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된 공공기관이 디자인 조직을 만들다

영국 중앙은행 첫 UX 디자이너가 전하는 디자인 팀 문화

by 황소흠

디지털화된 세상에 디지털 서비스를 만드는 UX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어느 분야에든 꼭 있는 직업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을 주문할 때도, 지도 어플로 길을 찾을 때도, 온라인으로 송금할 때도, UX 디자인은 필요한 요소이다. 이는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사용자의 니즈를 충족시키면서 편리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분야이다. UX 디자인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사용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사용자 중심 디자인 (human-centred desig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특히 신기술 발달로 디지털 서비스도 더 복잡해졌고, 이를 사용자의 편의와 요구에 맞게 제공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분야에서 UX 디자인 팀을 필수로 생각하고 있다. 이제는 소비자를 상대하는 B2C 기업을 넘어서서 B2B 산업 중에서 한 나라의 통화 정책을 담당하는 중앙은행까지도 UX 디자인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이런 트렌드에 맞게 영국의 영란 은행도 약 2년 전 (2022년)에 디자인 팀을 만들게 되었다.


84ea4080-e3cd-11ef-bd1b-d536627785f2.png City of London에 위치한 영란 은행 (출처: BBC)

올해 만 3살이 된 영란 은행의 첫 디자인 팀

나는 2024년 1월에 영란 은행 디자인 팀의 첫 UX 디자이너로 입사해서 현재 약 1년 넘게 영국 중앙은행의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이 팀은 2022년을 첫 시작으로 디자이너 4명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UX 디자이너, 서비스 디자이너, 유저 리서처, 콘텐츠 디자이너로 구성된 9명의 디자이너가 있다. 내부의 미래 혁신 TF팀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IT나 R&D, 혹은 마케팅 조직 산하에 있는 다른 조직의 디자인 팀과는 다르게 데이터 전략 부서 아래에 있다. 지속적으로 디자인 팀이 커진 덕분에 현재는 TF 팀 이외에도 내부에서 사용하는 데이터 관련 툴을 디자인하거나 기준 금리를 결정하는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등 디자인이 필요한 다른 부서의 프로젝트도 함께 맡고 있다.


코로나 락다운과 함께 시작된 영란은행의 새로운 도전

영란은행은 중앙은행이기에 우리가 흔히 아는 다른 은행처럼 소비자가 고객이 아니다. 국가를 상대로 화폐를 발행하고 통화량과 금리를 조절하며, 국가의 경제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한다. 가령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금융 기관과 시장을 규제하기 위해 다양한 금융 기관들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수집한 데이터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규제뿐만 아니라 금리를 결정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때문에 데이터는 영란은행에서 담당하는 다양한 업무와 때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영란은행의 총재는 2020년 3월에 임명된 앤드류 베일리(Andrew Baliey)이다. 영란은행은 정부와 분리된 공공기관으로 금융 및 금리 정책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은행의 이사회에서 추천하는 인물 중에서 영국의 군주, 즉 찰스 왕이 총재를 임명하는 시스템이다.

83413009-0-image-m-21_1712670010095.jpg 영란은행의 총재 Andrrew Bailey와 영국의 찰스 왕 (출처: Daily Mail)

앤드류 베일리의 임기는 코로나 락다운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영란 은행의 문화를 새롭게 바꾸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의 철학 때문인지 영란은행은 기존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중앙은행에서 현대적이고 수평적이며,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조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 새로운 시도 중 하나가 Transforming Data Collection (TDC)이라는 프로그램 아래에 사용자 중심 디자인 조직을 만드는 것이었다. TDC 프로그램은 영란은행이 규제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을 사용자에게 더욱 편리하게 제공하기 위해 기존에는 금융감독 기관의 입장, 즉 탑다운 방식으로만 생각했다면, 은행과 같이 규제를 받는 기관의 입장에서, 바텀업 방식으로 과정을 다시 디자인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규제를 받는 사용자, 혹은 금융 기관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한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사용자 중심 디자인을 도입한 것이다.


300년이 넘는 조직에서의 디자인 문화 만들기

조직에서 무엇이든 첫 번째가 된다는 것은 시도할 것이 많은 점에서 재밌으면서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해당 조직이 얼마나 오래됐던 기존에 그들에게 익숙한 방식 대신 새로운 방법을 소개하고 그것을 도입해야 되기 때문이다. 나는 2010년도 중반부터 UX 디자인을 시작했기에 조직의 첫 디자인 팀인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것도 약 5,000명이 넘는, 조직이 시작한 지 300년이 넘는 조직은 더더욱. 영란 은행에서의 지난 1년은 맥 대신 작은 윈도 컴퓨터를 사용하며, 피그마 (Figma)가 무엇인지 하나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야 되는 날들의 연속이었으며, 이는 디자인 문화를 성립하고 키워가는 과정이었다. 물론 조직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사용자 중심 디자인을 더욱 적극적으로 도입하려고 노력하는, 다른 조직에 있는 디자이너도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직접 느끼고 경험했던 것을 다른 디자이너들과 나누며 디자인이라는 파이를 더욱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더불어 영국인이 대부분인 영국의 공공기관에서 동양인으로 일하면서 내가 느끼고 배운 점을 통해 런던에서의 직장 생활에 대한 인사이트도 함께 나누고 싶다.