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장줄리앙이 서울에 다시 찾아왔다. 지난 22년 DDP에서 열렸던 장줄리앙의 회고전 <그러면, 거기>에서 아티스트의 세계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짙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올해 열린 전시에도 자연스레 찾아갔다.
ⓒJean Jullien
<장줄리앙의 종이세상(PAPER SOCIETY)>로 장 줄리앙이 24년에 한국에 돌아왔다. 2024년 9월 27일부터 2025년 3월 30일까지 퍼블릭가산 퍼블릭홀에서 개최한다. 퍼블릭가산은 전시, 강연, 이벤트를 유치할 수 있는 서울 대규모의 복합문화공간이다. 특히 이번 전시가 뜻깊은 이유는 지난 2월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선보였던 '페이퍼 피플'의 연장선이자, 페이퍼 피플 시리즈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기 때문이다.
페이퍼피플 세계관
ⓒJean Jullien
장줄리앙의 <그러면, 거기> 전시를 보았다면 한 번쯤은 종이인간을 마주쳤을 것이다. 페이퍼피플은 장줄리앙의 일러스트에서 태어난 조형물이다. 페이퍼피플 세계관이 연결된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매력포인트인데, 파리의 르 봉 마르쉐 백화점에서 페이퍼피플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더 큰 세상을 향한 열망을 보여준다. 장 줄리앙의 거침없는 붓터치와 따뜻한 색채로 튀어나온 페이퍼피플은 유리창 안에서 책을 읽고 사람들을 관찰하며 자신들만의 세상을 꿈꾼다.
쇼윈도를 깨고 나온 그들은 이제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 자연과 문화생활을 즐기며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장줄리앙의 종이세상>에서는 이제 우리 관객들이 종이인간들의 세상에 들어가 페이퍼피플의 일상을 살펴볼 차례이다.
페이퍼 팩토리
ⓒJean Jullien
전시를 들어서면 커다란 종이인간과 조형물, 벽에 가득한 작품에 놀라움과 탄성이 나온다. 이곳은 페이퍼 팩토리로 종이인간들이 만들어지고 그들이 일하는 작업장을 볼 수 있다. 컨베이어 벨트가 있고 그 벨트 위에 페이퍼피플들이 생산된다. 이제 막 그려지기 시작한 페이퍼피플들이 자신이 가위질 되기를 기다리고 컨베이어벨트 앞 작업자는 색을 칠하고 눈을 그리고 있다. 바로 위쪽 공간에서는 거대한 페이퍼피플을 레일에 매달아 말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Jean Jullien
이 색션은 페이퍼피플 세계의 첫 시작이다. 높은 층고와 넓은 공간을 가득 매운 페이퍼피플을 시각적으로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성장해가는지 그들의 모습을 따라가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확인해보길 바란다.
ⓒJean Jullien
페이퍼 정글
ⓒJean Jullien
이 섹션에서는 관람객을 압도하는 거대한 밤이 등장한다. 뱀은 귀여운 얼굴로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고, 뱀의 몸은 2m가 넘는 듯 높았고 빙빙 돌면서 관람할 수 있도록 방 전체를 둘러쌓고 있었다. 뱀의 몸통에는 장줄리앙이 직접 그린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몸통에 그려진 벽화를 따라가다보면 빅뱅이 일어나 생명이 단생하고, 공룡시대를 지나 인류가 탄생하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다양한 역사와 종교, 전쟁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석유의 사용 시작과 현대인들의 직장생활과 과소비의 이야기와 함께 뱀의 몸의 높이는 점점 낮아지고 뱀의 꼬리로 갈수록 인류는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 작가의 유머넘치고 직관적인 그림으로 생명의 탄생부터 종말까지 세계의 역사를 볼 수 있음과 동시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다.
ⓒJean Jullien
뱀의 꼬리 뒷면에서는 다시 생명이 싹트기 시작하는데, 여기서는 종이인간의 탄생 스토리를 만나볼 수 있다. 동그라미 페이퍼피플과 네모 페이퍼피플의 이야기가 흥미로우니 꼭 직접 확인하고 즐겨보길 바란다.
작가는 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관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스토리를 전하고자 한다. 정교하게 구성된 정글 속에서 작가의 의도를 깊이 이해하며 숨겨진 메시지를 발견하길 바란다.
페이퍼 시티
ⓒJean Jullien
페이퍼 시티는 실제 도시를 모티브로 한 공간이다. 갤러리, 도서관, 영화관, 카페, 꽃집 등 가게와 건물들이 구현돼있다. 다양한 장소에서 실제 페이퍼피플이 사는 모습을 세밀하게 담아냈다. 이 공간은 장줄리앙의 회화와 드로잉 작품을 포함해, 파리 르 봉 마르쉐에서 선보인 쇼윈도 설치작품까지 함께 전시되어 그의 독창적인 도시 풍경을 생동감있게 재현한다. 이 도시를 거닐며 페이퍼피플이 어떤 일상을 사는지 엿볼 수 있고, 작가의 예술적인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
ⓒJean Jullien
페이퍼시티에서는 조화로운 색감들과 실제 크기의 건물과 오브제들, 자동차까지 구현돼있다. 실제 건물에 들어가서 카페엔 어떤 메뉴가 있고, 어떤 테이블에서 쉬는지, 도서관에서는 어떤 책을 읽고 갤러리에서는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엿볼 수 있었다. 굴뚝같은 동그란 공간에서는 벽에 수많은 드로잉들이 붙어있어 그림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페이퍼 시티를 거닐며 페이퍼피플의 일상을 세세하고 귀엽게 담아내는 작가의 창의력에 감탄을 할수밖에 없었다.
마치 쇼핑 득템해서 신난 우리 모습 ⓒJean Jullien
<장줄리앙의 종이세상>은 거대하고도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귀여운 그림체와 상상력 넘치는 동심 어린 캐릭터와 모습들, 단순한 선으로 표현했지만 심오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심플한 선에 철학을 담는 것. 장줄리앙의 가장 큰 매력이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전시를 보며 공간 자체만으로 새로운 감각과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다. 공간만으로 색다른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몇 없는 전시이지 않을까 싶다. 단 페이퍼피플에 대한 전시이기 때문에 장줄리앙 회고전 <그러면, 거기>의 전시에 비해 작품 수가 작고 규모는 작아 관람시간이 짧다는 점 참고 바란다.
페이퍼피플이 그들 나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곳은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다른 바가 없었다. 납작한 이곳에서 우리의 삶이 새롭게 표현되는 듯 했다.
장줄리앙의 상상력 넘치는 공간에서 페이퍼피플의 일상을 따라가며 우리의 삶과 일상을 찾아보는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