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아기를 낳으려면 주로 병원이나 조산원에서 출산한다. 나도 내 아들을 산부인과에서 제왕절개로 출산했다. 우리 아들이 태어나 눈을 뜬 곳은 병원. 입원실에서 3일을 보내고, 바로 위 층에 있는 조리원에서 2주를 더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우리 어머니는 나를 어디서 낳았을까? 나는 어떤 집에서 태어났을까?
<내가 태어난 곳 마당에서 놀고 있는 어린 시절 모습. 남동생과 함께.>
우리 어머니 말씀으로는
“집에서 낳는데, 어머니가(어머니의 시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할머니) 술 먹고 산파를 늦게 불러서 엄청나게 고생했어. 머리가 커서 정말 힘들었어.”
그 얘기를 들을 때면 난 생각했다. ‘우리 어머니 초가집에서 날 낳고, 내 머리가 커서 많이 힘드셨구나....’
우리 어머니는 초가집 안방에 이불을 깔고 출산 준비를 하며 산파를 기다렸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출산 배경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 어머니는 어디서 태어났을까? 외할머니는 우리 어머니를 어떻게 낳았을까?
옛날 사람들(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옛날 사람은 내 할머니 나이 때, 80살 넘으신 어르신을 말한다.)은 어떻게 아기를 출산했을까? 따뜻한 방바닥이 있었을까? 이불도 흔하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출산 준비를 했을까? 내가 태어난 초가집에서, 나와 같은 출산 준비를 할 수 있는 컨디션이었을까?
우리 엄마도 나처럼 초가집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출산 당시 주변 컨디션이 달랐다.
1958년생인 우리 어머니가 태어날 때는 좀 살던 집에선 방을 따뜻하게 해서 아기를 낳았다고 한다.
하지만 생활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은 방을 데울 수 없었다.
그래서 미리 모아둔 말린 짚을 방 안에 두툼하게 깔아 보온성을 높였다. 그리고 그 위에 이불이나 헌 갈중이(제주갈옷) 등을 깔아 아기를 보호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출혈로 피가 묻은 짚은 통시(제주 옛날 화장실)에 버려 거름으로 사용했고, 이불과 옷가지들은 깨끗하게 빨아 다시 사용했다.
친정엄마가 있으면 뒤처리를 도와주지만, 도와줄 사람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뒷정리를 해야 했다.
<내 모습 뒤에 보이는 것은 짚을 쌓아둔 “눌”이라는 것이다. 제주도는 짚을 활용해 초가집 지붕을 만들고, 저렇게 “눌”을 만들어 곡식을 보관했다. 또 출산할 때 방안에 짚을 깔아 아기를 낳았다.>
우리 아들은 산부인과 수술실에서 태어나고, 나는 초가집 따뜻한 방에서 태어났지만, 우리 어머니는 말린 짚 위에서 태어났다. 같은 초가집이라 불리지만 그 안에 경험한 모든 것은 다르다. 주택이나 아파트, 빌라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같은 공간이지만 사는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내가 어떤 집에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궁금한 만큼 타인들도 어떤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타인이 모여 공동체가 되고, 공동체가 문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타인의 삶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내가 태어나고 자란 제주도의 문화가 궁금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