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책리뷰, 삶에 필요한 20가지 이야기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많은 문제를 맞닥뜨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을 찾는다. 책 속에 수천 년의 인류의 지혜와 현자의 해답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과 철학책을 즐겨 읽었지만 최근에는 예술, 그중에서도 미술을 향유하고 있다. 미술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해답이 많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직관적인 느낌, 작가의 의도가 담긴 메시지, 더 나아가 작가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깨달음까지. 미술 속에서 우리는 많은 깨달음과 다채로운 감정을 얻을 수 있다.
인기 미술 에세이스트 이유리 작가의 신간 <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에서는 그림을 통해 삶의 본질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최소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갖춰야 할 것들에 대해, 그간 예술작품을 탐닉하고 깨치고 체득한 '삶의 기본 소양'에 대해. 어쩌면 너무 기본이라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시대적 배경과 예술가의 삶, 한 번쯤 봐야 할 미술 작품과 자신의 삶을 엮어 다채롭게 풀어낸다.
사랑을 할 때 우리 모두는 위험해진다. 사랑하기에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 속을 많이 썩이는 아이였다. 밖을 나서는 날에 엄마 손을 놓고 가고 싶은 곳으로 쌩 가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은행에서도, 마트에서도, 백화점에서도, 심지어는 해외를 놀러 가서도 나의 겁 없는 행동이 계속 됐으니 얼마나 힘드셨을지 짐작도 할 수 없다.
<부모로 산다는 것>의 저자 제니퍼 시니어는 말했다. "부모와 아이의 연결이 연결이 아무도 강력하다 하더라도 사실은 수천 개의 거지줄처럼 약한 실로 현성된 것" 시니어는 다소 불길한 언어로 그 이유를 이야기한다. "부모가 연결의 기쁨을 온전하게 경험하려면 한편으로는 멋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끔찍한 어떤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상실의 가능성'을 자신에게 내맡기는 것이다.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화가 펠릭스 발로통의 1899년 작품 <공>에서도 끊어질 듯한 거미줄을 확인할 수 있다. 여름날 오후 뜨거운 햇볕 아래 아이는 홀로 땀을 흘리며 논다. 아이는 주황색 공을 갖고 놀고 있다. 같이 공원에 나온 엄마와 이모와 함께 놀고 싶지만 그들은 아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만 하고 있을 뿐이다. 심심해진 아이는 공놀이에 욕심을 낸다. 힘을 조금만 더 주어 공을 던졌을 뿐인데 멀리 날아가버린다. 아이는 무작정 공이 날아간 방향으로 달린다. 어느새 어른들과 멀리 떨어져 버린 것도 모른 채.
아이가 있는 곳은 어른들이 있는 그늘 속 잔디밭이 아니라 맹렬한 태양빛을 받고 있는 황톳빛 땅 위이다. 이 땅 위에 드리워진 그늘은 마치 아이를 덮치려는 듯 손을 뻗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아이들은 자라고 그만큼 더 위기와 마주칠 것이다. 그때 부모는 얼마나 더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부모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불안이다. 아이가 어디로 향할지, 언제 어떻게 내 통제에서 벗어날지 부모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 사실은 아이에 대한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우리가 설계할 수 있는 부분은 아주 작은 부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진리는 피해 갈 수 없다. 단지 그걸 언제 깨닫느냐의 차이이다. 발로통이 긴장감 넘치고 불안한 그림을 그렸던 이유도 그가 어릴 때 이러한 불안했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행히 지금 어른이 되기까지 나의 가정에서 잘 컸다. 어릴 적 수많이 엄마의 손을 뿌리쳤지만 결국 나를 찾아낸 부모님 덕분이다. 사랑하기 시작하면 고통이 뒤따른다. 나의 통제 밖으로 언제 뛰쳐나갈지 모르는 불안, 언제 잃을지 모르는 두려움, 소설가 박연선이 한 말이 있다.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을 가져버린 슬픔' 때문이다.
이렇듯 <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에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 이야기를 글로만 적는 것이 아니라 미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하여 더욱 특별하고 와닿을 수 있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들, 또는 앞으로 겪어야 할 이야기들이 가득하니 미술을 통해 스무 가지 인생의 진실을 가져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