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메리는 너무 빨라 말라버렸다.
카강캉캉캉캉. 꽈광쾅쾅쾅쾅. 다닥탁탁탁탁. 재애앵.
귀에 익숙하다.
날카로운 꽹과리의 단타음을 장구채가 빠르게 떠받든다.
소고에 맞춰 장구와 꽹과리 소리는 모아졌고 징소리를 따라 타악기들은 여운을 남기듯 흩어졌다. 가까이 다가오는 사물놀이 소리는 기억을 몰고 왔다.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에서 줄지어 가는 농악행렬, 벼이삭이 익어가는 논길을 가로 지르는 광경이 눈에 훤하다.
가을 하늘을 뒤흔들던 가늠할 수 없는 불규칙한 리듬이 엘에이 한인 타운 한복판에서 들려오다니.
무슨 일이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사물놀이 소리에 이끌려 나도 밖으로 나갔다.
올림픽 거리를 가로지르는 사물놀이를 구경하기 위해 벌써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있었다.
사람들은 농악놀이를 구경하고 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멀고 먼 타국 땅에서 울려 퍼지는 흥겨운 장단은 하늘을 휘몰았고 땅을 흥겹게 감았다.
그제야 나는 농악행렬이 4.29폭동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다는 것을 알았다.
나라면 지나간 궤적 따위는 기억 속에서 말끔하게 지우라고 권할 텐데 어떤 과거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모양이다. 하긴 상처가 아물어도 아픔은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고스란히 머릿속에 남기 마련이다.
한순간에 폭도로 돌변해 한인 상점에 불을 지르고 약탈을 하던 흑인들을 위해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화합의 손을 내밀었다.
어쩌면 한인 타운에서 농악대의 장쾌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20년 동안 화합을 위해 애를 쓴 덕인지도모를 일이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살아남으려면 피해자였다 할지라도 다시는 그런 일이 생겨않도록 가해자를 달래는 수밖에.
농악놀이를 엘에이 한복판에서 떠들썩하게 치를 정도로영향력 있는 행사가 되었다면 이제 두 인종간의 갈등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건 꿈일 뿐, 현실은 달랐다.
언젠가 챙은 현관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내게 이렇게 말했다.
“조앤, 도시도 사람의 영혼처럼 늙어가나 봐. 저 그림자 좀 봐. 꼭 죽음의 유령을 닮았어.”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유령 타령을 하고 그래?”
챙의 표현처럼 도시는 힘없는 사람에게는 무능력했다.
느리게 움직이는 늙은이의 맥박처럼 도시 한 귀퉁이를 살아가는 우리는 외줄을 타는 기분이었다. 더 이상의 실패도 없을 테지만 우리에게 실패라면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고 죽는 건 해방을 얻는 일이었다.
챙이 삶의 외줄을 놓아버린 건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갑작스런 그녀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누리끼리하게 멍든 자국도 그녀의 얼굴에서 점점 사라져갈 무렵이었다.
그녀가 죽고 난 다음부터 나도 모르게 기를 쓰고 빛이 있는 곳으로 찾아다녔다. 그녀가 남겨주고 간 로즈마리 때문만은 아니다. 고장으로 안 열리는 창문을 열려고 애를 썼다. 풀풀 느껴지는 곰팡내에 질식 될 것만 같았다. 로즈마리 화분을 들고 이쪽저쪽 빛이 잘 드는 장소로 옮겼다.
-장편소설 독박골 산1번지 제1화 말라버린 로즈메리 2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