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희 Nov 07. 2022

가수 이승윤, 그는 여전히 무명성 지구인

인간은 신이다. 우리는 개별의 우주를 창조하며 살고 있다.


작년 앳스타일 매거진 4월 호 꺼내 들었다. 표지엔 ‘유명 가수, 이승윤’이라 적혀있다. 불과 싱어게인 출연 전까지 ‘방구석 음악인’으로 지구에 몇 안 되는 사람만이 이승윤의 음악을 들었는데 이제는 화보의 표지모델로 그를 만날 수 있다. 유명 가수가 된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명성이란 것의 힘이 크게 와닿는다.


싱어게인 출연 전 무명가수였던 이승윤은 명성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이승윤이 바라보는 무명시절은 어떤 의미이며 명성에 대해 하고 싶던 얘기가 무엇이었을까. '무명성 지구인'을 통해 그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무명성 지구인  

https://www.youtube.com/watch?v=udyWy91VLhI&feature=emb_title



이름이 있는데 없다고 해
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는 걸까
이름이 있는 것만으로
왕이 부릴 수 없는 그런 곳은 없을까




이승윤은 오랜 기간 무명가수로서 음악 활동을 해왔다. 가요계에선 유명한 이들의 이름만이 불리고 대중들은 유명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의 팬이 된다. 그에 대비되어 이승윤은 이름이 불리는 대신 ‘무명가수’라는 이미지로 기억됐을 것이다. 이름이 있지만 ‘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다’. 무명(無名) 가수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가수라는 뜻이지만 진정으로 이름이 없는 존재로 봐도 되는가 묻는다.


그가 던지고 있는 이야기는 음악계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에게 말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모두 이름을 하나씩 갖고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나 큰 업적을 세우거나 다수에게 관심을 받는 직업이 아닌 이상, 세상은 개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


이승윤은 이름에 가치를 매기는 세상 대신 이름의 존재만으로 나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곳을 꿈꾼다.




명왕성에나 갈까
아참 너도 쫓겨 났구나
가엾기도 하지
근데 누가 누굴 걱정 해
안녕 난 무명성 지구인이야
반가워 내 이름은 아무개
기억 할 필욘 없어



이름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곳으로 명왕성을 꿈꾼다. 허나 명왕성도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 지구인들이 정해놓은 위성 성립의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여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당했기 때문이다. 이름과 지위를 얻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명왕성은 지구인들이 발견하기 전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궤도를 돌고 있었다.


지구인에게 발견되어 태양계 행성으로 지정됐을 때에도 명왕성은 변함없이 그 자체였고,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시켰을 때에도 여전히 명왕성이었다. 주위에서 어떤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던지 명왕성은 바뀌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궤도를 돌뿐이다. 이제 우리는 이름에 따라 변하지 않는 본질, 자기 자신의 존재가 진정으로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이승윤은 이름, 명성, 지위에 대한 프레임 속에서 나왔다. 더 이상은 이름에 갈망하지 않는다. 세상이 정한 시장논리에 자신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아무개라 불려도 어떤 것으로 분류되어도 변치 않는 명왕성처럼, 자신의 가치와 존재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젊음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이름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나오자 젊음이라는 프레임을 맞닥뜨리게 된다. 젊음이란 가능성이다. 젊음이 가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 이름 모를 가능성들을 찾고 갈고닦는 게 청춘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청춘들에게 비판을 받아온 문구가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사회는 청춘에게 알게 모르게 희망을 강요한다.


지금을 희생하면 미래에 희망이 올 것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노력을 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대한 책임이며 희망을 삶으로 불러들이는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나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희망을 위해 현재의 고통과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보편적 삶이라 불리는 사회이다.


이승윤은 가능성과 동시에 목표를 주는 사회 안에서 무기력해지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무언갈 만들어내고 있다. 그가 걸어왔던 길인 그만의 음악이다.  





