기타와 신디사이저가 뿜어내는 밴드 사운드는 민요를 촌스러운 옛것이 아닌, 세련된 시티팝이나 록 음악처럼 들리게 했다. 보컬 지서훤의 목소리는 한을 쥐어짜는 판소리의 탁성보다는, 경기민요 특유의 맑고 쨍한 창법에 가까웠다. 이 시원시원한 보컬이 밴드 사운드 위에 조화롭게 얹어질 때 느껴지는 쾌감은 대단했다.


이날 공연에는 특별히 JTBC <풍류대장>에 출연했던 소리꾼 서진실과 오단해가 게스트로 참여해 무대의 풍성함을 더했다. 서로 다른 색깔의 소리꾼들이 주고받는 에너지는 객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보이는 음악, 직관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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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만큼이나 눈길을 끈 것은 3명의 댄서가 보여준 '직관적인 안무'였다. 보통의 현대무용이 난해한 은유로 가득 차 있다면, 차차웅의 무대는 가사를 그대로 몸으로 번역해 보여주었다. 가사에서 "손에 닿지 않는다"라고 하면, 댄서들은 정말로 허공을 향해 팔을 맹렬히 휘저으며 무언가를 잡으려 애쓰는 코믹한 몸짓을 보여준다. 각자의 표정 연기가 살아있는 이 안무는 마치 팝 아트작품을 보는 듯했다.


소월아트홀이라는 점잖은 공연장이었지만, 무대 위 에너지는 흡사 홍대 클럽이나 록 페스티벌을 방불케 했다. 관객들은 복잡한 해석 없이 그저 "하하 호호" 웃으며 그 순간의 신명을 즐겼다. 이것이 바로 차차웅이 말하는 '민요의 현대화'였을 것이다.



일상의 고됨을 씻어주는 선물

공연명처럼 The gift는 연말을 맞이한 관객들에게 문자 그대로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민요와 한 발자국 가까워지게 만들었고, 일상의 팍팍함을 음악으로 풀어내 버리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민요가 박물관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퇴근길 이어폰에서 흘러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요즘 음악'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시간이었다. 전통을 단순히 보존하는 것을 넘어, 동시대의 언어와 몸짓으로 대중에게 건네준 '차차웅', 그리고 이러한 예술적 시도를 가능케 한 메트라이프생명 사회공헌재단과 한국메세나협회의 기획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이처럼 즐겁고 유쾌한 시도들이 계속되어, 우리의 한숨이 더 자주 신명 나는 노래로 바뀌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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