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말라버린 로즈메리(2편)

챙이 꽃잎처럼 땅에 떨어진 이유가 돌아갈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by 권소희


지난 크리스마스 전날, 챙이 조그만 로즈메리 화분을 사갖고 왔다. 우리는 금박지를 벽에 붙이고 플라스틱 소나무에 전등을 두르며 수선을 피우던 중이었다. 예수가 태어난 생일날을 교회에서만 축하하는 건 아니다. 우리도 성탄절이 되면 금박지를 벽에 붙이고 플라스틱 소나무에 전등을 두르며수선을 떤다.
“야, 예수도 창녀와 친했데.”
“그래에? 그럼 우리하고도 친할 수 있겠네. 이곳에도 좀 오시라고 해.”
“맞아. 우리가 끝내줄 거라고 그래. 히힛”
“미친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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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타운과 흑인동네 경계선에 자리 잡은 이곳에서 기거하는 사람들 중 챙만 유일하게 베트남 여자였다. 우리는 모두 영어이름을 갖고 있는 한국여자들이다. 웬만한 여자 같으면 문화적인 기세에 눌려 다른 업소로 떠나겠지만어쩐 일인지 챙은 말도 통하지 않는 우리들과 같이 생활을 했다.
말이 안 통해서 그런지 원래 성품이 그런지 깡마른 그녀가 하는 행동은 엉뚱하다 못해 안쓰러웠다. 화분을 사왔던 그녀의 뜬금없는 행동은 우리를 당황하게 했다. 선물을 받아서 좋긴 하지만 선물을 주거나 받는데 익숙하지 않은 여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화분을 시큰둥하게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는 무례함이 있는가하면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는 감성파도 있었다. 몸집이 제일 뚱뚱한 벨라는 아예 잎을 툭 떼어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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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조차 사랑하지 않는 그들은 누군가의 관심도 쑥스러운 일이었다. 다들 챙이 건네준 로즈메리 화분을 들고 방안으로 사라졌다. 돌아갈 곳만 있다면 벌써 이곳을 떠났을 그들은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닫아걸었다.

언제가 폭우로 집안 곳곳에 빗물이 새어들은 적이 있었다. 비는 그쳤지만 천장과 벽은 군데군데 얼룩이 지고 말았다. 얼룩무늬 천장 아래 8개로 나눠진 공간에서 꼬물꼬물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감동이란 낯설고도 아주 불편한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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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로즈마리를 놓을 마땅한 공간을 찾았다. 침대 옆에 쌓아놓은 옷가지를 정리했다. 그리고 커피포트가 놓인 자리를 좁히자 화분을 올려놓은 공간이 생겼다. 그 위에 화분을 올려놓고 나는 손가락관절을 꺾어 벽면을 두드려 챙을 불렀다.
"챙, 챙, 챙. 이리와."
원래 방은 4개였지만 손님을 더 받기 위해 공간을 불법으로 늘렸다. 방문은 하나지만 방문을 열면 그 안에는 두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있다. 언제든지 철수가 가능하게 만든 간이칸막이는 옆방과의 대화는 물론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얇다. 내가 소리치자마자 그녀는 내 공간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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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준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서 나도 뭔가 그녀에게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커피포트에 물을 부었다. 푸푹푸 기적소리를 뿜으며 열이 오른 커피기기에서 짙은 갈색 액체가 유리관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손님을 청한 건 나였으니 그녀에게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했다.
"챙은 어디서 살았어?"

 "안지앙."

 "안지앙? 호치민과 멀어?"
베트남에 대해 아는 지명이라곤 호치민 밖에 없으니 그녀가아무리 자기가 사는 마을을 설명해도 감이 오질 않았다. 그녀가 살던 동네가 도시와 떨어진 아주 시골이라는 것만 짐작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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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은 어디서 살았어?"

 "그곳."

 "그곳이 어디야? 그런 곳이 있어."

 "왜 기억하기 싫어?"

 "내가...... 살았던 곳은 독박골이야."

 "도. 파 콜?"
"응. 독박골."
빗방울이 떨어지면 코끝에 확 몰려드는 흙냄새처럼 기억 저편으로 밀쳐놓은 그리움이 와락 밀려든다.

 하지만 난, 입을 다물어버렸다. 말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할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어린 시절이란 게 의미가 있을까? 너나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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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박골.
돌멩이 뿐인 척박한 하늘 아래 있는 땅.

 그곳에 땅을 닮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남루한 모습이 남들에게는 헐벗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가진 게 없는 만큼 잃을 것도 없는 이들에게 그 땅은 낙원이었다.
어른들의 마지막 인생이 되었던 그 땅에는 돌만 흔한 게 아니었다. 봄이 되면 산지사방에

핀 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렸으며 진달래와 개나리는 바위틈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명아주 풀은 물이

흐르는 하천 옆에서 하늘거렸고 달맞이꽃은 파리가 꾀는 웅덩이 옆에서도 선명하게 보랏빛을 머금었다.
생명은 그렇게 아무렇게나 피어났고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자라났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그렇게 살았다. 내깔려 놔도 저절로 자라나는 들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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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자코 커피를 마시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난 기도해. 고향에 가게해달라고."
"가고 싶으면 비행기 표 사서 가면되지 뭐가 어려워?"
챙과 가족 사이에 어떤 간극이 가로막혀있는지 모르지만 난 가족과 연락을 끊은 지 오래다. 아버지도, 엄마도.
마치 속세의 인연을 끊은 수도사처럼 균열된 의식사이에서만 아버지를 떠올리고 엄마를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가족이 없이 혼자다.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슬퍼할 사람조차 없다는 건 허탈하고 서글픈 일이다. 챙이 꽃잎처럼 땅에 떨어진 이유가 돌아갈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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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이 남기고 간 로즈메리는 너무 빨리 말라버렸다. 아마도 생명체가 이곳에서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닌 듯 했다. 아무도 희망을 믿지 않았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 기대하는 건 의미가 없다. 밤낮이 바뀌어 대낮까지 퍼질러 잠을 자는 우리들 중 누구도 내일을 꿈을 꾸지 않는다. 다들 그저 냄새나는 골방에 처박혀 살다가 숨이 끊어지는 그날을 운명이라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굳이 소망을 말해보라면 죽을 때 길거리에서 죽지 않는 것이다. 죽음이 차라리 편할지도 모를 이곳마저도 떠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로즈마리를 선물했던 챙,
그녀가 그렇게 황망하게 우리 곁을 떠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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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독박골 산1번지 제2화 미래는 기억 속에 1편이 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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