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땅을 닮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헬로우? 메이 아이 스픽 투 조앤 플린?”
“예스. 스피킹”
“예스? 맞군요. 제가 한국말로 말씀을 드려도 괜찮겠지요? 여기는 영사관인데요. 서울에서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아름다운 서울’이라는 테마로 각 장르별로 전시회를 비롯한 각종 문화행사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사진부문에서는 선생님을 초청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본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
갑작스럽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듣고 계신가요?”
“아, 네.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전화번호는……어떻게?”
“전화번호 알아내는 게 뭐 문제겠어요? 대한민국 정부가 선생님의 거취를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아, 네에. 그런……가요?”
“이번 기획은 한국정부가 후원하는 행사입니다. 이런 행사에 선생님 같이 세계적인 작가가 동참해야 한다는 게저희 모두의 의견이니 꼭 수락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이 행사를 위해 한국에 체류하면서 드는 모든 비용은 정부예산으로 지원 될 겁니다.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물론 국가로 귀속이 되겠지만 그것도 충분한 보상이 지원될 것입니다.”
내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데에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만한 대우면 나로선 과분할 따름이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지 그걸 지금 결정하기가 그렇네요.”
“무, 무슨 말씀이신지……요? 당연히 한국에 오셔야지요.”
“글쎄요…….”
“선생님은 한국의 자랑입니다. 세계정상에 계신 선생님을 모신다는 것은 행사를 치르는 일보다 더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수락해주시길 바랍니다.”
“저를 그렇게 인정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아직 제가…….”
“그러시면 생각을 정리하실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일주일 후에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덜커덕 생산라인 벨트가 끊어지듯 생각이 뚝 멈췄다. 시계초침처럼 머릿속에서 매끄럽지 못한 맥박이 덜컥덜컥 소리를 냈다.
한. 국.
밀쳐놓은 기억들이 희끄무레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한국을 간다니. 살아서는 갈 수 없을 거라고 여겼다. 죽어서 혼이 되면 모를까. 벌침에 쏘인 듯 침을 삼키기도 어려웠다. 손끝이 떨려왔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진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떨고 있었다. 이 기분의 정체는? 나는 눈두덩이 퍼렇게 멍든 챙을 바라보며 물었다.
챙, 너도 이런 기분이었니? 고향으로 향하는 비행기 표가 있다 해도 망설일 수밖에 없던 이유가?
사진 속에 들어앉은 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동굴처럼 검은 눈두덩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있었다.
손님에게 얻어맞아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어 내 공간으로 달려온 그녀는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오히려 내가 참담한 그녀의 모습에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그녀가 얻어맞는 소리를 옆 공간에서 듣고만 있어야 했던 내가 꺼낸 말은 고작해야 “죽지 않고 그만하길 다행이야.”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위로한답시고 애꿎은 카메라 셔터만을 눌러댔다.
“그딴 놈은 고소해야해.”
게다가 덧붙여서 멍든 자국이 아물기 전에 증거로 남겨놔야 된다고 카메라 렌즈를 들이댔다. 찰칵. 찰칵. 얼굴 반쪽이 일그러진 그녀는 잠자코 렌즈를 바라보기만 했다. 사진에 찍히는 그녀의 감정 따위는 헤아리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자 멍은 사라졌지만 그녀는 그렇게 황망하게 목숨을 버렸다.
나는 챙의 얼굴을 찍은 그 길로 사진현상소에 가서 인화를 맡겼다. 불법으로 매매춘을 하고 있는 데 경찰을 부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사진이라도 찍어놓고 그 흑인 놈이 다시 찾아오면 보여줄 작정이다. 사진을 크기별로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벽 하나를 가릴 수 있는 정도로 크게 만들어서 철지난 크리스마스 장식을 떼어내고 그 자리에 걸었다.
-다음은 제2화 '미래는 기억 속에 2편'이 이어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