아무리 그래도 무언간데
아무 것도 아니래 필요치 않으면
곱씹어 볼수록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이란 말은 너무나 잔인해
모래도 언덕도 바람도
달 그림자도 있는데
샘이 숨겨져 있지 않은
사막이라도 아름다울 순 없을까
안녕 난 무의미한 발자취야
반가워 내 이름은 아무개
기억 할 필욘 없어




우리는 모두 존재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 이름을 널리 알리지 않았다 해도 무언가로서 존재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사회의 규칙대로 보자면 무명시절 이승윤의 행보는 의미 없는 발자취이다. 명성도 만들어주지 않으며 경제적인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의문을 갖는다. 사회의 질서에 맞는 것만 아름다운 것이고 자신의 발자취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지 않은가. 명성이 없는 이들이 만든 것들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할 수 있는 것일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흔적으로 남긴다.




이름 없는 생물의 종만 천만 개체라는데
이름 하나 새기지 않고 사는 삶도
자연스러울 수 있단 거잖아
삶이란 때빼고 광내거나
아니면 내빼고 성내거나일까
신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신이 말하길
난 이름이 없어



자연에 존재하는 것들은 원체 이름이 없는 것들이다. 생물들은 이름이 없어도 생태계의 먹이사슬의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며 세계를 구성한다. 중요한 존재들. 이 자연처럼 이름을 새기지 않는 삶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름 없는 삶은 안타깝고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임을 깨달은 듯하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다. 신은 더 이상 하늘에 있지 않고, 인간이 사는 땅 위로 내려왔다. 현대의 물신주의를 보면 알 수 있다. 돈과 물질이 있으면 인간도 곧 신이 된다. 물질이 만들어낸 명예나 권력으로 인간은 자신들이 사는 세계에 대한 질서를 만들었다. 또한 기존 질서에 맞지 않는 이들은 소외하고 비주류가 되었다. 이승윤은 사회에 있던 질서에 발맞추지 않았다. 기존에 사랑받는 대중음악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해왔다.   





인간은 개별의 우주에서의 신이다 



신은 이름이 없다. 신은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나간다. 이승윤은 그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리고 결국 그만의 특별한 음악은 곧 하나의 장르가 되어 대중음악이 되었다. 우리들도 각자 '나의 세상'을 창조하고 있다.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곧 나의 우주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인간은 신이다. 우리 개별의 개인들은 모두 다 각자의 우주를 창초하는 신이다. 우리는 단독자고, 유일자이다.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오직 나 하나뿐이며 내 세상은 결국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우주를 창조하고 변경하며 나의 결정대로 세계를 만들어나가면 된다. 이름을 얻지 못했다고 함부로 대해지고 내 세상을 누군가 변형하게 두면 안 될 것이다. 내 세상에서는 내가 신이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내가 만든 세계의 신이 내가 아니란 의미이다.   





우리는 여전히 무명성 지구인 




사회의 가치관과 자신의 가치관에 차이가 있더라도, 이상과 현실에 간극이 있더라도 이승윤은 삶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통념을 깨고 세상을 비범하게 보는 그의 음악엔 조명받지 못하는 개인의 가치를 찾아내는 특별한 시선이 담겨있다. 그렇기에 그의 음악은 애매함에 지친 사람들과 주저하는 개인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쥐여준다.


이승윤은 무명가수의 호칭을 벗고 이승윤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유명 가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무명성 지구인을 꿈꾼다. 2년 전 인터뷰에서 그의 야망은 아무도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이었다. 유명성 지구인, 이승윤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승윤'이라는 사람보다 이승윤의 '노래'가 더 알려진 가수가 되길 바라고 있다.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명성을 갈망하여 오늘을 괴롭게 채우기보단 나의 지구를 창조하는 것에 하루하루 집중하며 사는 삶이 진정 가치 있다. 여러분들도 이 메시지로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3094


작가의 이전글 그림 속 운명의 순간들,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제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