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뭐라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좋아하는 예술 그 자체를 열심히 해서 세계적 아티스트가 된 기안84, 동심 어린 호기심을 실험하며 426만 명의 유튜버가 된 허팝, 밥을 잘 먹어서 방송계까지 진출한 먹방러 히밥까지.
여기 루마니아어를 마스터해서 루마니아 소설가가 된 전무후무한 힙한 히키코모리 일본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사이토 뎃쵸'. 그리고 그가 신작을 가지고 왔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 이 책에는 사회와 융화되지 못하고 오직 모니터만 보던 히키코모리가 희소한 루마니아어를 배우고 루마니아어로 소설을 쓴, 세상에 하나뿐일 유일무이한 작가가 된 여정을 담고 있다.
사이토 뎃쵸가 전무후무한 힙한 히키코모리가 된 이야기를 살짝 들여다보겠다. 청춘의 황금기라 불리는 대학 생활 4년을 사이토 뎃초는 '잃어버린' 시대라 칭한다.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취업 활동에서 좌절을 맛본다. 결국 버티고 버티다 못해 무너져 내려 방에 틀어박혀 '히키코모리'가 된다. 방 안에서의 생활로 1분 1초의 시간 개념도 사라지고, 남아도는 시간을 맨정신으로 보내기 어려워진 그는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영화관에서 상영되지 않는 각국의 인디 영화들에 매력을 느낀 그는 '영화 광인'처럼 거의 모든 영화를 보고 미친 듯이 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운명적으로 루마니아 영화를 만난다. 루마니아 언어 자체를 주제로 삼은 이 영화는 저자가 루마니아어를 배우게 만들고, 루마니아 비평가와 시나리오 작가와 관계를 맺게 하고, 결국 소설가로 활동하게 만들어준다. 이 영화를 시작으로 한 순간에 '루마니아어'와 사랑에 빠진 그는, 일본 자신의 방에서 희귀하고 마이너한 루마니아어를 홀로 공부하기 시작한다.
방구석에서 언어를 마스터하는 그만의 비법
학교에서는 언어를 강제로 학습했다. 그는 영어 수업 중 예문에 슬랭을 적어 냈는데, 돌아오는 것은 무자비하게 그어진 선혈같은 빨간 펜이었다. 그때 스스로 학습하려 했던 마음은 사그라들고 말았다.
학교 밖에서 진정한 어학의 즐거움이 있었다. 좋아하는 만화 영화 '죠죠'의 등장인물의 이름이 전부 이탈리아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흥미를 느껴 이탈리아 교재를 직접 구매해 보면서 능동적으로 공부할 때의 상쾌한 기분을 느낀다. 또한 DVD로 영화를 볼 때, 기분이 내키면 영어 자막을 켜놓고 영화를 봤다. 이때 자연스럽게 영어를 '스스로' 학습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 입시를 치르며 영어와 영문법을 '세뇌'당하며 공부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몇 번이나 영어 자막으로 영화를 즐겼기에 어느새 무시무시한 무기를 평화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럼, 루마니아어는 어떻게 마스터하게 되었을까. 일본에서도 루마니아어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교재 자체도 손에 꼽히는 마이너한 언어다. 특히 작가의 말로는 유럽에서도 송사리 취급당하는 최빈국의 언어로 입지가 굉장히 작은 편이다. 사이토 뎃쵸는 그런 언어를 일본에 틀어박힌 채 공부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독감이 있었다고 한다.
틀어박힌 채로 루마니아 유학
이러한 루마니아 언어를 일본에서 공부하는 것은 아주아주 어렵다. 루마니아의 문법이 어렵긴 한데, 학습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가시밭길이다. 그는 몹시도 고독한 여정을 걸어갔다. 일본에서 쉽게 입수할 수 있는 루마니아 교재는 두 권뿐이니 그 환경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말 다한 것과 다름없다.
언어를 마스터하고 싶다면 일상에서 언어를 접할 기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걸 제공해 준 것이 바로 넷플릭스였다. 루마니아 자막을 달아 작품을 감상하면서 루마니아어가 어떻게 번역되는지 배울 수 있다. 루마니아 유학하는 기분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외국어를 접하는 상황은 언어 학습에 정말 중요하다. 일상에 언어가 뿌리내리지 않으면 자유롭게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는 루마니아어를 많이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이나 표현을 배우기 위해 루마니아 메타버스를 구축한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페이스북을 하는 비율이 높다. 이를 잘 활용하면 루마니아의 지금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를 파악해 루마니아 사람들 4,000명에게 친구 신청을 보냈다!
새로운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루마니아인을 대상으로 메시지를 썼다. 루마니아어로 '저는 루마니아를 좋아하는 일본인입니다. 루마니아 친구를 사귀고 싶어요.' 같은 식으로. 이렇게 매일 친구를 신청하다 보면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 교우관계를 구축하며 수다를 떨 수도 있다.
그들과 친구가 되고 SNS로 교류하며 루마니아의 슬랭을 배울 수도 있으며, '루마니아 사람만 아는 재미있는 단어를 알려달라'고 글을 쓸 수도 있다! 물론 무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제일 중요한 자세가 '기세로 밀고 나가기'다.
이렇게 인터넷으로 실전 루마니아를 공부하던 사이토 뎃초는 루마니아의 소설가 랄루카를 알게 되고 곧이어 도쿄에서 만나게 된다. 문화에 조예가 깊었던 둘은 루마니아 영화와 문학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사이토 뎃초는 자신이 쓴 일본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읽어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랄루카씨는 흔쾌히 허락했고 루마니아어로 번역된 일본 단편 소설은 그에게로 보내진다. 그리고 며칠 뒤 랄루카씨에게 메세지가 온다.
'당신의 소설을 루마니아 문예지에 보냈어요.'
'아니, 저기요...?'
이후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책을 한 손에 들고, 그의 인생이 어떤 기회를 만나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함께 확인해보길 바란다.
"고독이 가르쳐주는 것은 당신이 혼자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유일무이한 존재하는 것이다."
루마니아 출신 반철학자 시오랑의 말을 사이토 뎃초의 문체로 번역한 말이다. 혼자라는 건 내가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러니 혼자임에 슬퍼하기보다는 내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순간이라 생각한다면 어떨까.
“그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이게 최고로 즐겁다.”
사이토 뎃초가 지금까지 해 온 일의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즐거운 일을 해왔을 뿐이다. 남과 다른 삶의 방식과 남과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어도 그는 나름 재밌게 잘 살고 있다. 이제 다름은 불안이 아니라 다양함이 되고 개성이 될 수 있는 시대다. 친구가 몇 없어 재미없는 대학 생활을 보내고, 취업 준비에 부담과 환멸을 느껴 포기했지만, 그는 작가가 되어 한국어를 하는 여러분에게 까지 자신의 글을 알리고 있다. 있다. 이 시대에 그의 이야기는 공감을 주고 위로와 응원까지 주는 듯했다.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요즘은 뭐라도 하면 무언가가 될 수 있는 기회의 세상이다. 그러니 내가 어떤 배경을 가졌든, 어떤 것을 좋아하든 똑같은 기회를 가졌음을 인식하고 자신감을 느끼자.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끈질기게 계속해서 해나가자. 그러다 보면 어떤 재미난 상황이 내 앞에 올지 모른다.
흔히들 말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버텨서 남아있다 보면 목적지에, 또는 그 근처에라도 도달해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뭐든 하다 보면 뭐가 되긴 해 : 루마니아의 소설가가 된 히키코모리>로 상상이 현실이 되는 실화 에세이를 보며, 삶의 가능성을 찾고 자신감을 얻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