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고
며칠 전 진급 발표가 났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회사에 제출한 영어시험 점수가 워낙 낮아 기대도 하고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진급 대상이 되고 첫 번째 발표라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우리 회사에서 두세 번 진급 누락은 일도 아니다. 그런데 동기 4명 중 2명이 진급을 했다. 결과가 나오고 보니 괜스레 짜증이 났다. 온 마음을 다해 승진한 동기들을 축하해주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에도 ‘으스대는 거야 뭐야.’라는 생각을 했다. 꼬일 대로 꼬여 있었다. 동기에게서 온 카톡을 읽지도 않고 채팅방을 나가버리며 홀로 분을 삭였다.
나에게는 이상한 취미가 있다. 더 이상 연락하지 않게 된 친구들 SNS를 염탐하는 것이다. 쓰디쓴 패배감을 맛보던 중 고등학교 친구 인스타그램을 몰래 들어가 보았다. 마지막에 올린 사진에서 퇴사를 암시하는 문구를 보았다. ‘퇴사 이유는 유튜브에 업로드.’라는 글귀를 보고 나는 당장 그녀의 유튜브 채널을 검색했다. 나이 제한에 걸리기 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내 마음속에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멋있어 보였고, 용기 있는 선택과 결단력이 부러웠다. 유튜브와 네이버에 ‘워홀’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검색하였다. 그러다 우연히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비자 신청자를 곧 모집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래, 이거야.’ 나는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퇴사 후 아일랜드로 떠나기.’라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의 존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봐야 할 영화 목록에도 들어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시간을 내어 보기가 쉽지 않았다. 한창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때 ‘언젠가 봐야지.’하고 미뤄온 것이 지금까지 왔다. 그런데 우연히 보게 된 영화는 내 마음을 단숨에 돌려놓았다.
월터는 ‘LIFE’라는 잡지사에서 16년간 근무해왔다. 그는 외국에 나가보지도 않았고 이렇다 할 특별한 일을 경험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소위 말하는 ‘성공한 직장인’이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LIFE 지가 폐간되면서 그는 정리해고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숀은 월터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파트너이자 사진작가다. 어느 날 숀은 25장의 사진을 LIFE 사로 보내오는데 왜인지 25번째 사진은 그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문제는 그 사진이 LIFE 지의 마지막 표지 사진이라는 것이다. 제목은 ‘삶의 정수’. 월터는 사라진 25번째 사진을 찾기 위해 숀의 행방을 뒤쫓기 시작한다.
월터가 숀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그는 외국으로 떠나보기도 하고 술 취한 조종사의 헬기를 타보기도 하며 망망대해에 빠져 상어와 싸워보기도 한다. 영화는 월터의 일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특별한 경험을 비추지만, 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것은 오히려 마지막에 밝혀지는 ‘삶의 정수’ 사진의 정체였다.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에서 나는 ‘미술의 세계’라는 수업을 들었다. 한 시간 동안 동영상을 보여주고 나머지 한 시간은 영상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을 말해주는 수업이었다. 영상의 배치는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앤디 워홀이나 잭슨 폴록의 성공담을 포함한 현대미술 영상으로 시작해 프랑스 미술이 쇠퇴하는 과정, 뱅크시의 다큐멘터리와 <얀겔의 위대한 실험>을 차례로 보여주며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막연히 부자가 되고 싶었다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아야지.’ 생각했다가 인간과 도시, 그리고 이 사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마지막 수업에서 교수님은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인용했는데, 나는 사실 니체가 어떤 말을 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기억나는 건 인간의 삶에 순응하는 낙타의 삶, 싸워 이기는 사자의 삶, 룰을 파괴해버리는 어린아이의 삶이 있고 예술가들이 보통 이 어린아이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니체는 인간은 예술가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예술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오늘을 극복하며 사는 인간이 곧 예술가라고 했단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사는 우리가 예술가이며 그 삶이 예술적 삶이라는 생각을 했다. 월터가 살아온 삶은 예술가의 삶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숀도 월터만큼 자신의 사진을 제대로 구현해내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으니 말이다.
다시 며칠 전으로 돌아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를 밝히겠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나 족발을 뜯고 있었다.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나의 ‘퇴사 후 아일랜드 워홀’ 계획에 대해 털어놓았다.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 모두가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며 나를 응원해주었다. 자영업을 하는 친구 한 명만이 내 계획에 반대했을 뿐이다. 그는 세상이 녹록지 않은 법인데 왜 굳이 안정된 삶을 버리려 하는 것이냐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한번 보라고 했다. 그가 내게 예술적 삶을 설파하려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영화를 추천해 준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물론 내 계획에 찬성한 친구 몇몇도 이 영화를 추천했다. 의도야 어찌 되었든 재밌었으니 됐다.
굳이 떠나지 않아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날이라도, 나는 내 삶을 사랑하겠다. 우리 모두는 예술가이다, 우리 모두는 월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